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위험 높다"…노인들 운전 막는 일본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2018.05.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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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진단시 경찰이 운전면허 취소…'이동수단 뺏는 일' 비판도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고령화율 세계 1위인 일본이 교통사고 우려가 큰 노인들의 운전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규제를 강화해 면허를 취소하거나 반납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본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최근 고령자들의 위험 운전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까다로운 규제를 신설하거나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운전면허를 취소하거나 면허증을 스스로 반납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연령대 중 75세 이상 운전자들이 치명적인 사고를 가장 많이 낸 것으로 집계됐다. 16~24세 운전자들에 비해 사고 비율이 2배 높았다. 80세 이상의 경우 3배까지 높아졌다.

일찍이 일본에선 운전면허제도 안에 치매 대책을 마련했다. 2009년 75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 갱신을 할 때 ‘치매 기능 검사’를 의무화한 게 대표적이다. 당일 날짜를 질문하거나 그림카드를 이용해 기억력 테스트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당시는 치매 의심이 발견돼도 교통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의사의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이를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면허 갱신 검사에서 치매 의심이 있다고 판단된 운전자는 전원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 갱신 이후 역주행 등의 위반행위가 있으면 검사를 받게 했다.

이때 검사에서 치매 판정을 받거나 치매 의심이 판단됨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검사를 받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지난해 3만3000명이 이 검사에서 치매 의심 판정을 받아 의사와 정밀 상담을 했고, 경찰은 치매 판정을 받은 1350여명의 면허를 취소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업체들과 협력해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역식당 할인 쿠폰을 주거나 버스, 택시를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식이다.



공익광고를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 시마네 현의 한 마을의 경우, 경찰서마다 가족에게 둘러싸인 노인의 모습에 ‘운전할 때 조금이라도 불편을 느끼거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경찰에 문의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을 붙여 놨다.

이 결과 지난 5년 새 65세 이상 운전자들 중 면허증을 자발적으로 취소한 이들이 3배로 증가해 지난해까지 40만5000명을 기록했다.

/사진=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고령자들에게 별다른 대안을 제공하지 않고 무조건 운전을 못하게 하는 것은 이동수단을 뺏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특히 고령자들이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쿄나 교토 같은 주요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이동이 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3333명이 거주 중인 시마네 현 카와모토 마을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5%에 달한다. 이 곳의 대중교통 수단은 택시 3대와 2시간마다 오는 버스가 전부다. 병원도, 제대로 된 마트도 없는 이 마을에선 자가용이 노인들의 삶이나 다름없다.

이 곳에 거주하는 은퇴한 가구제작자 아츠무 모리와키는 올해 면허증을 취소당한 이후 그 불편함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병원을 가거나 장을 봐야 할 때마다 친구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 타거나 비싼 택시를 부르고 있다. 그는 “우유 1병을 사는 데도 1마일(1.6㎞)이 넘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야 하는 마을에서 자가용 없이 살라는 것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일본 고미대 정신과의사인 나오토 카미무라는 “노인들에게 면허증은 단순히 운전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며 “면허증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본인이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전을 위해 고령자의 면허증을 규제하는 것은 좋지만 파생적인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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