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금융권 노조 ,9월 총파업 나서는 이유는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18.08.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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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동시사용·정년 연장 등 일부 주장 공감대 형성 못해…실제 파업해도 큰 혼란 없을 듯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가운데)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가운데)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고용 안정성과 복지 수준이 좋아 대표적인 ‘귀족노조’로 꼽히는 은행권 노동조합이 오는 9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점심 때 1시간 은행 문을 닫고 전 직원이 같은 시간에 점심식사를 하게 해달라는 요구와 정년을 2년 연장해 임금피크제 진입 시점을 2년 늦춰 달라는 요구를 사측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예고대로 9월에 총파업에 돌입하면 2000년 7월, 2014년 9월, 2016년 9월 총파업에 이어 4번째다.

◇연봉 1억원+각종 복지 ‘귀족노조’ 은행권 노조=지난해 은행권에서 직원 평균 연봉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씨티은행으로 1억원이었다. 평균 근속연수는 15.7년이었다. 이어 신한은행 9200만원,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각각 9100만원, 우리은행은 8700만원 순이었다. 대표적인 귀족노조로 꼽히는 현대차와 기아차 직원의 평균 연봉 9200만원과 9300만원에 맞먹는다.



억대 연봉 금융권 노조 ,9월 총파업 나서는 이유는
특히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임금 상승률은 10%에 육박했다. KEB하나은행이 12.2%로 가장 높았고 △국민은행 9.6% △우리은행 8.8% △신한은행 8.3% 순이었다. 은행에는 아직 ‘호봉제’가 남아 있어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률이 낮아도 호봉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 상승분이 있어 전체 임금 상승률은 높아진다. 지난해처럼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하면 성과급도 많아진다.

복리후생 수준도 좋다. 대부분의 은행이 본인과 가족 의료비 지원,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자녀 학자금 지원 등 대기업 수준의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희망퇴직을 해도 자녀의 대학교 학자금을 지원한다. 전셋값이 올라 수도권에서는 유용성이 떨어졌지만 은행이 일정 금액 내에서 일정 기간 전세 계약을 맺고 살 집을 제공해주는 건 은행들이 쉬쉬할 정도로 혜택이 큰 복지제도다.



출산휴가도 법정 기준인 1년보다 더 긴 2년을 보장한다. 최근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강조되면서 다양한 여가 생활도 지원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의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은행도 적지 않다.

◇금융노조 “점심시간에 은행 문 닫고 정년도 연장해달라” 파업=제조업과 비교해 상당히 좋은 근로 여건인데도 금융노조가 파업하려는 이유는 점심시간 동시 사용과 정년 및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 연기를 둘러싼 노사간 이견 때문이다.

금융노조가 주장하는 내용 중 노동시간 단축은 사측도 공감한다. 이에 따라 사측은 내년 7월1일부터 도입해도 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내년 1월1일부터 예외직무를 제외하고 조기 도입하자고 제안했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예년보다 신규채용 규모도 늘렸다.


하지만 점심시간 동시사용은 은행 문을 1시간 닫아야 해 사측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노조는 은행원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점심을 먹다 보니 점심을 급하게 먹게 되고 점심시간 1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후 12~1시가 아닌 다른 시간대에 점심시간을 잡으면 직장인의 불편도 최소화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시간대든 은행 문을 닫으면 일하다 잠시 짬을 내 은행을 찾는 직장인들의 불편이 클 수 밖에 없다.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늘리고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도 55세에서 57세로 늦추자는 금융노조 주장에 대해서도 사측은 난색이다. 정년이 늘어나면 그만큼 신규채용은 축소될 수밖에 없어서다. 정년연장은 조합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다. 30~40대 조합원들은 가뜩이나 지점수가 줄어들면서 지점장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정년이 연장되면 인사적체가 더욱 심해져 불만이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일부에서 금융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폄훼하지만 금융노조의 요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며 “지역별 순회집회와 지부 대표자회의를 거쳐 9월 중순 총파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년전 시중은행의 파업 참가율은 3%=금융노조는 총파업에 조합원 전원 참여를 자신하지만 사측 등은 예상보다 파업 참여 인원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2년 전 파업 때 금융노조는 파업 참여 인원이 7만5000명이라고 주장했으나 정부가 파악한 인원은 2만명에 못 미쳤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파업인원을 1만8000명 수준으로 전체 은행원 대비 참여율을 15% 수준으로 파악했다. 특히 지점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4대 시중은행은 참여율이 3% 내외였다.

조합원 의지도 2년 전보다 약해졌다. 이번 파업 찬반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9만3427명 중 82%인 7만6776명이 참여했고 이중 93.1%인 7만1447명이 찬성했다. 금융노조는 압도적 찬성률이라고 하지만 2년전 참여율과 찬성률인 87%, 95.7%보다 낮다.

무노동 무임금도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를 가로막는다. 은행별, 연차별 삭감액이 다르지만 하루 파업에 참여하면 월급이 최대 30만원 깎이는 은행원도 있다. 과거에는 파업을 연수나 출장 등으로 처리해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은행들은 관련 규정을 철저히 적용하고 있다.

파업 참여 인원이 많다 해도 고객 불편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비대면 거래가 급증해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많지 않아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실제 파업 규모에 따라 고객 불편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2년전 수준이라면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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