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펜으로 본 文대통령 입장, 北 패턴 지적·핫라인 암시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18.05.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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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지금의 소통방식으로 어렵다, 정상간 직접 긴밀 대화를"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접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18.05.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접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18.05.25. [email protected]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특정 참모들이 상대국을 비난하고, 상황을 흔들면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 하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본 듯하다. 일종의 '북한식 협상전술'에 머물러서는 지금의 다시없을 비핵화 기회를 날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응, 25일 0시부터 1시간 동안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소집한 뒤 5줄짜리 입장을 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멘트 그대로를 5 문장 제시했다. 이례적이다.



대통령 발언이 있어도 이를 정제해서 입장문으로 엮어 내는 게 보통이다. 워낙 다급해서였지만 그 덕에 행간을 읽을 여지가 생겼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장을 이어서 보면 맥락이 보일 것"이라 조언했다.

①"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12일에 열리지 않게 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22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북미회담 취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선언'을 접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선 북미간 이견이 있음에도, 간극을 좁혀 회담을 성사시키려 미국측을 설득했다. 그 결과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궤도에 올렸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그러진 데 대한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하게, 숨기지 않았다.


②"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포기하거나, 미룰 수 없다는 의지다.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결정적 순간으로 여겼다. 따라서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언젠가(someday)의 먼 미래로 연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③"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협상과,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근거다. 지금은 북핵위기 25년만에 처음 정상들의 결단으로 풀어가는 '톱다운' 방식이다. 청와대가 강조해 온, '이번엔 다른'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지금까지 북미 간에 여러 번 합의가 있었지만 정상들 간에 합의가 도모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라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직접 만난 김정은 위원장의 '진심'이 비핵화와 평화번영에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있다.

④"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태도는 다분히 과거 패턴을 답습한 경향이 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 최선희 부상이 잇따라 미국을 비판하는 담화를 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은 복심인 폼페이오 장관을 메신저 격으로 북한에 두 차례나 보낸 데 비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물론 북한도 '막말'에 그치지는 않았다. 타깃을 정교하게 조준했다. 폼페이오는 띄워주고 볼턴은 맹비난한 데 이어, 펜스 부통령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저강도(low-level) 프로파간다(선전선동)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오랜 협상패턴 중 하나다.

그러나 트럼프는 트럼프다. 과거같으면 이를 북한 특유의 외교적 언사로 봤을지 모르지만 트럼프는 '그렇다면 판을 깰 수 있다'고 세게 나왔다. 국제규범이나 외교관례는 무시하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건 북한이 주로 보여온 벼랑끝 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슷한 방식으로 되치기하면서 도리어 북한이 허를 찔렸다.

⑤"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

▶이런 식으로 긴장이 고조돼서는 '파국'밖에 남는 게 없다. 문 대통령은 남북 핫라인 통화는 물론, 북미 정상간 직접 대화를 촉구한 걸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온 뒤 태도가 변했다는 의심을 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미간 오래된 '소통' 방식에 머물지 말고 김 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으로 직접 걸어내려왔듯 북미 대화에도 적극적인 메시지를 내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승효상 건축가가 도보다리 풍경에 대해 쓴 글에 대해 24일 "나는 그 때 그 풍경 속에 있었고, 풍경을 보지 못했다"며 "풍경 속에서 풍경이 되었던 또 한 명의 사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이 글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국 정상들의 대화 가능성도 열어둔 걸로 보인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 통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정상간 대화 방법은 서신, 전화통화 등 다양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북미 정상끼리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긴밀하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공개서신에서 김 위원장에게 "마음이 바뀌면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쓰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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