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시인은 이제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8.08.1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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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이승하 시인 '나무 앞에서의 기도'

[시인의 집]시인은 이제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일찍이 윤동주 시인은 '쉽게 씌어진 시'에서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길이 '천명(天命)'이라지만, 나라를 빼앗기고도 쉽게 시를 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한 시인이 윤동주라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인이 이승하다. 천생 시인 이승하(1960~ )의 시집 '나무 앞에서의 기도'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괴되고 멸종되어 가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미안함, 부끄러움과 반성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폭력과 공포·감시·처벌 등에 대한 시를 꾸준히 써온 시인이 이번에는 15년 동안 써온 생태시를 한 권으로 묶은 것. 제1부 '나무, 생명', 제2부 '문명, 죽음', 제3부 '인간, 아픔'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집은 생명에 대한 연민, 문명 비판, 지구를 죽음의 별로 만들어 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다.



나무들을 마구 베어낸 숲
숲이 벌거숭이가 된다
밑둥치만 남은 나무들이
서른 살 넘은 자신의 나이를 말해준다

시민을 위한 공원이 만들어진다
방방곡곡 깨끗한 자전거도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벌목' 전문




여는 시 '벌목'은 30년 된 "나무들을 마구 베어"내고는 인간을 위한 편의시설인 시민공원을 만들고, "방방곡곡 깨끗한 자전거도로"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전거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편의시설이라 할지라도 자연파괴는 최소한으로 한정해야 하고, 그마저도 자연친화적으로 해야 함에도 "숲이 벌거숭이"가 될 만큼 나무들을 베어낸 것과 전국에 자전거 도로를 내면서 강산을 망친 것에 대해 조용히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한 자리에서 평생을 사는 나무
나무의 집은 나무
벌레들이 집을 지어 같이 살고
새들도 둥지 틀고 함께 산다
매미들의 쉼터 딱따구리들의 놀이터

폭풍 몰아치는 밤에는 나무도 몸을 떨고
폭설 퍼붓는 밤에는 가지도 뚜두두둑 부러진다
자신을 지키기가 정말 어려운데
나무야 너는
네 몸 네 마음 지키며 살아왔구나


바람 부는 대로 휘어져도 꺾이지 않고
잎 피우는 일이며 잎 떨어뜨리는 일이며
그것이 제일인 양 때가 되면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나무
생명체는 한 번 죽기 전 한 생을 살 뿐

그 마음으로 살다 그 자리에서 죽어
스스로 마련한 무덤
고사목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네 자리를 지키라고
그 일이 아주 어려울 거라고
- '고사목을 위하여' 전문


나무를 벤다는 것은 단순히 나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 집을 지은 벌레들과 둥지를 튼 새들과 매미와 딱따구리의 쉼터와 놀이터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숲이 파괴되는 것은 숲에 사는 동식물들이 멸종의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나무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폭풍 몰아치는 밤에는 나무도 몸을 떨고/ 폭설 퍼붓는 밤에는 가지도 뚜두두둑 부러"져도 태어난 자리에서 평생을 산다. "그 자리에서 죽어/ 스스로 마련한 무덤"에 든다. 그 자리에서 나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바로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아주 어"렵다. "네 자리"는 살고 있는 집일 수도, 직장일 수도, 시인의 길일 수도 있다. 시인은 "자연의 일부로 살다 서서히/ 자연으로 스며드는"('聖나무 앞에서의 목례') 나무의 삶에 경배하고 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한때는
꽃이 화들짝 피어나는 것이
신비였네 뜰 앞의 꽃들이
우수수 한꺼번에 지는 것이
경이로웠네
만월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별똥별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

꽃이 피면 우주가 열리고
꽃이 지면 우주가 닫힌다고 말한
시인은 이제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크리스마스이브쯤 태어날 것 같은
'가'가 '나'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복제 인간 그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네
- '인간 복제' 전문


시집 제2부 '문명, 죽음'에는 조류독감, 고래사냥, 새만금 개발, 허리케인 카트리나, 컴퓨터, 인터넷 자살사이트, 인공합성바이러스, 원폭과 원전 피해, 4대강 개발 등 인간 문명이 불러온 파괴와 피해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제2부에 수록된 이 시는 인간 복제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시인(사람)은 꽃이 피고지고, 달이 뜨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을 신비롭고 경이롭게 보았다. 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태어나고 죽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인간 복제 기술은 자연의 순리를 거부한다. 삶과 죽음이 인간에 의해 관장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동시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오만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동식물이나 힘없는 사람들의 몫이며, 그 결과는 결국 '죽음'이다.

표제시 '병 나은 뒤'는 죽음에 이를 만큼 아팠던 시인이 보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아픈 시간은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느리게 지나간다. 시인이 꽤 오래 앓았나보다. 시인이 앓고 있는 동안 "금붕어들이 저렇게 재빠르게 움직"일 만큼 커버렸고, "베란다 화분의 난이 저렇게 푸른 손 벌리고 있"는 걸 보니. "거리의 모든 것이 낯설"지만 오랜 병에서 놓여나 마음은 가볍고 상쾌하다. "온몸 두둥실 떠 있는" "팔 벌리면 날개가 돋을 것 같은" 기분도 잠시, 결국 "다리 허청거려 길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서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개미 한 마리"와 "자벌레를 만나 맹렬하게 싸우는 광경"을 본다. 시인은 다시 깨닫는다.

"세상 여전하구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본다(見)는, 눈과 눈이 마주치는 행위에 괴로워한다. "죽어가던 사슴의 눈"('그 사슴의 눈')이나 "형형한 고양이의 눈/ 퀭한 장모님의 눈"(이하 '눈'), "원망 가득한 그 눈"들이 뇌리에 박혀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인이 진정 바라는 세상은 "더 이상 신세지기 싫었는지/ 어디론가 솔가하여 떠나버"('염치')린 고양이 일가처럼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염치가 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무 앞에서 시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싶은 것일까.

◇나무 앞에서의 기도=이승하 지음. 케이엠펴냄. 148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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