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씨를 도우러 온 복지사, 각종 단체 관계자들은 기본적인 예방 접종도 맞지 않은 채 방치된 아이의 건강을 염려했다. 결국 하영이는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여름 어느 날 폐렴에 걸렸다. 급히 미혼모지원 연계병원인 길병원에 데려갔더니 5일 입원·치료에 390만원이 청구됐다.
결국 킹메이커는 2개월 동안 법원과 씨름하며 매번 수백 장이 넘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친자확인 검사비용 30만원 등 잡다하게 드는 돈을 지원받기 위해 여러 기관에 발품을 팔고 혜영씨의 딱한 사정을 설명하는 것도 킹메이커의 몫이었다.
많은 미혼모들은 국가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충분히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 안에 있는 아이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데는 무심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은 전국에 129개소뿐이다. 동시에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시설의 경우 직원은 최소인원으로 돌아간다. 서울 송파구 미혼모보호시설 '도담하우스'의 허진호 시설장은 "숙식을 제공하는 생활시설은 하루 24시간 365일 돌아간다"며 "응급상황은 밤에 주로 일어나지만 인력은 원장·국장·사회복지사·간호사 등 딱 1명뿐이라 누구 하나 쉴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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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가 개인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아동양육비를 받기도 쉽지 않다. 혜영씨의 사례처럼 출생신고부터 진행되는 각종 행정절차들부터 발목을 잡는다.
특히 어린 미혼모들에게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는 "청소년 미혼모는 관련 서류에 써 있는 단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까다롭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한부모가족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중위소득 52%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중위소득 52%는 약 148만원이다. 올해 월 최저임금이 157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정도의 소득만 있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아동양육비를 받아왔더라도 아이가 만 14세 이상이 되는 순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희주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중위소득 52%인 148만원은 너무 낮은 기준이라 미혼모들이 지원을 받기에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정말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들이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어려운 30대 미만 미혼모가 전체의 21%(2017년 기준)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대책도 부실하다. 이들은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학업이나 경제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4년 자료)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고 있거나 양육할 계획이 있는 청소년 한 부모 중 72%는 아이를 갖게 되면 학업을 중단한다는 조사도 있다. 양육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아이를 낳게 되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희주 교수는 "만 24세 이하 부모에게 추가 양육비 월 5만원을 지원하는 것 말고는 어린 미혼모를 위한 특별한 정책이 없다"며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취업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양육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