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스토리]'광고쟁이'가 잘나가는 패션기업 CEO된 까닭은...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8.06.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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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스' '르피타' '메종블랑쉬' 정현 렙쇼메이 대표, "실패는 가슴 설레는 결과 맞기 전 과정일 뿐"

정현 렙쇼메이 대표/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정현 렙쇼메이 대표/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때는 2002년. 일밖에 모르는 '광고쟁이'. 그는 한 광고회사의 디렉터다. 밤낮없이 일만 한다. 프레젠테이션이 잡힐 때면 허구한 날 밤을 샌다. 어느 날 회사에선 광고가 아닌 별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여성 패션 브랜드' 신규 론칭이다. 6개월 준비 후 2003년 여성복 브랜드 '수스'(SOOS)를 론칭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광고마케팅과 사업부, 2개 부서를 총괄했다. 2년쯤 지나 대형마트 6곳에서 매장을 운영할 때였다. 회사는 갑자기 '수스'를 접겠다고 했다. "그만하자. 확장 속도가 더딘 데다 수익 구조도 생각했던 것 같지 않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는 "자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2년 동안 생고생을 했기에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해야 할 운명인가."

광고쟁이가 여성복 사업에 뛰어든 까닭이다. 전국 225개 매장을 운영 중인 정현 렙쇼메이 대표의 얘기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서구 소재의 렙쇼메이 사옥을 찾았다. 7층 건물 전체를 쓰고 있었다. 패션 기업의 CEO라서 헤어스타일이 남다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머리가 센 거였다. "하도 고생해서 머리가 빨리 센 거 같아요. 하하"



◇만만하게 봤다.

정 대표가 몸담았던 광고회사는 결국 '수스'를 접었다. 6개 매장도 모두 닫았다. 정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 브랜드 네이밍도 그의 작품이었다. '수스'를 놓지 않으려면 퇴사를 해야만 했다. 2005년 이렇게 출발한 게 렙쇼메이다. 패션 디자이너 2명과 함께 맨땅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해 10월 서울 마포구에 첫 매장 '망원점'을 열었다. '수스'가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보세형 매장으로 출발했다. 자금이 부족해서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동대문을 통해 받는 방식이었다. 판은 벌였지만 기가 막혔다. 하루 1점도 안 팔렸다. 다직해야 3일 만에 1점 팔릴 때도 있었다. 그럴 만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내 매장도 아니었고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였다. 안 되겠다 싶었다. 정 대표와 디자이너들은 모두 망원점으로 향했다. 방법은 이것밖에.


"아 골라 골라~, 골라 골라~"

그들은 매장 안팎으로 종횡무진하며 외쳐댔다. 원가 2만원짜리 옷을 3000원에, 5000원에 팔아 젖혔다.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은 팔아야 했다. 수수료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했던 망원점주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 점주는 현재도 망원점을 13년째 운영 중이다. '골라 골라'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대형마트로 입성 "별종 중 별종들..."

2006년 간신히 외국계 대형마트 3곳에 진입했다. 하지만 국내 한 그룹이 해당 대형마트들을 인수하면서 기존 입점 브랜드들은 철수해야만 하는 뼈아픈 시련을 맞는다. "어떻게 들어간 곳인데..."

우여곡절 끝에 2007년 다시 국내 한 대형마트의 입점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전국 최하위 점포로 악명 높은 3곳에 입점하길 요구했다.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일단 입점했다. 오픈 첫날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정 대표는 디자이너들과 직원들을 이끌고 해당 매장 3곳으로 나뉘어 출발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

"골라 골라~, 골라 골라~"

주변 매장들은 난리였다. "미친 거 아니냐." "여기가 도떼기시장이냐."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너무 시끄럽다." 이윽고 바이어들까지 내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뿐이었다. 이내 다시 시작됐다. 사람들이 모인 곳엔 사람이 계속 붙는 법이다. 판매량이 느는 게 보였다. 1달 동안 이어졌다. 주위 매장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쯧쯧, 별종 중 별종들..." 정 대표와 직원들은 집에도 가지 않았다. 매장 근처 사우나에서 갈치잠을 자면서 1달을 그렇게 보냈다. 결과는 여성복 부문 매출 1위. 입점 첫 달 만에 3개 매장 모두가 그랬다.

