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칼텍의 ‘100번째 학생’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18.08.2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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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칼텍의 ‘100번째 학생’


세계 대학들의 랭킹표를 보면 특이한 대학이 눈에 띈다. 캘리포니아공대(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이하 칼텍)이다. 칼텍은 종합대학교가 아니고 학부에서는 과학, 대학원에서는 공학에 특성화한 대학이다. 학생이 2200명 남짓에 교수가 300명 정도니 유수 대학들의 10분의1 규모다(하버드는 각각 2만2000명과 4600명이다). 그런데 칼텍은 어떤 랭킹에서도 모두 10위 안에 든다. 심지어 최근 영국 타임스랭킹은 칼텍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이어 스탠퍼드와 공동 세계 3위에 올려놓았다.

사립인 칼텍은 1891년 세워졌다. 스탠퍼드와 버클리가 정치권에 방해 로비를 펼쳐 주립 종합대학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며 원자폭탄 개발에서 중추 역할을 한 리처드 파인만이 재직한 학교로 유명하다. NASA와도 종종 같이 일한다. 소재지 파사데나 북쪽에 NASA의 R&D부문인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있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하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마션’에도 나온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애로웨이 박사(조디 포스터 분)도 칼텍을 나왔다고 되어 있다.



이 작은 대학이 72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4명의 필드메달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라이너스 폴링은 졸업생이자 교수로 화학상과 평화상을 받았다. 여섯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감독 프랭크 카프라도 화공과 출신이다.

칼텍의 오늘에는 MIT 출신 천체물리학자 조지 헤일(George Hale·1868~1938년)의 기여가 가장 컸다는 데 이론이 없는 듯하다. 헤일은 태양의 흑점에서 발산되는 자기장을 발견한 학자로 유명한데 우리 어릴 때 과학 교과서에 사진이 항상 나온 윌슨산 천문대와 팔로마산 천문대를 설립한 사람이다. 헤일은 탁월한 학자일 뿐 아니라 학교를 위해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끌어오는 일에도 전념했고 성공했다. 덕분에 칼텍은 1920년대에 일급 연구대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칼텍의 교육이념은 의외로 T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나왔다. 이른바 ‘100번째 학생’(Hundredth Man)이라는 것이다. 1911년 3월21일 캠퍼스를 방문한 루스벨트가 한 연설 중에 나온다. “나는 칼텍을 졸업한 매 100명의 학생마다 99명의 학생이 그 누구보다 나은 실력을 발휘하는 인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학생들이 지금 건설되는 파나마운하 같은 위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할 그런 인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100명 중 마지막 한 명은 여러분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조지 헤일과 같이 인문·과학적 소양을 갖추고 자신과 동료들의 매트릭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드물고 귀한 인재가 되기를 바랍니다(의역).”

헤일과 칼텍은 이 ‘100번째 학생’ 이념을 구현하는데 진력했다. 1921년 칼텍 이사회는 과학과 공학의 교육을 수학, 물리학, 화학을 필두로 한 순수과학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그 외에도 영문학, 역사학, 경제학 같은 과목들을 커리큘럼에 대거 포함하기로 결정해서 오늘에 이른다.

온갖 자원을 가진 공룡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은 지식과 정보의 힘밖에는 없다. 지금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교육개혁이 활발히 논의되는데 최소한의 수월성 추구와 융합형 리더 양성이 미래를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칼텍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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