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1일 오전 7시쯤 일산 서부경찰서 뒤쪽 도로서 음주운전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2.0)을 쓰고 장애물을 피하는 주행을 하고 있다./사진=일산 서부경찰서
진짜 술을 마신 건 아녔다. 여긴 경찰서니까. 술 마신 것처럼 체험하는 중이었다.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쓴 뒤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도 각기 달랐다. 기자가 착용한 건 혈중 알코올 농도 0.2%짜리. 대략 소주 10잔 이상을 마신 정도라고 했다. 주량(약 소주 한 병, 기분과 요일에 따라 다소 다름)을 훌쩍 뛰어 넘은 수치였다.
경기 일산 서부경찰서가 제공한 음주 운전 체험용 고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0.2%, 0.2%(야간 효과 추가) 등을 체험할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실제 술 마시고 운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넘으면 당연히 '처벌' 받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범법자가 될 순 없었다. "기레기가 기사 쓴단 핑계로 음주운전 했네ㅋㅋ"란 무서운 댓글도 피하고 싶었다.
1일 오전 7시, 일산 서부경찰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뒤쪽 도로서 음주 운전 체험을 실시했다. 정재승 교통관리계장 협조로 30여분간 안전 확보된 도로를 주행할 수 있었다. 혹시나 다른 차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단 우려 때문이었다.
음주 운전 체험을 위해 준비된 고글은 총 4가지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0.2%, 0.2%(야간 효과 추가) 등이었다.
50여m 되는 빈 도로에 장애물 10개를 세워두고, 직진 주행부터 해보기로 했다. 시속은 30km로, 횡단보도 이전 정지선까지 주행하는 게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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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글을 쓰지 않고 직진 주행을 해봤다. 적정 속도를 지키며 차가 조용히 미끄러져 갔다. 경찰 4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긴장감 때문에 몸에 힘이 더 들어갔다. 주행하다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아 정지선에 정확히 멈추게 했다.
이어 혈중 알코올 농도 0.05% 효과가 나는 고글을 쓰고 직진 주행을 해보기로 했다. 소주 2~7잔을 마신 효과로, 음주 운전 적발시 면허가 정지되는 수치였다.
고글을 쓰니 정신이 약간 몽롱한, 알딸딸한 느낌이 났다.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초점도 살짝 나간듯 주변 환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2%)을 쓰고 직진 주행을 한 뒤 차선을 위반한 기자의 차량. /사진=경기 일산서부경찰서
장애물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지그재그 주행도 해보기로 했다.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쓰기 전에는 장애물 사이를 무난하게 빠져 나갔다. 장애물 10개 중 건드린 게 한 개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짜리 고글을 쓰고 장애물 피하기에 도전했다. 소주 10잔 이상을 마신 것으로, 운전시 면허취소는 물론 징역 1~3년 처벌을 받는 심각한 수치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2% 음주 체험용 고글을 쓰고 바깥 풍경을 보면 실제 이런 느낌이다. 만취 상태에서 사물 감지 능력이 이 정도란 의미다./사진=남형도 기자
진짜 취한 것 같은 상태로 운전자석에 앉으니 몹시 불안해졌다. 장애물 사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내 1개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차량 앞 범퍼를 통해 장애물을 건드렸단 느낌이 전해져왔다. 긴장이 됐지만 정신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여러개를 연달아 치는 느낌이 들었다. 반응 속도도 더 느려졌다. 장애물을 피한다기 보단 볼링핀을 쓰러트리듯 가는 느낌이었다. 주행 후 촬영 영상을 확인했다. 장애물 10개 중 7개를 쓰러뜨리며 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27일 오전 3시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판교분기점 인근 편도 5차로 도로에 30대 여성 운전자가 만취상태로 역주행하다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들이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 1명이 중상, 3명이 경상으로 치료중이다. 총 7대의 차량이 부서졌다. 사고 당시 최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202%로 만취 상태였다. 사진은 고속도로를 역주행한 차량./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음주 상태에 대한 보다 정교한 느낌을 알기 위해 경찰서 안 강당으로 들어왔다. 강단 위에 장애물 6개를 세우고 사이사이를 걸어가보기로 했다. 아직 써보지 않은 야간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2%)을 착용했다. 아까와 똑같이 알딸딸 한 상태에서 어두워지니 시야가 더 좁아지고 무서워졌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뛰어가 봤다. 좌우 다리를 꽃게처럼 움직이며 휘청이는 모습에 차마 영상을 끝까지 못 보고 껐다. 장애물도 거의 다 우당탕탕 치며 넘어뜨렸다. 벽이 가까워지는 걸 느껴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반응 속도가 떨어져 결국 부딪히기도 했다. 술을 마신 상태가 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음주 체험용 고글(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2개를 각각 쓰고 카카오톡에 느낌을 글로 써봤다. 제대로 적을 수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음주 운전 사고가 줄어들곤 있지만 갈 길은 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음주 운전 사고는 2015년 2만4399건에서 지난해 1만9517건으로 줄었지만, 적발 건수는 매년 23만여건 이상(2012~2016년 기준)이다. 2회 이상 적발된 재범률은 2016년 45.1%로 2012년 41.9%에 비해 3.2%p(포인트) 상승했다. 3회 이상 적발 비중도 2016년 19.3%로 2012년과 비교해 3.3%p(포인트) 높아졌다.
/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음주 운전 체험의 느낌은 또렷했다. 술 취한 이들이 이를 까먹는 건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 정신에 만취를 경험하니 잊지 못할 경고가 됐다. 2년 전, 차를 끌고 간 제주도 한 흑돼지 삼겹살 집에서 술 한 잔만 마실까 고민하다 안 마신 과거의 내가 고마웠다. 술 마셨다면 대리 운전을 부르자. 스스로 깨려거든 소주 1병은 6~8시간, 2병은 1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음주 운전이 괜찮다는 독자들을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음주 고글(0.2%)을 쓰고 뛰어본 마지막 영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