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구경민 기자, 정현수 기자, 한고은 기자, 안정준 기자, 유희석 기자, 구유나 기자, 뉴욕(미국)=송정렬 특파원, 김영선 기자, 강기준 기자 2018.09.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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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10년](종합)

편집자주 글로벌 금융위기 후 10년, 세계의 경제지형은 그 시간만큼 달라졌다. 당시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반면 일부 신흥국은 새로운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부침의 한가운데 있는 한국경제와 기업의 현재 좌표를 점검해 본다.

통화스와프가 위기대응에 보약
[글로벌 금융위기 10년]통화스와프 확대됐지만 미·일과 재체결 과제

외환보유액 많음외환보유액 많음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촉발된 지 10년,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 몇몇 신흥국들이 다시 위기로 내몰리면서 한국도 과거의 악몽을 다시 겪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대외건전성 지표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양호하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 4024억달러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 말 2600억달러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2007년 3월 53.6%에서 금융위기 직후 2008년 74.0%까지 올랐던 단기외채비율은 최근 수년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론 28.4%다. 단기외채비율이 높을수록 외환위기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 흑자규모 역시 2007년 117억9450만달러에서 2017년 784억6000만달러로 커졌다.



2014년 대외 순채권국으로 전환한 것도 달라진 면모다. 해외에 갚을 빚(대외금융부채)보다 받을 돈(대외금융자산)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대외금융자산은 대외금융부채보다 2519억원 많다. 한국에 대한 3대 국제신용평가사의 국가 신용등급 평가도 1~3단계 올랐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외환 방어벽을 튼튼하게 다지는 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에 있어 특히 강조된다. 대외변수에 취약한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통화스와프 확대 등 더 많은 외환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16년 펴낸 보고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타당성’에서 주요 신흥국이 위기 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조달 수단 중 통화스와프가 가장 유용하다고 제시했다. 외환보유액을 헐거나 IMF 대출을 받는 것보다 정치적 부담이 적고 위기 대응에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이라고 말한 것이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치·외교적 문제로 끊긴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를 꺼낸 건 이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는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다. 2008년 10월 말 미국과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는 출렁이던 금융시장을 진정시켰다. 2007년말 1000원을 밑돌았던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1500원으로 치솟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그해 12월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각각 130억달러→300억달러, 40억달러→300억달러로 확대했다. 이렇게 외환방파제를 두텁게 쌓으면서 시장의 불안한 심리는 가라앉았다. 연말 원/달러 환율은 1259.5원으로 내려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 스위스, 캐나다, 호주, CMIM(치앙마이이니셔티브)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제협력국 내 국제금융협력팀이 통화스와프를 전담하도록 해 왔다. 이주열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보, 유상대 국제담당 부총재보, 김준한 국제협력국장, 이강원 국제협력국 금융협력팀장 등 총 11명이 통화스와프 관련 업무의 핵심이다.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이 긴급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선제적인 외환안전망 확충이 최우선 목표로 삼고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그 결과 통화스와프 규모나 체결국이 금융위기 때보다 크고 많아졌다.

하지만 질적으론 뒤처진다는 평가도 있다. 대규모 자금유출시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큰 기축통화가 부족해서다. 2010년, 2015년 각각 만료한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아쉬운 이유다.

박경담 기자

대외건전성 지표 개선...통화스와프가 방파제
IMF(국제통화기금)는 2016년 펴낸 보고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타당성'에서 주요 신흥국이 위기 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조달 수단 중 통화스와프가 가장 유용하다고 제시했다. 외환보유고를 헐거나 IMF 대출을 받는 것보다 정치적 부담이 적고 위기 대응에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이라고 말한 것이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치·외교적 문제로 끊긴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를 꺼낸 건 이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통화스와프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건 2008년 9월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같은 해 10월 말 미국과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는 출렁이던 금융시장을 진정시켰다. 2007년말 1000원을 밑돌았던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1500원을 웃돌았다가 연말 1259.5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2008년 12월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각각 130억달러→300억달러, 40억달러→300억달러로 확대했다. 외환방파제를 두텁게 쌓으면서 시장의 불안한 심리는 가라앉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 스위스, 캐나다, 호주, CMIM(치앙마이이니셔티브)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통화스와프 규모나 체결국은 금융위기 때보다 크고 많다. 하지만 질적으론 뒤처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규모 자금유출 시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큰 기축통화가 부족해서다. 2010년, 2015년 각각 만료한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아쉬운 이유다.

10년 전과 비교해 다른 경제 체력은 어떨까.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 4024억달러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 말 2600억달러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외환보유액은 통화스와프와 더불어 급격한 외환시장 변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다. 민간부문의 해외차입이 막혀 대외결제를 못하거나 외화가 부족해 환율이 급등할 때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어서다.

2007년 3월 53.6%에서 금융위기 직후 2008년 74.0%까지 올랐던 단기외채비율은 최근 수년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론 28.4%다. 단기외채비율이 높을수록 외환위기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 흑자규모 역시 2007년 117억9450만달러에서 2017년 784억6000만달러로 몸집을 불렸다.

2014년 대외 순채권국으로 전환한 것도 달라진 면모다. 해외에 갚을 빚(대외금융부채)보다 받을 돈(대외금융자산)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대외금융자산은 대외금융부채보다 2519억원 많다. 금융위기 전과 비교해 최근 한국을 향한 3대 국제신용평가사의 국가 신용등급 평가도 1~3단계 올랐다.

