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머니투데이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 2018.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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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善)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마음도, 많은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한다. 그런 현실감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 처음부터 마뜩찮았는데 고용과 소득 양극화가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제 지표들이 잇달아 발표되자 비판자들은 거 보라며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가격까지 폭등한다고 하니 불에 기름 부은 격이 되었다. 청와대는 고용위기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소득주도 성장을 더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긴급하게 마련된 기자간담회서 장하성 청와대 실장은, 얼마나 정확히 정책을 이해하고 비판하는지 모르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고,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소득주도성장을 더 가열 차게 추진하여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으니 기다려달라고 호소했다.



청와대의 입장과 항변이 한편으로는 수긍이 간다. 정책의 결과를 평가하고 성패(成敗)를 판가름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모르고 비판한다는 지적도 대략 사실일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국가 거시 경제 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그 정책이 과거에 전혀 시도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정책이라니 더더욱 그렇다. 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장 실장과 달리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복잡한 경제 정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남들이 이렇다하니 그런 줄 알뿐이다.

어떤 혁신적 아이디어를 전파 확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아이폰과 같은 IT 제품이건 소득주도 성장과 같은 정부 정책이건 가능한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선 주도면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보통 네트워크 확산연구 영역에서 관련 주제들을 다루는데 혁신의 확산이 성공하기 위해 고려되어야할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항 몇 가지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관련 문제들인데. 어찌 보면 매우 상식적인 내용들이다.



첫째, 너무 복잡하고 너무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은 전파되기 어렵다. 당연한데 이렇게 당연한 걸 곧잘 잊어버린다. 혁신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혹은 정반대의 가치나 효용을 제공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기존의 효용에 더해, 이제까지는 없던 새로운, 추가적인(add on) 효용과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수용성 높은 혁신이다. 기존의 것과 결합해 새로운 융합적인 효용과 가치를 만들 때 혁신은 확산된다. 완전히 새롭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경험된 어떤 것에 플러스 효용을 제공한다고 설득해야한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새롭고 혁신적이라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생경한 것은 채택되지 않는다. 기존 것을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면 익히 알려진 해외사례라도 찾아야한다. 그것에 더해 새로운 효용을 추가하여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알아듣는다.

둘째로, 혁신의 경험 가능성, 검증 가능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확산 과정에서 혁신의 효용정도를 실제로 경험하고 검증 가능하게 되면 확산속도는 빨라진다. 관찰 가능하지 않은 추상성이 높은 혁신 아이디어는 확산되기 어렵다. 어떤 지표라도 개선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은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대중이 어리석어 보여도 그 정도는 안다. 최종적인 그것을 무작정 기다릴 순진한 사람은 없다. 달성 과정에서 관찰, 검증 가능한 확실한 효용을 계속 제공해야한다. 최종 결과가 10년, 20년 후에 나올지라도 그 사이에 작지만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누적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혁신은 확산된다.

셋째, 혁신 아이디어의 초기 채택자가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혁신적 테크놀로지나 제품의 경우 소통 네트워크의 허브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 채택하면 확산율은 높아진다. 문제는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의 정부 정책처럼, 혁신이 정파적 차원에서 다루어질 때다. 이것은 하나가 아닌 분리된 두개의 소통 네트워크가 작동함을 의미한다. 이때 한 극단 핵심 인플루언서들의 채택은 다른 극단 핵심 인플루언서들의 거부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파적 프레임을 회피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이 다수라고 생각하고 정파적 프레임 자체가 불리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정책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지고 정책이 보완 개선될 여지를 없앰으로써 정책 성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관련해 정책의 인격화 문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도 어렵다. 설명도 쉽고 이해도 쉬운 건 사람이다. 어떤 정책에 대한 대중적 판단은 그 정책에 덧 씌워진 인격에 영향을 받는다. 세세하고 구체적 내용은 그 다음이다.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대중 선호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은 대상의 인격화를 통해 쉽게 설명되고 이해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에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전면에 브랜드로 내세울 정책 추진 책임자는 탈정파적이고 전문적 이미지가 강한 인물일 필요가 있다. 장하성 실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장하성 실장의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비판자들이 더 부추기는 측면도 있는데, 그곳이 중요한 포인트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여론이 마냥 기다려줄리 없다. 다음 총선까지 불과 1년 반 정도다. 올 연말까지 개선된 지표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 환경 자체가 불리하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고유가, 무역전쟁 등 세계 경제 전망도 썩 좋지 않다. 2020년까지 계속 내리막 경기다. 부동산, 가계부채, 증세,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등 유리한 요소가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당 의원들이 먼저 볼멘소리를 낼 것이고 이어서 관료들이 흔들리게 된다. 야당은 내심 소득주도성장을 고집스럽게 추진하길 기대할 지도 모른다.



보통의, 다수의 사람들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김훈작가의 표현을 빌면,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며, 광화문 집회와 태극기 집회 양쪽을 다 기웃거리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 오로지 밥벌이라는 생활의 이념으로 사는” 경계에 서있는 이들이다. 이들 보통 사람들이 가진 진보에 대한 부정적 정서란 게 있다. 스스로 진보 또는 리버럴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정의롭고 바른 말만 하는 자신이 왜 미움을 받는지 대해 성찰(省察)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정서적 반감은 위선(僞善)과 독선(獨善) 문제다. 선(善)하지 않으면서 선한 척하고, 또 선하더라도 자기만 선한 줄 아는 게 진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더해서 ‘위똑’, ‘독똑’도 있다. 똑똑하지 않으면서 똑똑한 척하고, 똑똑하더라도 자기만 똑똑한 줄 아는 이미지다. 결과는 잘 났어 정말, 잘해봐, 그리고 외면이다. 보수정권에 대해서 대중은 분노하고 싸운다. 결정적 사건이 있고 잘못이 무엇인지 서로 안다. 진보정권에 대해서 대중은 싸늘하게 외면한다. 작은 것들이 누적되고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냥 싫다. 장 실장을 위시해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들이 유념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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