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독서' 고리타분?…'신상' '한정판'으로 만나는 '기쁨의 현장'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8.06.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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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18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가보니…'시선강탈' 출판사 부스·책 처방·문학 자판기 등 책과 '의외의 만남'

지난 20일 오후 '2018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코엑스 전시장 입구 전경.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사진=배영윤 기자지난 20일 오후 '2018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코엑스 전시장 입구 전경.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사진=배영윤 기자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 과거엔 '취미가 독서'라 하면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아니다. '패피'(패션피플)보다 트렌디하고, 스포츠 마니아보다 역동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요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건 어느 때보다 '핫'한 취미가 됐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2018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 첫날 현장을 찾았을 때 이를 몸소 경험했다. 평일임에도 교복 입은 학생들, 2030 젊은이들,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오전 10시 오픈 전부터 많은 입장객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관람객 20만 명을 찾아 예상 밖 성공을 거둔 도서전이 올해 세운 목표 30만 명도 거뜬히 채울 기세였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 전경./사진=배영윤 기자2018 서울국제도서전 전경./사진=배영윤 기자
'확장-new definition'이란 주제로 열린 도서전은 독서광들에겐 놀이터, 책에 관심 없던 이들에겐 흥미로운 신세계로 설명하기 충분했다. 여러 출판사가 한 장소에 모여 책을 싸게 파는 곳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



출판사별로 특색있게 꾸민 부스들은 소문난 인증샷 명소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다. 버튼을 누르면 책 속에 한 구절이 인쇄돼 나오는 문학자판기, 도서전에서 가장 먼저 살 수 있는 '신상책', 오직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한정판 책'과 굿즈가 독자들을 유혹했다. 출판계 비주류였던 '잡지','라이트노벨'은 특별기획전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 내에 마련된 출판사 마음산책 부스(왼쪽)와 북스피어 부스. 화분과 가구, 꽃으로 꾸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사진=배영윤 기자'2018 서울국제도서전' 내에 마련된 출판사 마음산책 부스(왼쪽)와 북스피어 부스. 화분과 가구, 꽃으로 꾸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사진=배영윤 기자
눈에 띈 곳은 출판사 마음산책과 북스피어 부스. 식물과 원목 가구를 곳곳에 배치해 마치 숲 속에 있는 작은 서점에 온 듯했다. 한쪽은 이번 도서전에서 처음 공개하는 이승우 작가의 신작 '만든 눈물 참은 눈물' 테마로 작가의 방처럼 꾸몄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독자들에게 이승우 작가의 신작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라 특별히 책 표지에 실린 원화를 벽에 걸어 놓는 등 신경을 많이 썼는데 호응이 좋아 오전에도 책이 많이 팔렸다"고 말했다.

북스피어는 꽃집과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디어마이블루와 협업해 부스 전체를 꽃과 은은한 전구로 꾸몄다. 부스 안에 성인 남자 둘이 앞치마를 두르고 화관을 쓰고 서 있어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꽃으로 뒤덮인 책상은 이미 인증샷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독자들이 부스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여름, 첫 책'(위) 코너에서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사람들과 '읽는 약국' 코너에서 맞춤 책 처방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사진=배영윤 기자 '여름, 첫 책'(위) 코너에서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사람들과 '읽는 약국' 코너에서 맞춤 책 처방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사진=배영윤 기자
이번 도서전에서 이영도, 유시민, 이승우, 정유정 등 유명 작가 10명의 신작을 처음 만나는 '여름, 첫 책'과 맞춤 책을 처방해주는 '독서클리닉' 프로그램의 호응도가 특히 높았다. '여름, 첫 책' 코너는 인공 잔디와 피크닉 벤치, 신간을 소개하는 오두막을 설치했다. 휴가지에서 느긋하게 누워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독서클리닉' 코너에 있는 '읽는 약국' 앞에는 맞춤 책 처방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점 '사적인서점'이 일, 인생, 활기, 관계, 독서 등에 관한 30여 종의 책을 준비해 관람객들을 '상담'해 주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이지영씨는 "수필 등단을 준비 중이라 여기서 추천한 글쓰기 관련 책 두 권을 샀다"며 "책에 관심은 읽는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많은 도움이 되는 코너라 흥미롭고 주변에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 특별기획전으로 꾸며진 '라이트노벨 페스티벌'(위)과 '잡지의 시대' 부스 전경. 출판계 비주류로 여겨지던 라이트노벨과 잡지가 도서전 주인공이 됐다./사진=배영윤 기자이번 도서전 특별기획전으로 꾸며진 '라이트노벨 페스티벌'(위)과 '잡지의 시대' 부스 전경. 출판계 비주류로 여겨지던 라이트노벨과 잡지가 도서전 주인공이 됐다./사진=배영윤 기자
올해 도서전은 독자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방식으로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곳곳에서 만나는 축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유명 작가들이 독자와 직접 만나는 행사들이 준비된 주말엔 더 많은 인파가 모일 전망이다.

도서전에 참가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서점, 책을 통해서만 독자를 만나던 출판사들이 직접 독자들 눈을 보며 1대 1로 대면하는 값진 현장"이라며 "독자들과 더 가까이 만나고 좋은 만남을 갖고 싶어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말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한 권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암울한 지표(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직 '국제도서전'이라는 이름에 비해 지역색이 짙지만 서점, 출판계는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분주하다. 그리고 독자들 역시 그에 화답하고 있었다.

그림책 작가의 1인극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왼쪽)과 버튼을 누르면 문학작품 속 글귀가 인쇄돼 나오는 문학자판기./사진=배영윤 기자그림책 작가의 1인극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왼쪽)과 버튼을 누르면 문학작품 속 글귀가 인쇄돼 나오는 문학자판기./사진=배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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