외환 구조를 튼튼하게 다지는 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에 있어 특히 강조된다. 대외변수에 취약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통화스와프 확대 등 더 많은 외환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경담 기자

"호주는 되고 한국은 왜 안되나"..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재구성
2008년 9월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10월30일 한·미 통화스와프까지..글로벌 금융위기 긴박했던 45일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한국은행은 이날 한국과 일본이 오는 23일 만료되는 100억달러(약 11조3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에 대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1년 처음 체결된 양국 통화스와프 계약은 14년만에 중단된다.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2015.2.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한국은행은 이날 한국과 일본이 오는 23일 만료되는 100억달러(약 11조3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에 대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1년 처음 체결된 양국 통화스와프 계약은 14년만에 중단된다.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2015.2.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어) 가라 앉는 느낌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한국과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2008년 10월30일은 세계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으로 큰 타격은 받은 우리나라가 달러 기근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며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떨쳐버리는 순간이었다.

미국이 비기축통화국과 협정을 맺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 등이 “호주, 덴마크는 되고 한국은 왜 (통화스와프 체결 대상에) 포함이 안 되느냐”는 논리로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부총재, 도널드 콘 미 연준 부의장, 로버트 도너 미국 재무부 아시아 담당 차관보,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수십번의 설득을 통해 이뤄낸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 백서’ 등을 통해 숨가빴던 당시 45일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10년 전인 2008년 9월15일 오후 5시. 급보가 날아든다. 리먼브러더스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었다. 실무주역인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은 리먼 브러더스에 한국은행의 레포(repo·환매조건부채권) 잔액을 모두 정리해줄 것을 제안했다. 다행히 그날 오후 3시35분까지 완전 청산됐다.

9월 19일. 기재부에서는 강만수 장관이 신제윤 차관보에게 통화스와프 추진을 지시했다. 신 차관보는 클레이 라우리 미국 재무부 차관보와 협의에 나섰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한국의 낮은 신용등급이 이유였다.

9월 22일. 한국계 금융기관의 유동성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루머가 시장에 급속히 확산됐다. 국가의 디폴트 위험을 나타내는 한국 크레디트디폴트 스왑레이트(CDS)가 급상승하면서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적인 세력 뿐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자로 알려진 연기금들조차 한국물을 공매도(Short Sale)하기 시작했다.

9월 30일 오전 10시30분. 일본의 회계연도말의 결산에 따른 단기금융시장의 경색으로 한국계 은행 단기자금조달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식이 전파됐다. 한국계 은행 자금담당자들은 ‘패닉’ 상태였다.

10월 1일 오전 10시20분. 어려움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통화스와프였다. 본격적으로 미 연준을 방문해 중앙은행 스와프 계약을 타진하기로 했다.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결사항인데 미 재무성 관계자들만 만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시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는 연준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추진키로 했다. 뉴욕 연준 국제국과 시장국에 ‘중앙은행간 스와프계약’ 관련 면담을 공식 요청했다.

10월 2일 오전 10시. 이 총재의 지시 하에 윤 팀장과 더들리 부총재와의 면담이 성사됐다. “신규로 계약을 체결한 호주, 덴마크는 되는데 왜 한국은 (통화스와프 체결이) 안되느냐. 이들과 비교할 때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으므로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국가로 통화스왑 확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한국이 국제통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통화스와프에 신중하단 입장을 보였지만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낙인효과’ 때문에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10월 8일 오후 3시. 당시 이광주 한은 부총재보와 더들리 부총재간 면담이 이뤄졌다.

10월 9일 오전 11시. 이 부총재보와 미 재무성 파이낸셜 마켓 담당 토니 라이언 차관보가 만남을 가졌다.

10월 11일. 이 부총재보는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을 만났다. 이 부총재보는 “통화스와프 규모가 얼마라기 보다 시장에 안정적 메시지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목요연하게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해 나갔다. 이날 청와대에서도 미 연준과 접촉을 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14일 오전. 한국의 외화유동성이 심각하고 제 2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다는 외국언론의 보도로 이와 관련한 문의가 한은 뉴욕 운용팀 앞으로 쇄도했다.

10월 16일. 뉴욕 연준으로부터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해 논의‘를 하자면서 한은 측에 뉴욕 연준 시장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받아 면담이 이뤄졌다.

10월 23일 오후 12시14분. 뉴욕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사실을 통보받았다. 뉴욕 연준 시장국으로부터 한국은행과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10월 23일 오후 3시20분. 뉴욕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 계약 내용을 확인했다. 미 연준은 FOMC에서 한국은행을 통화스와프 계약 대상국으로 추가할 계획이며 이번 통화스와프 확대대상국의 통화스와프 규모 등 주요 내용을 유선으로 통보했다. 뉴욕 연준은 이번 통화스와프 계약 확대의 주요 내용에 대해 ‘특별한 보안유지’를 당부했다.

10월 24~26일. 한은과 뉴욕 연준 관계자가 통화스와프 계약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열었다. 체결 전 마지막 작업에 돌입했다.

10월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통화스와프 규모는 300억달러. 한 달 치 수입액 결제대금에 그치는 수준임에도 달러 우산의 위력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달러당 15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던 원화 환율은 하루 만에 177원이 내렸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공적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티격태격했지만 결과적으로 합동 작전의 개가였다. 미 연준은 처음에 미온적이었다. 이머징 통화와의 교환은 전례가 없어서다. 연준을 설득한 논리는 달러 패권의 위기론. 환율 방어를 위해서는 미 국채를 팔아 달러 현찰을 쥐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달러의 위기가 증폭한다는 논리는 먹혀들었다. 외환 당국은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은과 기재부 인사들이 미국 연준과 재무부 등의 인맥을 적절히 활용한 전략도 주요했다.

