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보인다…사공많은 광주비엔날레 관람기

머니투데이 광주=배영윤 기자 2018.09.09 18:51
글자크기

묵직한 메시지 여운, 전시공간과의 부조화·난해한 구성 등은 비판…해외 및 지역기관과 협업 활성화 기대

'2018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7개 중 3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외부 전경./사진=배영윤 기자'2018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7개 중 3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외부 전경./사진=배영윤 기자


2018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300여점 작품들. 개발·냉전·분단·난민·격차·이주 등 근대를 지나는 과정에서 축적된 문제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작품 하나하나 음미하며 들여다보면 감탄이 나온다. 그동안 간과했지만 꼭 기억해야 할 문제들을 성찰하게 한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선보였던 구작들도 많은데 지금 여기, 이곳에 다시 놓여짐으로써 관객들에게 그때와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조금 먼 발치에서 떨어져서 보면 머릿속에 물음표로 가득 찬다. 43개국 165명 작가라는 최대 규모로 판을 벌이기엔 역부족이었던걸까. 그동안 단독 큐레이터제로 운영해오다 처음 다수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한 게 독이 된 걸까. 11명의 큐레이터가 선보이는 7개의 주제전시들은 산만하고 난해하며, 불친절한 설명 등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GB전시관 3전시실 입구에 있는 수퍼플렉스의 작품 '외국인 여러분, 제발 우리를 덴마크사람들하고만 남겨두지 마세요'./사진=배영윤 기자GB전시관 3전시실 입구에 있는 수퍼플렉스의 작품 '외국인 여러분, 제발 우리를 덴마크사람들하고만 남겨두지 마세요'./사진=배영윤 기자
◇'개발·난민' 묵직한 메시지 담은 주제전…GB전시관 공간과 부조화 아쉬워=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으로 다수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해 다양한 시각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것. 세계 무대로 활동하는 11명의 큐레이터들이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란 큰 주제 아래 꾸민 7개의 전시가 비엔날레의 메인이다. 세계화 이후 민족적·지정학적 경계가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경계에 대해 다각적인 시각으로 조망했다.



용봉동에 위치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GB전시관)에서는 4개의 전시가 펼쳐진다.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 전시에선 서현석 작가의 작품 '잃어버린 여정'이 눈에 띈다. 세운상가의 역사를 추적하며 당시 개발 주도 독재 정권의 역사를 환기한다.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전시는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만큼 관람객들의 공감을 얻을 듯 하다. 특히 3전시실 입구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수퍼플렉스의 '외국인 여러분, 제발 우리를 덴마크사람들하고만 남겨두지 마세요'라는 작품은 주황색 바탕에 짧은 문구 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GB전시관 4전시실에 전시된 미아오 잉의 작품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사진=배영윤 기자GB전시관 4전시실에 전시된 미아오 잉의 작품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사진=배영윤 기자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 전시에서는 압박과 자본주의 도구가 된 인터넷과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정보격차에 대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 작가 미아오 잉의 작품 '친터넷 플러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사방에 설치한 벽에 군데군데 구멍을 뚫은 방식으로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했다. 전시관 1층 5전시실에 마련된 '귀환'은 광주비엔날레의 23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잡지'같은 전시로 꾸몄다. GB전시관 내 4개의 전시는 좁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너무 많은 작품이 모여있어 다소 집중도가 떨어진다. 전시 전체를 한번에 다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관심있는 주제전을 골라 집중적으로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작가와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

ACC 복합2관 3층에 전시된 만장들은 강연균(만장프로젝트 오거나이저)의 '하늘과 땅 사이'./사진=배영윤 기자ACC 복합2관 3층에 전시된 만장들은 강연균(만장프로젝트 오거나이저)의 '하늘과 땅 사이'./사진=배영윤 기자
ACC 복합5관에 전시된 정찬부의 작품 '피어나다'./사진=배영윤 기자ACC 복합5관에 전시된 정찬부의 작품 '피어나다'./사진=배영윤 기자
◇ACC으로 공간 확장, GB전시관 한계점 해소…편견 깨는 '북한 미술전'=나머지 3개의 주제전이 열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GB전시관에 비해 공간이 넓어 동선이 매끄럽고 시야가 트여있어 감상하기 편하다.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전시에선 수천개의 플라스틱관으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 시선을 빼앗는다. 미국 작가 타라 도노반의 작품으로 인류의 소비와 환경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정찬부 작가의 '피어나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빨대를 이용해 동물, 식물, 무기물의 중간형태를 창조했다. 올림픽이라는 국가 주도의 행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안정주 작가의 영상작품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도 눈에 띈다.


