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조카가 메는 책가방을 메고 등굣길 체험에 나섰다. 학생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걸었다. 마음은 여전히 10대다. 정문에 선생님과 선도부가 서 있었다. 괜히 움찔하게 됐다. 사진만 찍고 재빨리 뒤돌아섰다./사진=남형도 기자 조카
등교하던 여중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 150cm 남짓, 자그마한 체구였다. 가느다란 팔목으로 가방을 건넸다. 한 손으로 받으니 웬걸, 팔목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돌덩이인가. 노트북이 담긴, 기자 가방(4.2kg)보다 무거웠다. 메보니 상당히 묵직했다. 발걸음을 옮겼다. 땅에 붙는 듯 했다.
바닥에 놓인 체중계에 가방을 올렸다. 무게를 재봤다. 잠시 뒤 숫자가 떴다. 6.8킬로그램(kg). 꽤 놀랐다. 1.5리터(ℓ)짜리 물통이 통상 1.5kg. 이 물통 4개 이상을 메고 다닌 셈이다. 중3 여학생 평균 몸무게가 54.5kg(교육부 지난해 통계), 이의 12%에 달하는 걸 지고 다닌 셈. 게다가 손엔 또 다른 짐들도 있었다.
이 학교 하교 시간은 오후 4시 정도.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간단다. 4과목을 한 번에 듣는다 했다. 모두 마치면 밤 10시. 녹초가 된 채로 이걸 메고 집에 올 터였다. 그 때 학생이 말했다. "많이 무거워요." 뒤 따른 한 마디. "오늘은 그래도 가벼운 편이에요." 학생은 뒤돌아 교문으로 향했다. 속상한 의젓함이었다.
출근, 퇴근길 오가며 만난 학생들이 멘 책가방. 체구에 비해 가방이 크고 상당히 무거워보인다. 학생들이 짊어진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듯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한창 클 때인데, 안타까웠다. 학생들 가방이 새삼 낯설어졌다. 뭐가 문제일까. 궁금해졌다.
등굣길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중3 조카에게 연락했다. 서울 성동구 소재 중학교에 다닌다. 지난달 29일 오전 7시30분, 집으로 갔다.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방 무게를 쟀다. 3.8kg이었다. 다행히 학교 책은 사물함에 넣고 다닌단다. 근데 그게 다가 아녔다. 학원 가방이 여러개 더 있었다. 하교한 뒤 바꿔 메고 간다고 했다.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 중학교 인근서 등굣길을 가던 여중생의 책가방. 무게는 6.8kg. 어깨가 축 처질만큼 무거웠다. 안을 보니 책과 공책, 프린트 등이 가득차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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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기자 가방도 꽤 무거웠었다. 책 때문은 아녔다. 도시락통이 반에서 제일 컸었다. 밥이 제일 중요했다. 2교시만 끝나도 배고파서 밥을 까먹었었다. 밥심(心)으로 푹 잤다. 사물함 같은 건 없었다. 책을 서랍에 다 쑤셔넣고 다녔었다. 공부 안했단 뜻이다. 축구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등교하며 조카에게 그동안 몰랐던, 아니 무관심했던 이야길 들었다. 학원 몇 개 다니냐 물으니 "4개 다닌다"고 했다. 영어·수학은 필수고 과학 등도 다닌다고 했다. 다 끝나면 밤 10시. 힘들지 않냐하니 "친구들도 다들 이렇게 다닌다"고 했다. 10분 남짓한 등교길에서 많은 얘길 들었다. 몰랐던 걸 알게 됐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고등학생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학업 부담이 더 클 터. 서울 서초구 소재 여고를 찾아 가방 무게를 재봤다. 정모 선생님(학생들 인증 미인) 협조로 3학년 한 반(28명), 2학년 한 반(29명) 학생들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봤다.
고3 학생들부터 시작했다. 가방 무게를 잰다 하니 교실이 떠들썩해졌다. "학생들 가방이 많이 무거워보였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맞아요, 무거워요"란 환호성이 교실을 떠들썩히 울렸다. '얼마나 무거웠니'. 그 말 한 마디로도 위로받는 듯 했다.
차례로 체중계에 가방을 올렸다. 불과 두 번 만에 뜬 숫자를 보고 놀랐다. 8kg. 가방을 메봤다. 지난번 소방관 체험 때 멨던 소방용 배낭(소방 파이프 등이 담긴 것) 같았다. 그때 무게가 10kg 남짓이었다. (☞ [남기자의 체헐리즘]'35kg 방화복' 입고 계단 오르니…온몸이 울었다 참고) 3학년 교실 위치는 5층, 엘리베이터는 없다. 이를 메고 계단으로 다녔을 터. 가방 속을 보니 책은 3~4권, 프린트와 시험지 등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가방 주인인 학생은 "학원에 다녀올 때마다 책이 계속 늘어나 그렇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8kg짜리 학생 가방을 메보는 기자. 소방관 체험 때 멨던 소방배낭(소방파이프가 든)과 체감 무게가 비슷했다. 마치 돌덩이 같았다. 아직 한창 자라야 할 학생들이 메기엔 너무 무거웠다. 이 반 교훈이 눈에 띈다. '80년을 위한 1년'./사진=정모 선생님
평소에 가지고 다니면 어떻냐고 물었다. "어깨가 아프다", "학교 오기 싫다"는 답이 많았다. 평균 등교 시간은 고3 학생 28명 중 16명(57%)이 30분 이상이었다.