구경민 기자, 정현수 기자, 한고은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방수들 말 들어 보니...
'위기의 돌파구'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주역…긴박했던 한달여의 여정

위기의 순간에는 늘 소방수가 등장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위기의 돌파구는 그해 10월30일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알려진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방수로 뛰었다.

#한은의 소방수, 美 연준을 설득하라

한은의 공략대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였다. 직접적인 계약당사자를 공략한 정공법이다.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2008년 당시 한은의 국제담당 이사였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핵심 멤버였던 도널드 콘 당시 연준 부의장과 접촉했다. 돌아온 대답은 “힘들다”였다.

이 전 부총재보는 “우리가 왜 미국의 캐시 디스펜서(Cash Dispenser·현금인출기)가 돼야 하느냐”고 맞섰다. 콘은 네이든 쉬츠 연준 국제국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전 부총재보는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대표부 사무실에서 쉬츠를 만났다. 노트북을 든 연준 실무진들도 함께였다.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융데스크 팀장 /사진제공=한국은행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윤용진 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운융데스크 팀장 /사진제공=한국은행
이 전 부총재보는 미국이 호주와 체결한 통화스와프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호주보다 외환시장이 크다”는 이 전 부총재보의 논리에 실무진들은 노트북으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주가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이 전 부총재보는 “NDF(역외차액선물환) 시장을 감안하면 한국이 더 크다”고 재반박했다.

이후 꽤 오랜 시간 질문과 답이 오갔다. “그 때 일생에 내가 할 밥값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이 전 부총재보의 기억이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 같던 한미 통화스와프에 빛이 보였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이 전 부총재보는 “공동성명에 미 연준과 한은이 ‘한국경제는 건전하다’(Sound and well managed economy)라는 한 마디를 넣어서 시장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핵심이었다”며 “통화스와프 규모가 얼마인지는 그 뒤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문구는 체결 발표문에 그대로 들어갔다.

윤용진 전 한은 뉴욕사무소 운용데스크 팀장(부국장)도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초기 뉴욕 연준을 통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부총재가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맺은 인연도 있었다.

윤 전 부국장은 더들리와 만나 “외환시장이 큰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는 꼭 통화스와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담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윤 전 부국장에게 더들리가 말을 건넸다. “얼마 정도면 되겠느냐”. 윤 전 부국장은 “200억~300억달러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당시 연준은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릴 정도로 돈을 푸는 정책에 초점이 있었다”며 “연준에서도 ‘통화스와프라는 아이디어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응백 한은 투자운용실장, 김명기 워싱턴D.C. 사무소장, 강순삼 국제국 차장도 한은의 숨은 소방수들이다.

2008년 10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과 면담하는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2008년 10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과 면담하는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
#기재부의 소방수, 美 재무부를 뚫어라

기획재정부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8년 초 기재부의 국제금융 라인은 ‘최·신·최·강’으로 불린다. 당시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신제윤 전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 최중경 차관, 강만수 장관을 일컫는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최전방은 강 장관과 신 차관보가 맡았다. 강 장관은 2015년 발간한 저서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에서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그는 9월19일 신 차관보에게 통화스와프 추진을 지시했다. 신 차관보는 클레이 라우리 미국 미국 재무부 차관보와 협의에 나선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낮은 신용등급이 문제였다. 강 장관은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을 접촉했다. 루빈은 당시 씨티은행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만남의 주선자는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었다. 면담에는 윌리엄 로즈 씨티은행 부회장이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한미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침 로즈는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준 총재와의 오찬이 예정돼 있었다. 로즈는 강 장관의 의중을 가이트너에 전달했다. 긍정적인 답이 왔다. 10월14일의 일이다. 강 장관은 열흘 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사실을 보고받았다.

빛나는 성과였지만 부침도 있었다. 한미 통화스와프 공식 발표 전 체결 사실이 국내 언론에 전해졌다. 출처는 기재부였다. 강 장관의 무용담에 무게가 실렸다. 한은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후에도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때마다 기재부와 한은의 어색한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윤 전 부국장은 "중앙은행도 넓은 의미에서 국가인데,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면 된 거 아닌가"라며 "내가 했니, 네가 했니 하면서 다투는 건 창피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뉴욕 시장 사람들을 만나면 가계부채와 산업경쟁력 약화, 최근의 부동산 시장 과열 같은 문제들을 이유로 2023년쯤 한국에 위기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며 "궁극적으로 연준과의 통화스와프를 준비해야 하고, 최소한 양해각서라도 맺어서 선언적이나마 우리가 대비돼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 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고은 기자, 정현수 기자

통화스와프 우리가 이끈다…이주열 총재 포함 11명이 전담
한은, 작년 1월 국제협력실→국제협력국 확대·개편…'선제적 외환안전망' 확충 초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회동을 마친 뒤 스위스와 106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체결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스위스중앙은행과 100억 스위스프랑(11조2000억원·106억달러) 규모 3년 만기 양자간 자국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1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회동을 마친 뒤 스위스와 106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체결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스위스중앙은행과 100억 스위스프랑(11조2000억원·106억달러) 규모 3년 만기 양자간 자국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1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재 한국은행에서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은 국제협력국 내 금융협력팀이 전담하고 있다. 작년 1월 국제협력실이 국제협력국으로 격상되고, 국제국 소관이던 통화스와프 업무를 이어받았다.

이주열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 유상대 국제담당 부총재보, 김준한 국제협력국장, 이강원 국제협력국 금융협력팀장 등 총 11명이 통화스와프 관련 업무의 핵심이다. 유상대 부총재보는 국제협력국 초대 국장을 맡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통화스와프 관련 정책 목표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이 긴급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선제적인 외환안전망 확충이 최우선 목표다.

