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이 상폐위기에 처한 기업을 대상으로 고액의 재감사 수수료를 요구하면서 감사보고서 마감 시즌마다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회계법인은 재감사에 따른 위험부담을 이유로 적게는 본감사 비용의 4배, 많게는 10배 이상의 감사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산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상장사는 재감사에서도 비적정 사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상장폐지된다. 사실상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적정' 의견이 상장을 유지하는 전제조건인 셈이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감사의견으로 부적정ㆍ의견거절ㆍ한정을, 코스피 기업은 부적정ㆍ의견거절을 받으면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된다.
김영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장은 "기업심사위원회는 감사의견 거절 여부에 따라 바로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되는 형식적 절차"라며 "재감사 보고서에서도 '감사의견 거절' 결정이 난 회사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지 않고 바로 상장이 폐지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본감사에서 비적정 의견을 받은 상폐 대상 기업은 본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이 아무리 높은 금액을 수수료로 요구해도 이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최근 감사비용에 PC·모바일 등의 삭제된 데이터 흔적을 찾는 디지털포렌식 비용 항목이 추가되면서 금액이 기존 대비 큰 폭으로 올라갔다. 일부 회계법인은 재감사 부담을 떠안는다는 명목으로 외부컨설팅 기관 연계 명목으로 수수료 항목을 추가하고 해당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뿐 아니라 재감사 대상을 수년 전까지 확대해 비용을 올리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으로 감사 수주가 몰리면서 재감사와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서로 나눠 갖는 '짬짜미' 구조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가 있는 2007개 상장사(코넥스, 외국법인, 페이퍼컴퍼니 등 제외) 중 약 46.8%에 해당하는 940개사를 삼일, 삼정, 안진, 한영회계법인 등 4대 회계법인에서 도맡고 있다.
일부 회계법인이 재감사보고서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자 거래소까지 나서서 공문을 보내며 '성실 대응'을 독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기업심사위원회 대상기업 중 3~5개사만이 재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비적정 감사의견이 상장폐지 여부를 바로 결정하는 제도 아래에서 한 회계법인이 본감사에 이어 재감사까지 모두 맡는 것은 사실상 '칼자루'를 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해관계 상충의 문제가 있는 만큼 재감사 시한을 늘리고 본감사와 재감사 회계법인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