가방 속에 든 건 학원책·프린트가 많았고, EBS 연계 교재가 너무 많다는 불만도 있었다. 들고 올라오면 어떻냐 묻자 "집에 가고 싶다", "심장이 아프다", "키가 작아진다", "등하고 허리에 엄청 부담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속 마사지를 하고, 병원서 물리치료도 하고, 침을 맞기도 한단다.
일상은 가방보다 더 묵직했다. 오후 4시30분에 하교하면, 곧장 학원에 간다. 평균 3~4개씩은 다닌다고 했다. 통상 밤 10시까지다. 끝나고 집에 가도 못 잔다. 학원 숙제 등 공부를 더해야 한다. 대다수가 새벽 1~2시에 잔다고 했다. 사물함이 있어도 책을 못 놓고 다니는 이유다. 그리고 새벽 6시면 일어난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여고 3학년 학생들에게 평소 힘든 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교사인 척 하면서 서 있는 게 기자다. 여기 서보니 딴짓 하는 것 다 보인다던 옛 스승님 말씀이 뭔지 알게 됐다./사진=정모 선생님
부모·친척들 기대도 힘들다. "기대·희망을 품는 건 기본적으로 부담"이라고 입을 모았다. 돌아오는 추석은 고비라고 했다. "누구누구처럼 대학 잘 가야지", "잘하고 있니"라는 말이 힘들단다. "그냥 바라봐주는 게 좋냐"고 물었더니,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냥 무관심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학생들은 지쳐 있었다.
가방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겠냐 물으니 학생들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애들 문제가 아니라 저희들(어른들) 문제"라며 "삶의 질, 복지 좋아지지만 학생들 책가방 무게를 아직도 못 줄이고 있다. 1970년대나 4차 산업혁명 시대나 똑같다"고 말했다. 사회 나가면 더 힘든데, 학창 시절만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선생님 한숨이 멀리서도 크게 들렸다.
학생들 가방 무게를 체감하기 위해 몸무게에 맞게 가방 무게를 늘려봤다. 평소 가방 무게(4.2kg)에서 두꺼운 책 3권을 더 넣으니 6.7kg이 됐다. 여기에 우산 하나를 더 넣으니 7kg 정도였다. 엄청 무거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7시, 준비해 둔 가방을 멨다. 평소보다 2배 정도 어깨가 묵직해졌다. 출근하기 싫어졌다(원래 그렇긴 했지만). 학교가기 싫다던 학생들 말이 생각났다.
걸음마다 발을 잡아당기는듯 했다. 불과 10분 만에 어깨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니 그 흔들림에 따라 몸도 춤췄다. 숨이 헐떡거렸다. 가방이 크니 승객들 피하기도 쉽잖았다. 오가며 툭툭 치니 몸이 이리저리 쏠렸다. 지하철을 탄 뒤엔 선반을 차지한 누군가 가방이 원망스러웠다. 빼곡한 승객들을 피해 내리는 것도 힘들었다. 가방을 앞으로 멨는데도 애쓴 뒤에야 겨우 내렸다.
학생들 가방 무게를 기자 몸무게로 비례해 무게를 늘리니 7kg. 이를 30일 오전 출근길에 메어봤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회사에 도착해 어깨를 보니 빨개져 있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어깨를 불가피하게 드러내 찍었다. 다소 선정적일 수 있다(19금)./사진=남형도 기자
회사 화장실에 가서 보니 어깨에 가방 멘 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다. 저녁 때 일 끝나고 지친 퇴근길은 더 힘들었다. 집에 갈 때만이라도 좀 편히 쉬고 싶은데, 어깨를 끊임 없이 짓눌렀다. 이걸 매일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지 공감이 됐다.
지난달 30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지명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본격적인 업무 시작 전 꼭 학생들 가방을 직접 메봤으면 한다. 책을 빼는 건 금지다. 학생들과 똑같이, 계단을 올라 교실로 향했으면 한다. 그 무게감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사진=이동훈 기자
아마 어깨가 꽤 묵직할 것이다. 그걸 메고 학생들은 만원 버스·지하철을 타고 휘청거린다. 5층짜리 학교 계단을 오르고, 학원을 간다. 책은 쌓이고 가방은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감을 임기 내내 잊지 말고 교육 환경을 바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