작년과 올해 기축통화국인 캐나다,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이 이같은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펼쳐왔던 완화적 통화정책을 거두고 있다. 양적완화 등으로 '지도에 나오지 않은 길(The Uncharted Way)'을 걷던 중앙은행들이 이제 다시 양적긴축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비기축통화국과 무역결제 등을 주목적으로 하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면 캐나다, 스위스 같은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는 높아질 수 있는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에 대비하는데 무게중심이 있다.

통화스와프 계약 한 건에 들이는 시간도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에 이를 정도로 길어졌다.

기재부와의 관계도 이전에 비해 개선됐다. 작년 기재부가 통화스와프 확대를 '올해 기획재정부 MVP 정책'으로 뽑으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공치사 논란이 잠시 재현되기도 했지만, 실무과정 등에서 협력은 순조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월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계약이 중앙은행의 업무라는 사실은 2008년에도, 지금도 같다. 일본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에서 통화스와프 업무는 중앙은행 몫이다.

정부와 한은이 국익을 위해 공조한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지만 불필요한 논란은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후 연장 등 향후 계약관계 유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당국 재무부(한국의 기재부에 해당)와 중앙은행 간 긴장관계를 자극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이후 한국에서 괜한 논란이 일자 연준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후문이다. 연준에 있어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시티그룹 영입설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였는데,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이 시티그룹 고문 등을 통해 통화스와프 체결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하면서 한은에 직접 불쾌하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발표 때마다 중앙은행 간 계약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이유다.

한고은 기자

금융위기 10년, 살아남은 기업과 떠난 기업
[글로벌 금융위기 10년]물류·조선업 주축 기업의 퇴보…4차산업혁명 올라타 10년 기회 잡은 기업도

[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금융위기 10년은 재계 판도도 뒤흔들었다.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저성장 기조가 이어진 가운데 그룹 자체가 해체된 기업이 속출했다.

기업별로 무리한 인수합병과 지배구조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물류·조선업을 주축으로 한 그룹의 몰락이 두드러졌다. 장기적 저성장에 따른 물동량 감소의 타격 탓이었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 도래한 스마트폰 상용화와 4차산업혁명 시대 흐름에 올라탄 기업들에 금융위기 10년은 재도약의 발판이 됐다.

◇물류·조선의 퇴보=STX의 몰락은 물류·조선업 주축 대기업의 부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STX는 2008년까지 해운·조선을 중심으로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규모 약 11조원, 재계 15위(자산총액 기준) 기업이었다. 불과 10년만에 STX를 이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린 강덕수 전(前)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호황을 구가하던 해운·조선업황이 2008년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치자 그룹은 재무상태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2013년 해체됐다. 뿔뿔이 흩어진 계열사들의 부진은 지금도 이어진다. STX조선해양은 2016년 한 차례 법정관리를 겪었으며 지난 4월에는 가까스로 두 번째 법정관리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사업 턴어라운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류가 주축인 금호아시아나도 지난 10년간 퇴보가 두드러진 기업이었다. 2008년 자산총액 기준 10위였던 금호아시아나는 25위로 주저앉았다. 올해 금호아시아나의 자산총액과 계열사수는 각각 약 12조원, 26개로 당시(약 27조원, 52개) 대비 반토막났다.

해운업 중심으로 2008년 재계 21위(자산총액 약 9조원)였던 현대그룹은 계열사 현대상선이 경영 악화 탓에 2016년 산업은행 산하로 떨어져 나가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이 밖에 한진중공업 (3,145원 ▲85 +2.78%)한진 (20,900원 ▼150 -0.71%), 현대중공업 (129,000원 ▲1,700 +1.34%)의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가 2008년보다 각기 27, 3, 2계단씩 내려가는 등 물류·조선업 중심 기업은 지난 10년 고전을 면치 못했다.

◇'毒'이 된 오너 욕망=이들 물류·조선 기업 중 STX와 금호아시아나는 무리한 사업 확장이 금융위기 후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퇴보 속도를 더욱 키우기도 했다. 오너의 욕심이 독이 된 셈이다.

인수 기업에서 나온 수익으로 또 다른 인수 실탄을 마련했던 STX 성장 전략은 재무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무리한 차입을 통해 인수한 대우건설의 재무구조 악화가 몰락의 결정타였다. 2009년 대우건설을 헐값에 토해내고 인수를 주도한 금호타이어의 경영권도 잃었다.

2008년 재계순위 28위던 동양그룹도 오너의 욕심이 금융위기 후 몰락을 가져온 사례였다. 그룹 캐시카우였던 동양시멘트 수익성 악화로 그룹 재무사정이 나빠졌는데도 오너가 무리하게 지배구조를 강화했고 이에 따라 계열사간 복잡한 출자 고리가 형성돼 금융위기에 따른 부실이 계열사들로 확대됐다. 동양그룹은 2014년 해체됐다.

◇4차산업혁명에 올라타 약진=지난 10년 자산총액 기준 재계 1~7위 기업들의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현재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163,400원 ▲2,100 +1.30%), LG (78,900원 ▲1,000 +1.28%), 롯데, 포스코, GS (43,950원 ▲450 +1.03%)의 자산총액 합계는 약 1195조원. 10년 전보다 약 2.6배 불어난 규모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희비는 엇갈린다. SK는 금융위기 10년을 발판으로 재도약에 성공했다. SK의 자산총액 기준 순위는 10년 전과 변함없이 3위지만, 올해 시가총액은 약 123조원으로 재계 2위로 뛰어올랐다. 2012년 인수한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가 4차산업혁명의 도래를 타고 약진한 덕이다. SK하이닉스는 SK 전체 시가총액의 44%를 차지한다.

