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의 체헐리즘]커피, 1년간 끊어봤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8.08.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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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잔씩 달고 살던 커피와 이별 선언…한 달은 졸음 속 금단현상, 세 달은 적응기, 반년 지나니 떨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수동 휠체어를 직접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남기자의 체헐리즘]커피, 1년간 끊어봤다
서른이 훌쩍 넘으니 1년에 기억하는 날이 몇 안된다. 그닥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탓이다. 그래도 몇몇 날들은 뇌리에 박혀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다. 평소와 다른 하루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8월8일이 그랬다. 특별한 날은 아녔다. 굳이 따지자면 '세계 고양이의 날' 정도였다. 아침에 알람을 다섯 번 끈 뒤 겨우 몸을 일으키고, 모르는 이와 인상을 찌푸리며 만원 지하철을 견디고, '벌써 퇴근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출근한 날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책상에서 '커피잔'이 사라졌다. 이건 꽤 큰 변화였다. 커피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커피사(史)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작됐다. 2대2 미팅 때였다. 첨 마시는 주제에, 있어보이려고 '에스프레소'(고온, 고압으로 추출한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를 주문했었다. 뭔지도 몰랐었다. 작디 작은 잔을 우습게 봤다가, 엄청 쓴 맛에 '이런 게 어른 세계인가' 애써 웃었던 기억. 그 때부터 졸릴 때 잠을 쫓는 용도로 종종 마셨었다.

그리고 직장에 들어와선 달고 살았다. 하루 평균 3~4잔, 많게는 5~6잔씩 마셨다. 아침엔 일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점심 먹고는 식후 졸음을 깨려고, 기사 마감을 앞둔 오후 3~4시에는 게을리 보낸 오전을 만회하기 위해, 초인(超人)적인 집중을 하려고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핑계는 많지만 사실 '습관'이었다. 안 마시면 왠지 허전한 것 같은.

서울 망원동 한 카페서 1년 전 여름, 마지막으로 마신 아인슈페너(아메리카노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만든 커피). 진한 커피에 달달한 크림이 일품이다./사진=남형도 기자서울 망원동 한 카페서 1년 전 여름, 마지막으로 마신 아인슈페너(아메리카노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만든 커피). 진한 커피에 달달한 크림이 일품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커피를 끊기로 결심한 날에도 커피를 마셨다. 아내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좋아하는 카페서 '아인슈페너'(아메리카노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만든 커피) 한 잔을 마신 날이었다. 그리고 차를 탔는데 유독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이성 앞 사춘기 소년 마냥, 조 발표를 처음 한 대학생 때 마냥 벌렁 거렸다. 비정상적 두근거림은 밤까지 이어졌다. 기어코 잠도 설치게 했다. 몸이 보내는 경고 같았다.


일본 의학박사 탄베 유키히로는 저서 '커피과학'에서 이를 '카페인 중독'이라 했다. 단기간 대량의 커피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급성 증상이라는 것. 탄베 박사는 "카페인 250mg 이상을 섭취했을 때 신경과민과 안면홍조 등 12개 진단항목 중 5개 이상이 나타날 경우"라고 설명했다. 불안과 불면, 손발 떨림, 속쓰림 등이 주요 증상이다.

다음날 오전 8시, 처음으로 커피 대신 허브티를 마셨다. 카페인이 1g도 없는 '캐모마일차'(땅에서 나는 사과라는 뜻의 이름의 허브)였다. 아내가 커피 대신 마시라고 예전에 사줬었다. 캐모마일차 10포, 루이보스차 10포 등 허브티가 총 20포였다.

이내 '커피 금단 현상'이 시작됐다. 오전 9시가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 30분이 더 지나자 머리가 의지와 상관 없이 땅으로 수렴했다. 건너편에 앉은 후배들 보기가 부끄러워 화장실에 갔다. 다시 돌아왔는데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성실한 기자 이미지였는데, 당황했다. 고3 수험 생활 때 잠을 쫓던 극약 처방을 내렸다. 찬물 세수를 하고, 양쪽에 셀프 귓방망이를 날리며 물기를 말리는 거였다. 잠은 좀 달아났지만 머리는 멍했고, 집중이 잘 안됐다.

커피 대신 회사 책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텀블러와 캐모마일 티백.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사진=남형도 기자커피 대신 회사 책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텀블러와 캐모마일 티백.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나니 더 심해졌다. 평소 같으면 커피 3잔은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몸이 카페인에 적응된 듯했다. 다시 졸음이 쏟아져 화장실로 또 향했다. 몸을 앞으로 쭉 기울여 스트레칭을 했다. 정말 안하려고 했던, 허벅지 꼬집기도 시전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꾸벅꾸벅 조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화장실 변기에 앉아 10분 정도 졸았다. 혹시 급했을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죄한다.

한 달 정도는 이 같은 증상이 이어졌다. '카페인 의존' 이었던 것. 탄베 박사는 "카페인 의존은 일반적으로 하루 섭취량이 400mg을 넘는 상용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정의했다. 기자가 하루에 마셔오던 커피는 아메리카노 평균 3~4잔으로, 카페인 섭취량이 375mg~500mg에 달했다. 카페인 의존 증상은 두통과 집중력 저하, 피로감, 졸음 등이다. 두통 등 신체증상과 불안 등 정신증상이 동반된다. 탄베 박사는 "카페인을 요구하는 갈망은 있지만, 먀악 등과는 달라서 의지력만으로 충분히 자제 가능한 범위"라고 설명했다.