주제전 중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단연 문범강 조지타운대학 교수가 기획한 '북한 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전이다. 다른 작품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북한 미술 작품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 북한 미술만의 특징이 담긴 조선화 22점이 ACC 문화창조원 6관에 전시됐다. 조선화는 북한만의 독창적인 미술장르다. 형식 측면에서 언뜻 수묵화처럼 보이지만 서양화의 입체성도 보인다. 내용적으로는 북한의 정치, 문화, 역사를 흡수해 현재까지 발전해왔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북한 최고의 작가들이 소속된 만수대창작사 작품들이다. 베이징 만수대창작사미술관장 소장품 15점, 국내 개인 및 미술관 소장 3점, 워싱턴 예도예술재단에서 4점을 갖고왔다. 폭이 4~5m 되는 대형 집체화가 대중에 공개된 건 거의 처음이다.

ACC 복합6관에서 전시중인 '북한 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에서 문범강 교수가 북한의 홍명철·서광철·김혁철·김일경 작가의 집체화 '평양성 싸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ACC 복합6관에서 전시중인 '북한 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에서 문범강 교수가 북한의 홍명철·서광철·김혁철·김일경 작가의 집체화 '평양성 싸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양성 싸움', '자력갱생', '새 물결이 뻗어간다' 등은 전쟁, 노동 현장 등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렸지만 그림 속 인물들 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밝게 웃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반대되는 인물 표현이 유독 많은 북한 미술에 대해 문범강 교수는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김정일 정권 당시 1995년부터 고난의 행군이 있었는데 이때 '힘들더라도 웃으면서 가자'라는 리더가 내세운 슬로건이 미술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사람들이 가진 심성, 즉 자존심·자긍심·존엄심을 얼굴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북한 작가들의 자세"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유교 정신이 현대에 많이 사라졌지만 북한은 현재까지도 유교정신과 내적인 강인함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며 그것이 작품에 투영된 것이라고도 했다. 연인과 가족간의 사랑 등 평범한 일상을 담은 작품도 볼 수 있다. 북한에는 체제 선전적인 작품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보기 좋게 깨지는 전시다.

구 국군광주병원 교회에 전시된 마이크 넬슨의 작품 '거울의 울림'./사진=배영윤 기자구 국군광주병원 교회에 전시된 마이크 넬슨의 작품 '거울의 울림'./사진=배영윤 기자


◇'광주 역사' 대신 안전성 우려만 보인 GB커미션…첫 시도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기대감=주제전 외에 별도로 구성한 'GB커미션'과 '파빌리온 프로젝트'도 관심을 모았다. GB커미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치유하고 승화시킨다는 광주비엔날레 창설배경이 가장 잘 두드러지는 전시다. 민주화 운동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구 국군광주병원 본관 및 교회 등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 해외 작가 4명의 신작들을 전시했다.

깨진 유리 조각, 부서진 벽면이 그대로 방치된 폐허 공간에서의 전시임에도 안전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공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살린 것이 의도였겠지만, 관계자의 설명이 없다면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과의 구분이 어려워 감상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GB커미션 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태국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품은 시스템 상의 문제로 개막 첫날 공개조차 되지 못했다. 별도의 조명도 설치돼 있지 않아 해질녘이면 관람이 어려우니 참고할 것.

광주시민회관에서 진행 중인 '오늘은 올 것이다' 전시 전경.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과 팔레드 도쿄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이 공동 기획했다./사진=배영윤 기자광주시민회관에서 진행 중인 '오늘은 올 것이다' 전시 전경.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과 팔레드 도쿄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이 공동 기획했다./사진=배영윤 기자
이강하미술관에서 진행중인 '핫하우스' 전시 전경.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를 통해 필리핀 작가와 광주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했다./사진=배영윤 기자이강하미술관에서 진행중인 '핫하우스' 전시 전경.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를 통해 필리핀 작가와 광주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했다./사진=배영윤 기자
여러가지 아쉬운 점에도 비엔날레의 앞으로가 기대된 건 올해 처음 선보인 '파빌리온 프로젝트' 때문이다. 해외 유수 미술기관들이 참여하는 위성 프로젝트로, 광주 전역을 현대 미술의 장으로 엮어내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에는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도쿄', 핀란드의 대표적인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헬싱키 국제 아티스트 프로그램', 필리핀의 현대미술기관 연합체인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가 함께했다.

'GB커미션'에서 느끼지 못했던 광주의 역사는 오히려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팔레 드 도쿄와 ACC, 아시아문화원이 함께 기획한 전시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는 명확한 메시지와 실험적인 작품들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전시 장소인 '광주시민회관' 역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군이 사용하던 곳으로 의미가 깊다. 이강하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필리핀 컨템포러리 아트 네트워크의 '핫하우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광주 태생 젊은 사진작가 이세현의 작품도 울림을 준다. 역사 현장에서 돌과 흙을 던지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