시가총액 2위를 지키던 현대차는 현재 시가총액 약 87조7000억원으로 86조5000억원인 LG와 함께 3~4위를 오간다. 자동차 산업은 2011년 최고 생산 수준을 보이며 금융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주요 해외시장에서 뚜렷한 활로를 뚫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삼성의 석유화학 및 방산 계열을 인수한 후 현대중공업과 한진그룹을 제치고 확고한 8위 자리로 올라섰다.

안정준 기자

10년 만에 진원지 바뀐 금융위기…다시 신흥시장으로
아르헨·터키·브라질 등 신흥국 통화 가치 급락…금융위기 이후 부채 급증, 외화보유액도 부족

[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월가를 호령하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됐던 세계 금융위기가 10년이 지난 지금 신흥시장 금융위기로 재현될 조짐이다. 신흥국들이 양적완화로 시중에 넘치는 돈을 이용해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부채에 기댄 성장이 결국 '독'이 돼 돌아온 것이다.

세계 최대 돈줄이던 미국이 긴축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 무역전쟁까지 겹치면서 신흥시장은 통화 가치와 주가지수 폭락, 채권시장 자금 유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를 보여주는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 통화 지수는 지난 10일 1578.30으로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남미의 병자'로 불리는 아르헨티나는 2000년 이후 18년 만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페소화 가치는 올해 50% 넘게 떨어졌다. 재정·경상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는 터키는 미국인 목사 구금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으면서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의 인도·인도네시아 등 거의 모든 신흥국 금융시장 상황이 악화했다.

신흥시장 위기의 근본 원인은 '빚'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양적완화로 수조 달러 규모의 통화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했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높은 수익률을 좇아 신흥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신흥국들도 유례없는 낮은 금리의 막대한 자금을 적극 받아들였고, 결국 통제가 어려운 수준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 5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부채는 237조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비해 43% 늘었다. 신흥시장 부채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7년 21조달러에서 지난해 63조달러로 세 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흥시장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45%에서 210%로 높아졌다.

신흥국들은 채권 발행에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에 무역전쟁까지 겹치면서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이 조사한 결과로는 지난 6~8월 신흥국 기업이 발행한 채권 규모는 280억달러 정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0% 줄었다. 신흥국 국채 발행도 40% 감소한 212억달러에 머물렀다.

만기가 다가오는 부채의 상환 부담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앞으로 3년간 만기가 돌아오는 신흥국 외화표시채권은 3조달러가 넘는데 통화 가치 하락으로 상환 부담은 크게 증가했다. 또 미국 경제가 나 홀로 호황을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가 금리인상 속도를 올릴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더 심해지면 신흥국 통화 가치는 더 추락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신흥국들의 외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50%에 달하지만, 상당수가 이를 상환할 여력이 크지 않다"면서 "단기 외채를 갚고,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려면 외화보유액이 충분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고 꼬집었다.

유희석 기자

'포스트 리먼'… 전문가들, 더 위험해졌다
리먼 사태 후 기업 부채·고위험 투자 늘어…"금융위기 발생하면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

지난 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IMF(국제통화기금) 지원을 반대하는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IMF(국제통화기금) 지원을 반대하는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세계 금융·경제 전문가들은 10여 년 전 금융위기가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랜 시간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지속되면서 부채와 위험투자가 늘었고 그 결과 외부 자극에 취약한 위기의 '뇌관'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은행권의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게 됐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리먼 사태 후 규제당국이 은행에 최저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고 대형화를 규제하는 등 강도 높은 금융규제안을 도입해 은행 안정성을 높였지만, 이로인한 자금 공백을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헤지펀드, 머니마켓펀드(MMF), 구조화투자기구(SIV) 등 그림자 금융이 채웠다고 말한다.

글로벌 그림자금융 시장 규모는 2002년 26조달러 수준이었으나 현재 약 80조달러 수준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느슨한 규제 하에 고위험·고수익 금융업무를 주관하는 만큼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레버리지론이 대표적 사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레버리지론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달러를 기록하면서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넘었다. 현재 레버리지론 주관사는 약 150곳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세계적인 완구업체 '토이저러스'ㄹ도 레버리지론과 하이일드 채권 등 이자율이 높은 부채 부담으로 인해 파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먼 사태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미 브루킹스연구소 컨퍼런스에서 "지금이 정치경제적으로는 이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금융규제기관이 비은행권에서 촉발된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기업 부채도 새로운 위험요소로 떠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꺼리면서 전 세계 회사채 규모는 2007년 4조3000억달러에서 지난해 11조7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지금까지는 초저금리로 인해 조달비용이 낮았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상황이 반전됐다. 신흥국의 경우 강달러와 최근 자금 유출에 따른 이중고에 시달려, 회사채 발행 기업의 4분의 1이 디폴트(파산) 위험에 처한 상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잔존하는 제1 리스크로 회사채를 손꼽으며 회사채의 질 또한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비금융 회사채의 22%가 부적격 채권인 '정크 본드'이며, 40%가 이보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위인 BBB라는 것이다.

구유나 기자

다음 금융위기를 촉발할 위험요인은… 금리정상화·중국경제위기 등
중앙은행 통화정책 정상화로 글로벌 금융시스템 시험대

[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10년 전인 2008년 9월 15일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주요인이다. 이후 미국 증시는 폭락했고, 글로벌 금융시장도 패닉에 빠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필두로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제로 금리에 막대한 돈을 시장에 푸는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통해 위기대응에 나섰다.

