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조직 내세우기에 골몰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소비자과를 금융소비자국으로 격상, 확대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민원이 많은 보험 부문의 감독·검사 업무를 금융소비자보호처로 이동했다. 건전성 감독 업무를 금융소비자보호처 밑에 두는데 대해 뒷말이 나왔다. 일을 하려면 조직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하는 것을 보이려 조직을 만들고 키우고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할 조직을 뒤섞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소비자들이 비자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할 때 내는 수수료가 1.0%에서 1.1%로 올랐지만 금감원은 인상분 0.1%포인트를 소비자가 아니라 국내 카드사에 내라고 하고 있다. ‘수수료 인상분을 국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고’, ‘소비자 권익이 저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다.
넷째, 업의 본질을 무시한다. 보험상품은 업의 본질상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영업관리비로 뗀다. 사업비는 보험업을 하는데 드는 비용 일부를 충당하는 수단이다. 즉시연금은 만기 때 소비자에게 보험료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뗐던 사업비만큼을 만기환급금으로 적립한다. 금감원은 이를 약관에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비도 소비자에게 연금으로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보호’란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이다. 피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게 보호다. 금감원이 즉시연금 추가 지급의 근거로 삼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도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있을 경우 약관을 작성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해 소비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다. 즉시연금 추가 지급은 소비자의 불이익이 없는 상황에서 보험업의 본질을 훼손하면서까지 뜻밖의 이익을 소비자에게 주는 소비자 특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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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의 경우 금감원이 민원을 내라고 적극 유도하고 있는데 민원이 제기되면 그 민원이 부당하든 아니든, 법원의 판결이 필요하든 아니든 무조건 실태평가 점수가 깎인다. 실태평가 점수가 낮으면 금감원의 종합검사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소송에서 이겨도 소용없다. 자살보험금의 경우 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났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지만 금감원은 CEO(최고경영자) 해임 권고,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로 법원 결정을 무력화시켰다.
민원을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금융회사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숨통은 터줘야 한다. 민원의 내용을 파악해 실태평가 점수에 반영하고 소송이 진행 중이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련 민원은 실태평가 점수에 반영을 유예하는 등의 합리적 조치가 필요하다. 금감원의 일방통행식 소비자 보호는 소비자 보호 만능주의로 금융산업 위축과 금융회사 부실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