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찾은 GS슈퍼마켓 상계점 내 민부곤 과자점 분점에서 민부곤 제과기능장이 만들어진 빵을 살피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서울시 노원구 상계9동 보람상가 1층에 위치한 30년된 터줏대감, '민부곤 과자점'의 대표 메뉴들이다. 민부곤 과자점은 1989년 문을 열어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같은 상가에 크라운,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10m 거리의 짧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GS슈퍼마켓의 빵집도 10년을 버티다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민부곤 과자점' 분점이 들어섰다. 동네 빵집이 '필패'한다는 프랜차이즈 빵집과 대형마트의 공세를 이겨내고,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한 것이다.
'빵에 미친 사람'. 그의 말을 빌린 것이다. 잠시라도 앉아서 쉬거나, 집에 돌아가서 TV를 보고 있을 때면 빵을 만들어야할 것 같은 생각에 다시 작업장으로 향한다. 29년간 매일같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의 청춘을 '민부곤 과자점'에 다 바쳤다. 그는 이날도 대화 도중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다음날 쓸 효모 발효종을 만들며 "이 정도 양이면 내일 하루 영업할 때 쓸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시큼한 냄새에 몇 발자국 떨어지자 그는 "이스트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부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걸 써요. 물이랑 밀가루만 넣어 24시간 숙성하면 이렇게 발효종이 됩니다. 건강에 더 좋아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빵을 어린 손자에게도 먹인다. 당연히 빵에는 유기농 밀가루와 마스코바도 설탕(필리핀 전통 재래방식으로 생산한 설탕, 화학적 정제처리를 하지 않아 미네랄이 그대로 들어 있다)만 사용한다.
"여기 노원에 대한 애정이 참 커요, 내가. 여러 가게가 생기고 사라지고, 또 어렸던 사람들이 나이들어서 또 찾아오고 하는 걸 볼 때마다 참 '여기서 빵을 만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을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담아 '수락산빵'도 만들었다. "'몽블랑' 케이크 알죠? 프랑스어로 '하얀 산'이란 뜻인데, 알프스의 몽블랑 산맥을 본 따 만들었다는데, 나도 우리 노원의 명물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보자 하다가 '수락산빵'을 만들었습니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수락산빵'은 주변 청원중학교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그는 꾸준히 사랑 받는 과자점이 되고싶어 해외로 나가 빵집도 자주 둘러본다. 일본에서 장인들이 수 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빵집을 볼 땐 부러웠다고 한다. "내 청춘을 다 바친 이곳이 오래오래 노원에 남아서 꾸준히 사랑을 받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 딸한테 물려주기로 했지만 계속 잘 돼야 물려줄텐데… 확실히 국민들 생활살이가 어려워졌는지 옛날에 비해 빵도 덜 팔려요."
이 시각 인기 뉴스
그의 첫째 딸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빵을 공부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혹여 가업을 이어줬다가 귀한 딸을 고생시키는 게 아닐지 걱정돼서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소상공인 정책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정부가 전통시장 살리기에 힘쓰는 등 여러 노력을 해줬어요. 앞으로는 지역의 명물로 기능하는 오래된 가게들에 힘을 써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라고 말했다.
12일 GS슈퍼마켓 상계점 내 민부곤 과자점 분점에서 민부곤 제과기능장이 빵을 들고 환히 웃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그는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젊을 때처럼 꾸준히 도전하고, 민부곤 과자점이 오랫동안 노원의 자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GS 슈퍼마켓에 입점해 분점에선 조금 저렴한 빵을 팔아 소비자 폭을 확장한 것도, 2013년 노원의 동네빵집들이 모두 모여 '해피브레드'라는 협동 조합을 만든 것도 다 그 도전의 일환이다. 이제는 도봉구의 20여개 빵집과 합심해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민 기능장이 앞장서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는 의자 하나 없는 작업장에 서서 빵을 만든다. 그리고 그는 모를테지만 오늘도 온라인엔 그의 과자점을 칭찬하는 글이 올라온다. "군대 휴가나왔다. 서울에 있는 유명 빵집 다 털었다. 오월의 종, 김영모 과자점, 나폴레옹 제과점, 베즐리, 에릭케제르, 패션5, 쌀람 베이커리… 다 다니면서 30만원 어치 빵 사먹었다. 근데 민부곤 과자점 잘 아는 사람있나? 책 '맛있는 빵집'에 나오는 42개 유명 빵집 리스트에도 오른 곳이다. 여기 왜 이렇게 가격이 저렴하고 맛있냐. 호두캐러멜 이건 진짜 맛있으니 먹어라." (온라인커뮤니티 'DC 과자·빵갤러리'에 올라온 '낼 휴가 복귀다' 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