10년 흐른 지금, 연준은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양적완화 되감기를 진행 중이다. 그 여파 속에 터키, 아르헨티나 등의 통화가 급락하는 등 신흥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금융위기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다음 금융위기를 촉발한 요인들은 무엇일까.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금리정상화의 충격, △중국경제의 위기, △부실채권 투자확대 △이탈리아발 유로존 불안, △공급망 붕괴 등을 그 후보들로 꼽았다.

◇금리정상화의 충격 :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의 비정상 통화정책은 위험추구성향을 높였다. 하지만 미국 등 세계경제가 되살아나면서 금리인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연준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 2015년 12월 첫 금리인상을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8월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9월에도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중앙은행도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종료하고, 금리인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금리인상은 항상 금융시스템의 빈틈을 노출시켜왔다는 것이다. 고금리는 일반적으로 주식과 상품가격을 떨어뜨린다. 이 같은 손실은 레버리지에 의해 확대되고 기업들의 채무불이행이 높아진다. 결국 이는 신흥시장의 자본이탈과 통화가치 하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현재처럼 오랫동안 낮게 유지된 적이 없다. 금리의 정상화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미지의 새로운 환경 속으로 진입시키고 있다.

◇중국경제의 위기 : 세계 경제의 양대산맥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5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2000억 달러와 2670억 달러 관세폭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외부 수요가 약화되면 중국은 2009년처럼 자국내 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부양에 나서야한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부분적으로 역사상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부채에 의해 뒷받침됐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대비 총부채는 2008년 4분기 171%에서 2018년 1분기 299%로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달러강세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중국발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요인은 부동산 붕괴나 지방정부 소유의 자금조달 기관들의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이다. 이는 중국 은행들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엄청난 자본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 중국경제의 둔화는 상품가격을 떨어뜨리고 많은 신흥국가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달러화 표기 채권의 채무불이행을 촉발, 서구 대출업체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또한 둔화된 신흥국가의 경제성장률은 미국과 유럽 수출업체들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 부실채권 투자확대: 지난 10년간의 저금리는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을 더 위험한 채권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투기등급인 BBB 회사채 규모는 2조5000억 달러로 전체 회사채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15년내 가장 높은 비중이다. 그만큼 저금리의 이면에서 위험자산 투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연기금부터 보험사, 뮤추얼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은행까지 중대한 손실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

◇ 이탈리아발 유로존 불안 :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2012년 재정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재정적자 상한선을 GDP의 3%로 규정한 유럽연합(EU) 재정규약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총선에서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던 신생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동맹'이 약진,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연립정부를 꾸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재 이탈리아의 GDP 대비 총부채는 132%에 달하는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는 내년 예산에 세금감면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들을 대거 반영하려고 하고 있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금융시장 불안에 EU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다시 EU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탈리아 국민의 59%만이 유로화를 지지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이탈리아의 EU탈퇴가 가시화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고된다. 당장 이탈리아 은행들이 뱅크런에 직면하고, 충격은 이탈리아 국채의 36%를 보유한 외국투자자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다. 유로존 다른 회원국 은행들은 1400억 달러의 이탈리아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채에 대한 시장 신뢰도 떨어져 위기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정치 불확실성은 세계 3대 주요 경제권인 유로존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 공급망 붕괴 : 재앙은 어느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고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특히 수십년간의 세계화와 기술진보는 자연재해나 인재의 여파가 쉽게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컨대 2011년 태국의 홍수는 하드드라이브 생산업체들의 가동을 중단시켜 PC 글로벌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렸고, 2011년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는 핵심 자동차 부품업체들에 피해를 입혀 전 세계 자동차 공장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예측불가능한 날씨와 불량 국가들은 주요 기업들을 파산시키고, 경기침체를 촉발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송정렬 기자

2008년 금융위기의 재구성… 경고음은 리먼 파산 전부터 울렸다
위기의 전조부터 리먼 파산 후폭풍까지 긴박했던 상황

2008년 벽두부터 미국 경제에는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댔다. 실업률이 2년내 최고치인 5%까지 치솟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은 0.75%포인트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를 실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과 ‘대마불사’의 그릇된 신화 속에서 곪을 대로 곪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정점으로 미국 경제를 넘어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미국 경제는 그해 11월 한달간 5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고 다우지수는 연간으로 30% 이상 폭락했다. 월스트리저널의 '2008 : 어떻게 재앙은 전개됐나' 타임라인을 토대로 10년 전 그 때의 긴박했던 상황을 돌아봤다.

▶2008년 1월 22일 : 연방준비제도(의장 벤 버냉키)는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4.25%에서 3.5%로 0.75%포인트 인하했다. 연준은 예정보다 1주일 앞당겨 긴급 FOMC 회의를 개최하고, 1998년 이후 첫 긴급 금리인하 조치를 결정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AFPBBNews=뉴스1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AFPBBNews=뉴스1
▶1월 30일 : 연준은 당초 예정대로 열린 FOMC 회의에서 추가로 0.5%포인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월 7일 : 미 의회는 1680억 달러 규모의 경제부양안을 승인, 1300만 가구가 300~1200달러의 세금환급금을 받게 됐다.

▶3월 14일 : 연준은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파산을 막기 위해 디스카운트 윈도(Discount Window)를 통해 베어스턴스에 긴급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대공황 이후 투자은행에 대한 첫 자금 지원이었다.

▶3월 16일 : JP모간 체이스는 베어스턴스를 헐값인 주당 2달러, 총 2억3600만 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연준은 JP모건의 베어스턴스 인수 합의을 이끌어내기 위해 300억 달러의 베어스턴스의 잠재부실을 떠안기로 했다.