유통사 측은 주목했다. "다른 지점에도 한번 넣어 보자" 그래서 4번째 지점에 입점했다.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지점 위치는 좋았지만 지점 내 매장 위치가 문제였다. 또 시작됐다. "골라 골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원래 다른 브랜드가 있었을 땐 고작 월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이 나오는 매장이었다. 6개월 만에 월 8000만원까지 찍은 것이다. 이는 전국 지점으로 입점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소문은 금방이었다. 다른 대형마트 측에서도 러브콜을 보내 왔다. 자고 나면 입점 소식이었다.

일반 소매 점주들도 소문을 듣고 '수스' 브랜드로 갈아타기를 했다. 심지어는 '골라 골라' 당시 시끄럽다며 소리쳤던 타 브랜드 점주들도 제법 찾아왔다. 당시 항의하면서도 매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본사 직원들의 모습이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마트 브랜드'란 꼬리표 떼고 싶어...

'수스'는 2012년 100호점 매장을 오픈했다. 회사도 안정세를 보일 때쯤 정 대표는 두 번째 브랜드를 기획한다. 그는 "주위의 만류가 실로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왜 자꾸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느냐." "이 정도로 만족하라."

정 대표는 '마트 브랜드'란 아쉬움이 늘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백화점 브랜드'를 론칭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고도 했다. 2013년 '르피타'(LEPITTA)가 나온 배경이다. 서울 목동에 '르피타' 대리점을 열었다. 롯데백화점 측에서 이곳을 본 뒤 연락이 왔다. 백화점 타깃 브랜드로 '르피타'를 론칭했는데, 마침 백화점 측에서 먼저 제안이 온 것이다.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고객 성향, 판매 방식, 영업 전략, 상품 기획 등 모든 게 달랐다. 또 다시 3년 동안 투자와 실패가 이어졌다. '수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가끔씩은 후회도 했다. "왜 이 고생을 사서 했을까." 본사 직원들이 다시 매장에서 상주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라 호객 행위는 못했지만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 데 '올인'했다.

렙쇼메이의 특징은 모든 답을 현장(매장)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정 대표를 포함해 임직원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매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디자인, 관리, 물류 등 모든 부서가 매장과 수시로 소통한다. 그래서일까. 매장 점주들도 오랜 식구가 됐다. 통상 의류 브랜드 매장들은 2년도 채 안 돼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렙쇼메이가 운영 중인 브랜드의 점주들은 5년이 넘어도 명함조차 내밀기 쑥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망원점'의 점주도 아직 그대로니 말이다.

정 대표는 결국 '르피타'도 백화점 시장에 안착시키고, 2016년 또 다른 백화점 브랜드 '메종블랑쉬'(maison blanche)까지 론칭했다. 렙쇼메이는 현재 '수스' '르피타' '메종블랑쉬', 3개의 여성복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225개의 매장을 확보했다.

◇믿음

정 대표는 사업 초기 4년간 집에 한 푼도 못 가져갔다. 하루는 퇴근 후 라면을 먹으려고 물을 올렸다. 가스가 안 들어왔다. 3개월 가스비를 못 내 가스마저 끊긴 걸 그제서야 알았다.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쳤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생활비도, 고생하는 직원들과 회식 한 번 할 돈도 없었다. 어느 날은 지인이 직원들과 회식하라고 20만원을 쥐어주기도 했다.

"처음 몇 년간 수입이 전혀 없었지만 '그만할까'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나를 믿는 직원들이 있는데 내가 약해지면 절대 안 되니까요. 너무 흔하고 식상한 얘기겠지만 믿음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믿는 만큼 힘이 생기더라고요."

심상사성(心想事成)

'마음먹은 대로 이뤄진다'는 사자성어다. 다수의 CEO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마음'을 먹으려면 우선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값진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보고 믿는 건 믿음이 아니다. '확인'일 뿐이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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