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의 체헐리즘]위험한 '음주운전' 직접 해봤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8.08.0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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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체험용 고글' 쓰고 운전, 장애물 잇따라 '쾅쾅'…거리 감각, 판단력 다 떨어져 '위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수동 휠체어를 직접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기자가 1일 오전 7시쯤 일산 서부경찰서 뒤쪽 도로서 음주운전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2.0)을 쓰고 장애물을 피하는 주행을 하고 있다./사진=일산 서부경찰서 기자가 1일 오전 7시쯤 일산 서부경찰서 뒤쪽 도로서 음주운전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2.0)을 쓰고 장애물을 피하는 주행을 하고 있다./사진=일산 서부경찰서


[남기자의 체헐리즘]위험한 '음주운전' 직접 해봤다
두 다리가 이상했다. 왼쪽과 오른쪽이 따로 놀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걸었다. 이번엔 한쪽 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시야는 흐릿, 기분은 몽롱했다. 불빛은 네온사인 마냥 영롱하게 반짝였다. 예뻤다. 눈을 몇 번씩 감았다 떴다. 느낌은 비슷했다. 마치 소주를 많이 마신 것 같았다. "잘 봐, 나 똑바로 걷고 있어. 안 취했어"라고 외치며 걷는데, 다른 이들 눈에는 바람인형처럼 흐느적대는, 그런 것 말이다.

진짜 술을 마신 건 아녔다. 여긴 경찰서니까. 술 마신 것처럼 체험하는 중이었다.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쓴 뒤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도 각기 달랐다. 기자가 착용한 건 혈중 알코올 농도 0.2%짜리. 대략 소주 10잔 이상을 마신 정도라고 했다. 주량(약 소주 한 병, 기분과 요일에 따라 다소 다름)을 훌쩍 뛰어 넘은 수치였다.



이번엔 장애물 사이를 통과해봤다. 하나를 무사히 넘었다 생각했는데,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또 다른 장애물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마지막 지점 즈음에선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스꽝스러웠는지, 지켜보던 박가영 일산서부경찰서 경사(35)가 폭소를 터트리며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경기 일산 서부경찰서가 제공한 음주 운전 체험용 고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0.2%, 0.2%(야간 효과 추가) 등을 체험할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경기 일산 서부경찰서가 제공한 음주 운전 체험용 고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0.2%, 0.2%(야간 효과 추가) 등을 체험할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무더위에 굳이 비틀대는 체험을 하기로 맘 먹은 이유는 '음주 운전' 때문이었다. 술 마시고 운전하기 쉬운 '휴가철'이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21.9%가 휴가철에 발생한다. 여행지서 술 한 잔이 빠지면 섭섭한데, "잠깐인데 뭐 어떠냐"며 시작되는 달콤한 유혹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극심하다. '살인 흉기'가 되고, 실제 사람이 숨지기도 한다. 지난 5월30일 새벽에는 20대 노모씨(27)가 만취 상태로 역주행 해 마주 오던 택시를 들이 받았다. 이로 인해 승객 김모씨(38)가 숨졌다. 교사 아내의 남편이자, 9살·5살 난 어린 두 자녀 아버지였다.

실제 술 마시고 운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넘으면 당연히 '처벌' 받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범법자가 될 순 없었다. "기레기가 기사 쓴단 핑계로 음주운전 했네ㅋㅋ"란 무서운 댓글도 피하고 싶었다.



다른 방법을 찾다 술을 안 마시고도 '음주 체험'을 할 수 있는 고글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안전 교육을 한단 기사를 봤다. 고글을 쓰면 술을 마신 것 같은 효과가 난다는 것. 미국에서 특허도 받은 제품이라고 했다. 이에 고글을 빌려 음주 운전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열정 넘치는, 일산서부경찰서 홍보·교육 담당 박가영 경사(35)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1일 오전 7시, 일산 서부경찰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뒤쪽 도로서 음주 운전 체험을 실시했다. 정재승 교통관리계장 협조로 30여분간 안전 확보된 도로를 주행할 수 있었다. 혹시나 다른 차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단 우려 때문이었다.

음주 운전 체험을 위해 준비된 고글은 총 4가지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0.2%, 0.2%(야간 효과 추가) 등이었다.

50여m 되는 빈 도로에 장애물 10개를 세워두고, 직진 주행부터 해보기로 했다. 시속은 30km로, 횡단보도 이전 정지선까지 주행하는 게 목표였다.


우선 고글을 쓰지 않고 직진 주행을 해봤다. 적정 속도를 지키며 차가 조용히 미끄러져 갔다. 경찰 4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긴장감 때문에 몸에 힘이 더 들어갔다. 주행하다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아 정지선에 정확히 멈추게 했다.

이어 혈중 알코올 농도 0.05% 효과가 나는 고글을 쓰고 직진 주행을 해보기로 했다. 소주 2~7잔을 마신 효과로, 음주 운전 적발시 면허가 정지되는 수치였다.

고글을 쓰니 정신이 약간 몽롱한, 알딸딸한 느낌이 났다.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초점도 살짝 나간듯 주변 환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2%)을 쓰고 직진 주행을 한 뒤 차선을 위반한 기자의 차량. /사진=경기 일산서부경찰서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2%)을 쓰고 직진 주행을 한 뒤 차선을 위반한 기자의 차량. /사진=경기 일산서부경찰서
그래도 직진 주행이야 별 문제가 있겠냐 싶어 자신 있게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추후 박 경사가 촬영한 영상을 확인해보니, 차량은 비교적 똑바로 주행했지만 멈춰선 위치가 정지선을 넘어서 있었다. 그것도 자동차 길이의 절반 정도나 앞으로 나와 있었다. 거리감이 다소 달라진 탓이었다. 사물이 눈에서 멀어진 건지, 가까워진 건지 잘 분간이 안됐다. 사람이 지나갔다면 위험천만할 수 있었다.