▶3월 18일 :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 3%에서 2.25%로 0.75%포인트 인하했다. 다우지수는 이에 힘입어 420포인트(3.5%) 급등했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로 부진하던 리먼 브라더스 주가는 1분기 실적발표 이후 46% 급등했다.

▶3월 24일 :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베어스턴스 인수에 대한 반대의견을 가라앉히기 위해 인수가격을 주당 10달러, 총 12억 달러로 높였다. 2017년초 베어스턴스의 가치는 200억 달러였다.

▶4월 1일 : 위기설과 싸우던 리먼 브라더스는 40억 달러의 신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우선전환주를 판매했다. 리먼 브라더스 주가는 18% 급등했다.

▶5월 8일 : 보험사 AIG는 78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하고, 재정 확충을 위해 125억 달러를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1일 : 헤지펀드 매니저 데이비드 아인혼 리먼 브라더스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고 한 컨퍼런스에서 밝혔다. 그는 리먼 브라더스의 회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리먼 브라더스가 다음 실적발표 때 중대한 상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월 16일 : 리먼 브라더스는 28억 달러의 분기손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리처드 풀드 CEO는 "독자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풀드 전 리먼 브라더스 CEO. /AFPBBNews=뉴스1리처드 풀드 전 리먼 브라더스 CEO. /AFPBBNews=뉴스1
▶7월 15일 : 헨리 폴슨 미 재무부장관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이맥에 대한 신용공여 확대와 주식매입 권한을 의회에 요청했다. 그는 "당신이 바주카포를 갖고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을 그것을 쓸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7일 : 헨리 폴슨 재무부장관은 페니메이와 프레이맥를 사실상 국영화하는 경영정상화계획을 발표했다. 미 재무부는 이들 회사에 2000억 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9월 9일 : 리먼 브라더스와 협상 중이던 한국산업은행이 협상결렬을 발표한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주가는 45% 급락했다.

▶9월 11일 : 풀드 CEO는 연방규제기관과 협의를 통해 리먼브라더스의 잠재적 인수자를 물색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예비협상을 벌였다. 리먼 주가는 42% 급락했다.

▶9월 12일 : AIG 주가는 S&P의 신용등급 하향 경고에 33% 급락했다. 수십억달러의 모기지 자산을 헐값에 털어낸 메릴 린치는 12% 떨어졌다. 장마감 후 폴슨 재무부장관, 벤 버냉키 연준 의장,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로우 맨해튼에 위치한 연준 사무실에서 열린 긴급 회의에 30여명의 월가 CEO들을 소집, 리먼 브러더스의 미래를 논의했다. 가이트너 총재는 CEO들에게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에는 어떤 정치적 의지도 없다"고 말했다.

핸리 폴슨 전 재무부장관. /AFPBBNews=뉴스1핸리 폴슨 전 재무부장관. /AFPBBNews=뉴스1
▶9월 13일 : 월가 CEO들이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할 방안들을 논의하는 가운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리먼 브라더스 인수협상에서 발을 뺐다. 일부 CEO들은 여전히 정부가 개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9월 14일 : 마지막 인수후보였던 영국 은행인 바클레이즈도 리먼 브라더스 인수협상에서 철수했다. 로버트 월럼스태드 AIG CEO는 가이트너 뉴욕연은 총재에게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존 테인 메릴린치 CEO는 500억 달러에 자사를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9월 15일 :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을 신청했다. 다우지수는 504포인트 추락했다. 무디스와 S&P는 AIG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9월 16일 : 미국 규제당국이 입장을 바꿔 AIG의 파산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것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주식시장이 급등했다. 장 마감 이후 연준은 AIG에 850억 달러의 자금지원을 약속했다.

▶10월 8일 : 세계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단기 금리는 0.5%포인트 인하하면서 확사되는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다우지수는 189포인트 떨어졌다.

▶10월 21일 : 연준은 환매위기를 겪는 머니마켓펀드(MMF)시장에 최대 54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10월 29일 : 연준은 기준금리는 0.5% 내린 1%로 결정했다. 2004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11월 17일 : 씨티그룹은 2만5000명의 감원을 발표했다.

▶11월 23일 : 미국 정부는 씨티그룹에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최대 3000억 달러까지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12월 5일 : 미 노동부는 11월에 미국 경제가 5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고 밝혔다. 34년내 월간 최대의 하락폭이었다. 실업률도 15년내 최고치인 6.7%로 치솟았다.

▶12월 16일 : 연준은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미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31일 : 다우지수 연간 하락률 33.8%로 2008년을 마감했다. 1931년 이후 최대의 하락폭(%)이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송정렬 기자

"리먼 사태는 먼지 없는 부패"… 끝까지 반성 않는 大盜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 라인' 대부분 법적 처벌 면해…구제금융 투입됐던 AIG의 전직 CEO 2000억원 퇴직금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 찍힌 리먼의 뉴욕 본사 사진./AFPBBNews=뉴스1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 찍힌 리먼의 뉴욕 본사 사진./AFPBBNews=뉴스1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먼지 없는 부패(immaculate corruption)'다."

미국 의회 산하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 위원장을 맡았던 필 안젤리데스는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같이 정의했다.

그러면서 "월가의 빠른 회복에 대한 수백만 명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지금의 트럼프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 회복의 혜택이 대부분 기업과 고소득층으로 몰리면서 불만이 폭발한 중산층 이하 계층이 '경제 민족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를 밀어줬다는 분석이다.

