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노벨과학상과 '마틸다 효과'

머니투데이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2018.09.21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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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노벨과학상과 '마틸다 효과'


‘마틸다 효과’는 같은 업적을 쌓아도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보다 과소평가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오랜 과학기술계 젠더 이슈 가운데 하나다. 1893년 여성운동가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가 쓴 에세이 ‘발명가로서의 여성’(Woman as an Inventor)에서 처음 언급한 내용을 1993년 과학사학자인 마거릿 로시터가 ‘마틸다 효과’라고 명명했다.
 
마침 지난 9월6일 영국 천제 물리학자 조슬린 벨 버넬 박사가 브레이크스루상을 수상하며 과학기술계 젠더 격차가 재조명받고 있다. 상금은 노벨상의 3배 수준인 300만달러로 ‘실리콘벨리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조셀린 벨 버넬 박사는 1967년 케임브리지대학 캐번디시연구소 대학원생 시절 전파망원경 데이터 수집 중 펄서(맥동전파원)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관련 논문에 지도교수인 앤서니 휴이시가 제1저자, 자신이 제2저자로 등재되었음에도 노벨물리학상은 지도교수와 동료 교수 마틴 라일이 수상했다. 현재까지도 왜 조셀린 벨 버넬이 수상하지 못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당시 과학 발전이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고 모든 업적은 지도교수가 가져간 시절이라 논란을 삼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0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노벨상을 못 받은 것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자신의 연구가 주목받는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노벨물리학상은 전체 207명 수상자 가운데 2명, 화학상은 178명 가운데 4명, 생리의학상은 214명 가운데 12명만이 여성이 받아 퍼센트로 계산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현장에서 노벨재단 이사회 부의장 고란 핸슨은 노벨상 6개 분야 수상자 선정위원회 위원장 가운데 여성이 3명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업적 논문이 발표된 후 결과가 입증되는 20~30년 후에야 선정되기 때문에 과거 여성과학자에 대한 편견이 아직까지도 작용할 것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우수 여성과학자가 노벨과학상 후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울프상, 라스커상, 필즈상, 브레이크스루상, 쇼프라이즈 등 유명한 과학계 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과학상이 과학계와 미래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는 크다. 노벨재단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3000명 규모의 노벨과학상 후보를 추천하는 주류 남성 과학자들의 젠더 격차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마틸다 효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될 듯하다. 문득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마틸다들의 현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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