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셔틀'·'카톡 왕따'…마음 할퀴는 '흔적없는 학폭'

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2018.06.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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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 2018 ③]청소년들 정신 멍들게 하는 '사이버 불링'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건전한 디지털 문화 정착을 위해 u클린 캠페인을 펼친 지 14년째를 맞았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빅데이터가 주도하는 4차산업혁명은 일상 생활 영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급진전되고 있는 기술 진화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부작용들이 우려되고 있다. 가령, VR(가상현실),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시대 해킹 사고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나 정보 양극화, 가짜 뉴스 범람 등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4차산업혁명 시대 올바른 윤리 문화를 집중 조명한다.

'데이터 셔틀'·'카톡 왕따'…마음 할퀴는 '흔적없는 학폭'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아이와 휴대폰 요금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던 중 충격에 빠졌다. 최근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휴대폰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으로 바꿔줬는데 이를 다시 바꾸자고 하자 아이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인 것. 당황한 A씨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캐물었고, 학교 또래들에 의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데이터 셔틀’을 당하고 있었던 것. 데이터 셔틀은 한 학생을 인터넷 공유기로 사용하는 사이버 폭력의 일종이다. A씨는 “유튜브나 게임에 빠진 줄 알았는데 데이터 셔틀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아이가 상처를 덜 받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4살이 된 B양.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고 새로운 친구들은 사귄다는 설렘도 잠시, 소리 없는 지옥이 시작됐다. 옷이 이상하다며 자신을 향해 한 마디를 쏘아 올렸던 같은 반 친구들이 자신을 '카톡 감옥'에 가둔 것. 처음에는 모르는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줄 알았지만 인사를 하거나 말을 해도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에 대화방을 나갔지만 곧 바로 다시 초대돼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일이 반복됐다. B양은 "카톡 감옥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며 "욕을 하거나 험담을 한 건 아니지만 대놓고 무시를 하니 자존감이 낮아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사이버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아이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사이버 폭력도 다양화되면서다. 사이버 폭력은 극단적인 선택이나 물리적 폭력으로 번지는 등 2차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범죄행위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소리 없는 괴롭힘…‘사이버 폭력’=사이버 폭력은 인터넷과 관련해 다양한 형태로 타인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을 말한다. 신체적 폭력을 수반하는 전통적인 폭력과는 다르게 그 형태는 다양하다. 문자로 상대방을 직접 험담하는 것 뿐 아니라 특정인을 비하하는 글, 이미지, 동영상 혹은 개인 신상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특히 스마트폰과 모바일 메신저,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등장한 ‘사이버 불링’(사이버 왕따)은 새로운 학교 폭력의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온라인 폭력과 오프라인 폭력을 구분하고 있다.



사이버 불링에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활용한 방폭, 카톡 감옥, 떼카 등이 있다. 방폭은 단체 대화방에서 피해 학생만 남겨두고 전부 퇴장하면서 사이버 왕따를 당하게 하는 방식이다. 대화방 초대와 퇴장을 반복해 피해 학생을 괴롭힌다. 카톡 감옥은 피해 학생을 대화방에 나가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다. 피해 학생이 나갈 경우 끊임없이 초대하는 방식으로 괴롭힌다. 단체 대화방 등에서 피해 학생에게 집단적인 욕설을 퍼붓는 행위는 떼카로 불린다.

학교의 단속이나 처벌을 피하기 위한 신종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에스크 에프엠’(이하 에스크)이 대표적이다. 에스크는 사용자끼리 질문을 주고받는 문답 형식의 SNS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다른 SNS 계정과 연결해 사용한다. 질문자는 익명으로 질문을 남길 수 있다. 문제는 이 익명성을 이용해 괴롭히고 싶은 상대의 에스크를 찾아 질문을 빙자한 모욕이나 성희롱적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익명으로 글이 남겨지기 때문에 가해 학생을 찾아내 처벌하기가 힘들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C양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에스크 링크를 공유하면 우르르 몰려가 익명으로 질문을 퍼붓는다”며 “메갈이라 전학 갔다던데 사실이냐던가 운동장에서 넘어졌을 때 속옷이 보였다는 등 성희롱적인 발언도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만연한 사이버 폭력=문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이버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이 되거나 그 반대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4500명 중 16.6%가 사이버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이버 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는 비율(16.2%)도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감수성이 예민할 중학생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년 이내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율은 16.6%로 2년 전 대비 0.6%p 줄어들었다. 이 가운데 중학생의 경우, 피해 경험율이 빠르게 늘어 홀로 20%를 돌파했다. 중학생 5명 중 1명은 사이버폭력을 당했다는 얘기다.

사이버 폭력 가해 유형(복수응답)을 살펴보면 언어 폭력이 15.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명예훼손(2.9%), 따돌림(1.5%), 스토킹(1.4%) 등의 순이다. 가해 이유는 상대방이 싫어서가 42.2%로 가장 많았다. 상대방이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도 40%에 달했다.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76%)가 압도적이었지만 ‘신고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23.6%)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몰라서’(7.9%)나 ‘더 심한 따돌림을 받게 될까 봐’(4.8%),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4.4%)라는 응답도 나왔다.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은 일반 학생보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성이 훨씬 더 높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APA) 연례회의에서 크리스티 킨드릭 박사가 발표한 조사 결과(13~17세 청소년 1만5545명 대상)에 따르면 사이버 왕따 피해 학생이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14.7%로 아무런 피해 경험이 없는 학생(4.6%)보다 3배 높았다. 특히 사이버 왕따와 학교 폭력을 모두 경험한 학생의 자살 시도율은 21.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호주에서는 사이버 불링을 당한 14세 소녀가 생을 스스로 마감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때 명품 모자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며 호주의 유명 인사였던 에미이 에버렛이 온라인상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해가 곧 예방…명확한 인지 교육 필요=전문가들은 사이버 폭력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아 기존 폭력에 비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체적 폭력이 가해지지 않는 만큼 부모나 선생님 등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또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만큼 기존 폭력과 달리 24시간 시간이나 장소에 제한 없이 피해 학생을 괴롭힐 수 있어 피해 학생의 입장에선 더욱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정신, 정서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특히 상당수 사이버 폭력이 재미나 장난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명확한 인지 교육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2017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사해 이유 중 ‘재미나 장난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라는 응답이 23.8%에 달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초등학교 및 지역아동센터에서 강연 및 공연 형태로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을 펼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의 심각성을 명확하게 인지시키고, 사례별 교육을 통해 가벼운 장난도 사이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해선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녀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통해 사이버 폭력 피해 및 가해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지역별 위(Wee)센터에서 사이버 폭력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피해 학생을 위한 다양한 신고창구도 마련돼 있다. 전화 신고는 ‘117’, 문자 신고는 ‘#1388’, ‘#0117’로 하면 된다. 안전 드림 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홈페이지(www.safe182.go.kr)에서 온라인 신고도 가능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사이버 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달리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피해는 더 크다”며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사이버 윤리와 관련된 교육을 하고 만약 사이버 폭력을 당할 경우 방치하지 말고 상담 및 신고를 통해 풀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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