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서부지법에서 열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가 지난 14일 내린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은 수행비서 김지은씨(33)와의 위력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가 위력을 상시적·일반적으로 행사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과 김씨는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고 여성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선고는 올해 초부터 크게 일었던 미투 운동 이후 첫 주요 판결로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국내 미투 운동은 문화계·학계 등을 거쳐 3월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안 전 지사에 대한 김씨의 폭로 이어졌다.
이날 판결이 미투 운동을 통해 제기된 유사한 권력형 성범죄에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공대위는 "온갖 유형·무형력을 행사하며 괴롭히는 상사들은 이제 '면허'를 갖게 된 것인가"라며 "성폭력으로 고발되지 않고, 고발되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지 매뉴얼을 갖게 된 것인가"라고 재판부에 되물었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비서 김지은씨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무죄 선고를 규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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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들은 추후 재판에서는 안 전 지사의 죄가 인정되도록 지속해 사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는 "2심과 대법원까지 계속해서 거리에 나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과 이번 판결이 맞물리며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와 워마드 운영자 수사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던 여성운동에 이번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는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우리 사법부가 대중적인 정서와 여성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걸 증명한 것"이라면서도 "무죄 판결이 또 다른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교수는 "일부 워마드를 중심으로 과격 양상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일부에 그칠 것"이라며 "여성 인권 보호와 개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도덕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판부는 김씨 진술이 안 전 지사의 혐의를 입증할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A변호사는 "원치 않는 성관계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는데도 명확한 거절 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판부가 안 전 지사가 받을 사회적 비난과 형사 책임을 별개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