장애물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지그재그 주행도 해보기로 했다.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쓰기 전에는 장애물 사이를 무난하게 빠져 나갔다. 장애물 10개 중 건드린 게 한 개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짜리 고글을 쓰고 장애물 피하기에 도전했다. 소주 10잔 이상을 마신 것으로, 운전시 면허취소는 물론 징역 1~3년 처벌을 받는 심각한 수치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2%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쓰고 바깥 풍경을 보면 실제 이런 느낌이다. 만취 상태에서 사물 감지 능력이 이 정도란 의미다./사진=남형도 기자혈중 알코올 농도 0.2%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쓰고 바깥 풍경을 보면 실제 이런 느낌이다. 만취 상태에서 사물 감지 능력이 이 정도란 의미다./사진=남형도 기자
고글을 쓰니 초점이 더 흐릿해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좌우 분간도 잘 안됐다. 걸어보니 감(感)에 의지해 간신히 움직이는 정도였다. 사물 형체는 대부분 흐릿하게 보였다. 불빛은 오색빛깔로 더 영롱해졌다. 썼다 벗어 살펴보니, 인지하던 것과 사물 좌우 위치도 달랐다.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거리감도 엉망이 됐다.

진짜 취한 것 같은 상태로 운전자석에 앉으니 몹시 불안해졌다. 장애물 사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내 1개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차량 앞 범퍼를 통해 장애물을 건드렸단 느낌이 전해져왔다. 긴장이 됐지만 정신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여러개를 연달아 치는 느낌이 들었다. 반응 속도도 더 느려졌다. 장애물을 피한다기 보단 볼링핀을 쓰러트리듯 가는 느낌이었다. 주행 후 촬영 영상을 확인했다. 장애물 10개 중 7개를 쓰러뜨리며 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27일 오전 3시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판교분기점 인근 편도 5차로 도로에 30대 여성 운전자가 만취상태로 역주행하다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들이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 1명이 중상, 3명이 경상으로 치료중이다. 총 7대의 차량이 부서졌다. 사고 당시 최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202%로 만취 상태였다. 사진은 고속도로를 역주행한 차량./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지난해 8월27일 오전 3시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판교분기점 인근 편도 5차로 도로에 30대 여성 운전자가 만취상태로 역주행하다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들이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 1명이 중상, 3명이 경상으로 치료중이다. 총 7대의 차량이 부서졌다. 사고 당시 최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202%로 만취 상태였다. 사진은 고속도로를 역주행한 차량./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직접 겪어보니 그간 납득이 안될 만큼 한심해보였던, 음주운전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들이 이해가 갔다. 소주 몇 잔만 마셔도 정상적인 판단으로 주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 도로에 차가 많았다면, 쳐버린 장애물들이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하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한 잔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고 무심코 했던 생각들이 모두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됐다.

음주 상태에 대한 보다 정교한 느낌을 알기 위해 경찰서 안 강당으로 들어왔다. 강단 위에 장애물 6개를 세우고 사이사이를 걸어가보기로 했다. 아직 써보지 않은 야간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2%)을 착용했다. 아까와 똑같이 알딸딸 한 상태에서 어두워지니 시야가 더 좁아지고 무서워졌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뛰어가 봤다. 좌우 다리를 꽃게처럼 움직이며 휘청이는 모습에 차마 영상을 끝까지 못 보고 껐다. 장애물도 거의 다 우당탕탕 치며 넘어뜨렸다. 벽이 가까워지는 걸 느껴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반응 속도가 떨어져 결국 부딪히기도 했다. 술을 마신 상태가 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2개를 각각 쓰고 카카오톡에 느낌을 글로 써봤다. 제대로 적을 수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2개를 각각 쓰고 카카오톡에 느낌을 글로 써봤다. 제대로 적을 수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술을 마시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박 경사는 "술을 마시면 판단·운동 능력이 떨어져 돌발상황 대처가 어렵다"며 "특히 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구피질의 기능이 활발해져 충동 제어가 힘들어지면서 위험한 사고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주 운전 사고가 줄어들곤 있지만 갈 길은 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음주 운전 사고는 2015년 2만4399건에서 지난해 1만9517건으로 줄었지만, 적발 건수는 매년 23만여건 이상(2012~2016년 기준)이다. 2회 이상 적발된 재범률은 2016년 45.1%로 2012년 41.9%에 비해 3.2%p(포인트) 상승했다. 3회 이상 적발 비중도 2016년 19.3%로 2012년과 비교해 3.3%p(포인트) 높아졌다.

/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
특히 단속 현장에서 느끼는 음주 운전 경각심은 아직도 낮다. 박 경사는 "술 취한 상태인 운전자들은 단속현장에서 단속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하거나, 벌금을 깍아달라고 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고 말했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음주 운전 체험의 느낌은 또렷했다. 술 취한 이들이 이를 까먹는 건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 정신에 만취를 경험하니 잊지 못할 경고가 됐다. 2년 전, 차를 끌고 간 제주도 한 흑돼지 삼겹살 집에서 술 한 잔만 마실까 고민하다 안 마신 과거의 내가 고마웠다. 술 마셨다면 대리 운전을 부르자. 스스로 깨려거든 소주 1병은 6~8시간, 2병은 1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음주 운전이 괜찮다는 독자들을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음주 고글(0.2%)을 쓰고 뛰어본 마지막 영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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