영국 바리스타 트리스탄 스티븐슨은 저서 '커피 상식사전'에서 "카페인 공급이 끊기면 늘어난 아데노신 활동으로 우리 몸이 평소보다 더 큰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바로 '카페인 금단 현상'"이라고 알려줬다. 심한 감정기복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카페인이 기분이나 식욕, 수면 등을 조절하는 세르토닌이란 물질의 생성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과정은 험난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당겼다. 피로감은 심해졌고,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또 단체 생활에서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왠지 튀는 행동이기도 했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 캐모마일을 외쳐야 했다. 허브티는 가격도 5000~6000원대로 대개 비쌌다. 티백 하나 넣은 차란 생각에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엄밀히 말해, 허브티가 커피 대체재가 되긴 힘들었다. 심신 안정엔 도움이 됐지만, 맛이 별로 없었다. 만족감을 크게 주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서 커피 대신 차 한 잔을 마시는 게 일과가 됐다. 사진은 예뻐 보이게 찍은 연출샷이다./사진=남형도 기자집에서 커피 대신 차 한 잔을 마시는 게 일과가 됐다. 사진은 예뻐 보이게 찍은 연출샷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익숙해지는 데는 약 세 달이 필요했다. 이만큼 지나자 커피를 안 마셔도 생각이 덜 났다. 가끔 좋은 카페에 가면 생각나는 정도였다. 허브티를 마시는 행복도 알게 됐고, 익숙해졌다. 주위서도 으레 "커피 안 마시지?"라고 알게 됐다. 커피를 끊은 지 반년 이후부터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거의 사라졌고, 1년 정도 된 지금은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봐도 별 생각이 안 든다. 커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달라진 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좋은 건 몸이 내는 소리에 좀더 정직하게 귀 기울이게 됐다는 것. 피곤한 몸을 그때 그때 알아차릴 수 있게 됐고, 이를 억지로 깨워 쥐어짜지 않고 졸릴 때 쪽잠이라도 자서 피로를 풀어줄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어느 순간 만성피로가 오히려 줄고 몸이 개운해 졌다. 또 커피를 마실 땐 잠시 각성 효과가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극심한 피로가 몰려 왔었는데, 이 같은 피로감도 사라졌다.

밤 11시만 되면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와 푹 잘 수 있게된 것도 복(福)이 됐다. 커피 각성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하루 활동으로 피로해지면 두뇌엔 아데노신이 쌓이는데, 커피 속 카페인이 아데노신 대신 수용체에 달라붙어 졸림 유도를 방해했었는데, 그런 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따금씩 커피를 과량 마셨을 때 속이 쓰렸던 것도 해결됐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도 없어졌다.

제주도를 찾았을 때 커피를 마시며 찍은 과도한 설정샷. 커피를 끊은 지금도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제주도를 찾았을 때 커피를 마시며 찍은 과도한 설정샷. 커피를 끊은 지금도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쉬운 건 커피 그 자체다. 주말 아침엔 아내와 커피 한 잔에 음악을 곁들여 얘기하는 걸 즐겼는데, 차(茶)가 대신했지만 여전히 아쉽다. 여행가서 낯선 곳의 원두를 사는 게 좋았는데, 이를 못 즐겨 또 아쉽다. 겨울엔 달콤 쌉싸름한 카페모카가, 봄엔 고소한 라떼가, 여름엔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가을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커피 상식사전'에 따르면 커피는 직접 단맛을 내는 음료는 아니지만, 로스팅 과정에서 익숙한 달콤한 향기와 원두 내부 복잡한 당분과 캐러멜 성분이 만나 혀에 달콤한 느낌을 준다. 후각으로 느끼는 아로마(커피 향)는 단순히 코로 들이마시는 냄새뿐 아니라 입 안에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숨을 내쉴 때도 느낀다. 커피가 그간 인생에서 여러 '풍미'를 더해줬던 건 분명한 것 같다.

건강이 우려된다면 FDA(미국 식품의약국) 권장 하루 카페인 권장량을 지키면 된다. 하루 최대 400mg이다. 아메리카노(125mg) 기준 하루 3잔, 콜드브루(212mg) 기준 두 잔이 안되는 정도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커피를 둘러싼 수많은 연구도 참고할 만하다. 긍정적·부정적 영향이 혼재한다고 알려졌다.

이진성 코니셔클럽커피 대표는 저서 '닥터 커피'에서 커피와 각종 질환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이는 △심혈관 질환(하루 3~5잔 블랙커피 마시는 사람 발생률이 가장 낮음) △뇌졸중(하루 2~6잔 커피 마신 사람이 한 잔도 안 마신 사람보다 위험 낮음) △심장마비(하루 4잔 마시면 위험도 가장 낮고 10잔 이상 역효과) △간암(커피 마시는 사람이 안 마시는 사람보다 40% 가까이 간세포 암종 위험 줄임) 등이다. 반면 '커피 과학'에선 커피가 △카페인 이탈 두통 △임산부 유산 위험 증가 △패닉 증후군 증상 악화 △방광암 위험 증가 △항우울증 약 효과 저하 등 부작용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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