'합병 영업권 과세' 불복 소송, 대법원 판단 엇갈린 이유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8.09.2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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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동부하이텍 vs 서울리거 '영업권 과세' 희비 교차…차이는 "영업권 감가상각 등 자산화 여부"

대법원 청사 / 사진제공=뉴스1대법원 청사 / 사진제공=뉴스1


기업 합병과정에서 피합병 법인의 순자산가치와 합병대가와의 차액인 '영업권'에 세금을 물릴 수 있을지에 대해 올해 대법원에서 두 개의 상반된 판결이 나왔다. 기업이 어떻게 영업권을 처리했는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는 평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5월 DB하이텍(옛 동부한농)이 과세 당국을 상대로 법인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의 원심을 확정하고 당국의 상고를 기각했다. DB하이텍은 이 소송에서 1~3심을 연속으로 승소했다. 법무법인 광장 조세팀이 DB하이텍을 대리해 5년에 걸쳐 이 소송을 맡아 최종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DB하이텍은 2007년 동부일렉트로닉스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2930억원의 영업권을 회계장부에 올렸다. 실제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자산가치에 비해 더 많은 금액(프리미엄)을 지급한 만큼을 재무제표에 '회계상 영업권'으로 처리해 기재했다는 얘기다. 기업회계 처리기준에 따른 조치였다.

동시에 DB하이텍은 해당 영업권이 단지 회계기준에 따른 것일 뿐 '세법상 영업권'은 아니라고 봤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무형자산에 사업상 가치가 없어 '세법상 영업권'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DB하이텍은 또 해당 영업권에 대해 별도의 감가상각 처리를 하지도 않았다. 세금절감 목적으로 2930억원이라는 대규모의 영업권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세 당국은 재무제표에 기재된 이 회계상 영업권을 '세법상 영업권'으로 간주했고 가산세를 포함해 671억원의 세금 폭탄을 때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DB하이텍이 회계장부에 영업권으로 계상한 금액은 관련 기업회계 기준에 따른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피합병 법인인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상호·거래관계 및 영업상 비밀을 '초과 수익력 있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인정하고 사업상 가치를 평가해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DB하이텍 승소를 확정했다.

또 "이처럼 법인 합병의 경우 법령에서 정한 영업권의 자산인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영업권에 관한 회계상 금액을 합병평가 차익으로 보고 이에 과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같은 날 대법원은 서울리거(옛 다스텍)가 과세 당국에 제기한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DB하이텍 사건과 재판부 및 주심이 같았다. 이 사건 역시 합병 과정에서 생긴 영업권에 과세를 했다는 점에서 DB하이텍의 경우와 유사하지만 해당 영업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따라 소송의 결과가 갈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자파 장해 방지용품 제조업을 영위하던 서울리거는 2008년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던 자회사인 다코웰을 흡수합병했다. 서울리거는 이 과정에서 합병대가와 다코웰 실제 가치의 차액인 157억원을 영업권으로 회계장부에 올렸다. 여기까지는 DB하이텍과 구조가 동일했다.

그러나 서울리거는 157억원 영업권 전액을 2008~2011년 사업연도 기간에 걸쳐 전액 감가상각비로 손금(경제적 가치를 감소시키는 세법상 항목)에 산입시켰다. 157억원에 달하는 영업권을 4년에 걸쳐 법인세를 감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이에 당국은 2014년 서울리거에 가산세를 포함해 11억원의 세금을 물렸다.



서울리거는 "합병대가가 다코웰 순자산가액을 초과해 합병차익이 없으므로 세법상 영업권 여부와 무관하게 합병평가차익에 대한 과세가 위법하다"며 "회계상 영업권은 자산적 가치가 있는 부분만 '세법상 영업권'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 이같은 영업권 평가가 없었으므로 세법상 자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서울리거는 합병대가와 다코웰 순자산가액의 차액인 157억원을 회계장부에 영업권으로 기재했고 2008~2011년 법인세 신고 과정에서 스스로 '세법상 자산인 영업권'으로 계상해 전액을 감가상각비로 손금산입 처리를 했다"며 "서울리거는 당시 다코웰이 가진 무형의 재산에 사업상 가치를 인정해 대가를 지급하고 합병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서울리거 스스로가 '회계상 영업권'으로 분류한 항목을 세금신고 목적으로 활용했으니 해당 영업권에 대한 당국의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얘기다.

또 "세법상 영업권으로 인정하기 위해 반드시 합병대가 산정시 별도의 적극적인 초과수익력 계산 과정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세법상 영업권 평가 여부는 합병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합병 이후 서울리거의 결손이 확대됐다는 점만으로 달리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서울리거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 환송돼 내달 초순 판결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서울리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대형 로펌의 조세 담당 변호사는 "서울리거가 회계상 영업권으로 분류한 전액을 스스로 절세 목적으로 상각함으로써 당국에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합병차익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익금(경제적 가치를 늘려주는 항목) 산입' 대상으로 보고 과세한 당국의 처분 전체를 적법하다고 본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리거에서 문제가 된 157억원의 '영업권'에는 회계상 목적의 영업권과 세법상 영업권이 섞여 있는데도 이를 면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당국의 과세 처분 전부를 옳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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