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은 국민 정서다.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이통사를 불매운동하겠다고 벼르는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다. 화웨이를 중국의 스파이 혹은 5G 시대 점령군처럼 여긴다. 미국에서 제기한 ‘스파이 백도어(몰래 숨겨둔 해킹 프로그램)’ 의혹에 사드 보복조치 이후 깊어진 반중 감정까지 겹쳤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세계 첫 5G 상용화를 공언해왔던 정부도 좌불안석이다. 기업의 통신장비 선택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어서다. 국가 간 통상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예상치 못했던 소비자 정서에 놀라긴 이통사도 매한가지다. 급기야 주무부처 장관과 이통3사 최고경영자(CEO)가 만나 5G 서비스를 한날한시에 시작하겠다고 합의했다. 촌극이 따로 없다. 대체 화웨이가 뭐라고.
우선 현실로 다가온 차이나쇼크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 기업을 ‘따라쟁이’ 쯤으로 여긴다.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경쟁자인데도 말이다. 화웨이가 딱 그렇다.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를 제치고 지난해 세계 넘버원 통신장비 회사로 도약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따돌리며 삼성에 이어 2위다. 올들어 일본 자급제 스마트폰 시장에선 5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매년 전체 매출 15%가량을 R&D 비용에 투자하며 기술확보에 다걸기한 결과다. 여전히 화웨이를 ‘싸구려’ 회사로 바라보는 상당수 국민들 인식은 현실에 천착하지 않은 판단일 수 있다. “성능까지 좋다”는 국내 이통사 CEO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이나 핀테크 등 첨단 분야는 이제 한국이 중국의 추격자다.
이 때문에 내년 3월 세계 첫 상용화되는 5G 시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화웨이가 그 과실을 거둬갈 것이라는 걱정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세계 최초’ 타이틀 경쟁보다 중요한 것이 생태계 전략이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5G 콘텐츠, 장비 산업이 함께 커야 한다. 5G 소비강국이 아닌 5G 생산강국이 돼야 한다는 것. 화웨이 논란이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명료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