안젤리데스 전 위원장은 "거액의 공적지원을 받고 회복한 금융기관들은 더 거대하고 강력해졌다"며 "위기 이후 일부 경영자는 고액의 퇴직금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안젤리데스에 따르면 리먼 사태가 터진 지 10년째인 현재 미국 대형 은행들은 이전의 수익을 회복했고 경영자들의 보수는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마틴 설리번 전 CEO(최고경영자)는 1820억 달러(약 205조24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1억7000만 달러(약 1919억원)의 퇴직금을 챙겼고, 마찬가지로 공적 자금이 투입됐던 씨티그룹의 전 선임 고문 로버트 루빈은 1억10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한 주역들의 '도덕적 해이'는 최근까지도 논란이 됐다. 지난달 20일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수백 명의 전직 리먼 직원들이 은행 붕괴 10주년을 맞아 영국 런던에서 '비밀 파티'를 기획했다고 보도했다.

파티는 리먼이 파산한 9월 15일쯤 열릴 예정으로 주최 측은 오랜 기간 이 계획을 비밀로 했으나 세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장소 변경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티의 날짜 못지않게 그 형식도 공분을 샀다. 칵테일과 카나페가 차려지는 등 마치 축제의 장처럼 비쳤고 영국 노동당 존 맥도널 의원은 "역겹다"고 했다.

이들이 건재한 이유는 책임 라인에 있던 이른바 '월가 거물'들이 대부분 법적 처벌을 면했기 때문이다. 유죄 평결을 받은 건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과 파브리스 투르 전 골드만삭스 부사장 정도다.

[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리먼브러더스의 CEO였던 리처드 풀드는 투자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한동안 외부활동을 중단했던 풀드 전 CEO는 2010년 투자사 '레전드 시큐리티'를 통해 금융계에 복귀하기도 했다.

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내 탓이 아니다'란 식의 발언으로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15년 5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한 강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2008년) 금융위기는 '한 가지 요인(리먼 사태)'에 의한 게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항변했다. 리먼 파산이 금융위기의 시발점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부인한 것이다.

풀드는 "2007년 9월 말까지만 해도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할 정도의 회사가 아니었다"며 정부의 낮은 금리 정책으로 책임을 돌렸다. 그는 "(당시) 정부는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금융위기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쳐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이 연출되는 '퍼펙트 스톰'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07년 파산위기에 처한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에 떠넘겨 월가 위기를 촉발한 제임스 케인 전 베어스턴스 CEO는 안락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선구자로 꼽힌 안젤로 모질로 전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 CEO는 2010년 내부거래와 사기 혐의로 675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지만 이후 자선사업가로 변신, 존경받는 활동가가 됐다.

전 메릴린치 CEO인 존 테인은 2009년 1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합병 후 거액의 상여금과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난 뒤 투자그룹 CIT를 차려 회장 겸 CEO를 역임하고 있다.

안젤리데스 전 위원장은 "금융업계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법적 보상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면서 "월가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일어났던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김영선 기자

독일이 불안하다… '제2 리먼' 우려 커지는 도이체방크

獨 최대은행 도이체방크 곳곳서 터지는 시한폭탄…부실사업·과징금 등으로 파산 경고까지

[MT리포트]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외환방파제로 위기대응"
"독일을 대표하는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0일 독일 최대은행이자 유로존 핵심 금융기관인 도이체방크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로 평가받던 도이체방크가 잇단 악재로 부진한 실적을 내고, 최근 파산 경고까지 제기되면서 2008년 금융위기가 독일에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을 넘기 위해 공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도이체방크는 개인 및 기업 금융 부문은 줄이고 투자금융 부문을 확장했다. 미 IB들이 투자금융을 줄이며 몸을 사린 것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보수적으로 돌아선 각국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면서 결국 직격탄을 맞았다.

도이체방크는 2015년 67억9000만유로(약 8조7500억원)의 사상 최대 순손실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4억9700만유로(약 6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3년 연속 적자이다. 이로 인해 지난 6년간 CEO(최고경영자)도 4번이나 교체됐다. 결국 도이체방크는 지난 5월 직원 9만7000여명 중 1만여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했고, 2020년까지는 30%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했다.

각종 벌금도 부실의 원인이 됐다. 도이체방크는 2005년부터 4년간 리보금리(런던 은행 간 금리)를 조작해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25억달러(약 2조82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2016년 MBS(주택저당증권) 불법 판매 혐의로 미국에서 72억달러(약 8조1100억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지난 6월 도이체방크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잇달아 시한폭탄이 터지자 '대마불사'라는 인식도 깨졌다. 그동안 도이체방크는 독일 정부가 보증해준다는 인식이 있어 국채 수준의 저리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경쟁사보다도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만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FT는 올해 도이체방크가 발행한 무담보채권은 모두 발행가를 밑돌고 있고, 지난달 발행한 선순위채권의 쿠폰금리도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매년 지급하는 자금조달 비용도 발목을 잡는다. FT는 도이체방크가 매년 2억유로(약 2600억원)의 추가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9일에는 미국 금융당국이 도이체방크 미국 자회사를 심각한 재정적 취약성을 지닌 은행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도 지난해부터 이 자회사에 문제가 있다며 주시하고 있다.

올해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40% 하락했다. 지난 10일 주가는 주당 9.58유로로 2007년 주당 87유로로 최고가를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90% 가까운 추락이다. 이로 인해 이달 4일에는 유럽의 대표적 우량 상장사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지수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도이체방크 위기론이 확산되자 독일에서는 1, 2위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2016년에도 양사 합병설이 제기됐는데, 최근 구조조정 발표 이후에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합병을 통한 비용절감 및 운영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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