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 무게는 25kg 남짓, 땡볕 날씨에 그냥 입고 있는 것만 해도 괴로움이 상당했다. 땀흘리며 괴로워 하는 기자 모습./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신용철 소방사
26일 오후 1시15분쯤, 소방서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첫 출동이었다. 심장 박동이 거칠어졌다. 앉아 있던 소방관들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동물적 반응 속도였다. 이들을 따라 황급히 뛰었다. 무작정 가는데 누군가 외쳤다. "방화복 챙겨야지." 방화복·헬멧·두건·산소통·신발을 다시 챙겨 구조대 버스에 탑승했다. 화재진압조 소방관 4명은 이미 다 타고 있었다. 평균 30초 안에 다 탄다고 했다. 꼴찌였다.
신발을 신고 방화복 바지를 올렸다. 두건을 쓰고 방화복 윗옷을 입었다. 땀줄기가 온몸에서 흘렀다. 산소통까지 멘 순간, 옆에서 도와주던 임재식 소방사가 물었다. "면체(얼굴에 쓰는, 산소통과 연결해주는 호흡보조장비)는 어딨어요?"
정신 없이 타느라 놓고 온 터였다. 총 놓고 전쟁터에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자책감이 밀려왔다.
야속한 오후 햇볕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이날 기온은 섭씨 33도, 체감온도는 36도에 가까웠다. 방화복 안 온도는 45도는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화재 현장 입구서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는데도 어질어질, 정신이 아득해졌다. 소방관들은 일사불란하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불길을 잡았다. 방화복 입은 모습이 새삼 커 보였다.
26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방이동의 한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해 직접 출동해봤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피해 규모도 크지 않았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사진=남형도 기자
체험 하루 전날 밤, 평소 친분 있던 이강균 소방관에게 연락이 왔다. "빤쓰(팬티) 2개씩 챙겨와요. 애들(동료 소방관들)한테 남 기자 반 죽여도 된다고 했어, 그래야 왜 소방관들이 왜 죽는줄 알테니까." 농담 반, 진담 반 한 마디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설마 속옷까지 다 젖겠냐 싶어 하나만 입고 갔다. 후회할 짓이었다.
다음날 오전 송파소방서에 도착했다. 친절한 신용철 소방사와 통성명을 한 뒤 이정희 송파소방서장, 다른 소방관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주황색 상의, 감색 바지 활동복을 받아 들었다. 사이즈가 비슷한(XL) 류동열 소방위의 옷이었다. 앞쪽엔 명찰, 어깨 양쪽엔 명찰과 태극 1개, 육각수 6개의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신 소방사는 "관리자급 계급장"이라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새로 온 높은 사람인줄 알 것"이라고 귀띔했다.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만나는 사람마다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활동복은 통풍이 잘 되고 가벼웠다. 입고 나니 소방관이 된듯 실감이 났다. 이제 방화복을 입어볼 차례였다. 소방서 주차장서 연습해보기로 했다.
기자가 소방관 도움을 받아 방화복을 처음 입어보고 있다. 활동복 안에 방화복을 입는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방화복 바지 안에 신발을 끼워서 한 번에 입는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신용철 소방사
두터운 윗옷은 느낌이 패딩 같았다. 양손을 넣고 잠그니 순식간에 몸이 달아 올랐다. 방화복이 아니라 발화(發火)복 같았다. 온몸에서 불이 났다.
두건을 내리고 면체를 썼다. 얼굴이 '찌부'가 되며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산소통을 멨다. 압축 공기가 들어 있다고 했다. 산소통 속 압축 공기가 호스를 타고 면체로 들어오는 방식이다. 화재현장서 소방관을 유독가스로부터 보호해주는, 필수 장비다.
아래쪽 마개를 열어 '대기호흡'에서 '양압호흡'으로 바꾸고, 숨을 '흡' 하고 세게 들이마시니 시원한 느낌의 압축 공기가 들어왔다. 버티는 시간은 개인 호흡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30분이다. 공기가 100메가파스칼(MPa) 이하로 떨어지면 '삐' 하고 길게 소리가 난다. 그러면 소방관들은 재빨리 현장을 나와야 한다. 생명을 지켜주는 사이렌이나 마찬가지다.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 장비 일체. (왼쪽부터) 두건, 방화복 상의, 방화복 하의와 신발, 압축산소통, 면체./사진=남형도 기자
그게 다가 아녔다. 한 소방관이 펌프차에서 큰 배낭을 꺼냈다. 안에는 소방호스 등 장비가 들어 있었다. 유사시 불을 끄기 위해 동원하는 장비다. 무게는 10kg 남짓, 방화복과 합치면 35kg에 달한다. 이를 메고 소방관들은 고층건물 화재시 계단을 오른다고 했다. 화재시엔 엘리베이터를 못 쓰기 때문이다.
소방배낭(10kg 남짓)을 메고 송파소방서 4층 건물 계단을 오르는 기자. 숨이 턱끝까지 올라와 턱턱 막히고 어질어질 했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신용철 소방사
내려와 재빨리 방화복을 벗자 머리가 다 젖어 있었다. 불쌍해 보였는지, 고승기 소방사가 오렌지 에이드를 사줬다. '천국의 맛'이었다. 얼음까지 다 씹어 먹었다. 고 소방사는 "43층 고층 건물에 산소통 2개를 메고 올라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체험한 계단의 10배 넘는 구간을 지나며, 얼마나 지옥이었을지 바로 느낌이 왔다. "왜 산소통 2개나 멨느냐"고 하자 고 소방사는 "사람을 살리려고 멨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방화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폭염 날씨에는 고역이었다. 빨리 벗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사진=서울 송파소방서 신용철 소방사
방이동 주택화재 현장에 첫 출동을 나간 뒤 그 마음을 알게 됐다. 소방관들이 진입해 불을 끄고 창문을 열자 매케한 연기가 솟아올랐다. 주방이 불탔다고 했다. 현장 내부는 위험하다고 해 들어가지 못했다. 임재식 소방사는 "내부로 들어가면 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 벽을 짚으면서 감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2~3명씩 팀을 이뤄 다녀야 덜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영선 소방사도 "나오는 탈출로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2시쯤 돌아와 불을 혼자 다 끈 것 마냥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쉬며 에어컨 바람을 쑀다. 몇 년 전까진 에너지 절약 때문에 에어컨도 시원하게 못 쑀다고 했다. 30분이 지난 뒤에도 가슴팍에 흥건하던 땀은, 1시간이 지나서야 말라갔다.
소방관들은 출동을 다녀온 뒤에도 관련 행정업무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한 소방관은 "현장 업무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첫 출동을 다녀온 뒤 방화복 등 장비들을 아예 구조대 버스에 가져다 놨다. 사이렌이 울린 뒤 챙겨서 움직이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버스 내부를 다시 살펴보니 소방관들은 이미 방화복 등 장비를 놔둔 상태였다. 특히 신발엔 방화복 바지가 이미 끼워져 있었다. 바로 입을 수 있도록 해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묘한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언제 또 울릴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었다. 괜히 바깥에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출동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한 소방관은 소방관들을 가리키며 "편안한 것처럼 보여도 쉬는 게 아니다. 출동벨이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해서 튀어 나간다. 계속 긴장 상태"라며 "그러니 심장이 버텨 나겠냐. 소방관들이 오래 못 살지"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화재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분초에 따라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시간이 급박해진다. 그래서 소방관들이 버스에서 방화복을 입는다. 구조 버스에 놓여진 기자의 방화복 장비./사진=남형도 기자
기력이 조금 회복됐다 싶었던 오후 3시쯤 두 번째 출동벨이 울렸다. 재빨리 뛰어 구조대 버스에 탔다. 방화복 입는 건 여전히 힘들었지만, 첫 출동 때보단 나았다. 임 소방사는 "한 번만 더 하면 잘하겠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방화복을 다 입고 기다리는데, 다른 안전센터서 출동해 화재를 처리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방화복을 다시 벗고 소방서로 복귀했다.
출동을 나갔다 온 뒤 수박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방관들.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엔 땀을 많이 흘려 수분 보충이 필수적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저녁 6시, 야간조와 교대식까지 본 뒤 송파소방서를 나섰다. 집에 돌아온 뒤 집 앞 소화전과 베란다 소화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귀찮아서 미뤘었던 가스 안전점검도 와달라 했다.
단 한 번이라도 화재 출동을 줄이는 것, 그게 시민으로서 고생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