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CEO가 ‘가난한 나라’에 ‘올인’한 사연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5.1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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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났습니다] 미얀마 사랑을 ‘뜻밖에 미얀마’로 엮은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조용경 대표이사

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br>
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


“완전히 깔봤다가 어느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그의 반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극적인 이끌림과 비슷했다. 좋은 학벌, 대기업 CEO 등 거창한 신분으로 살았던 인생에 찾아온 누추하지만 순수한 내면의 향기에 그는 단숨에 넋을 잃었다. 조용경(67)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이자 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 얘기다.

반세기 가까이 ‘기계’와 살아온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맡았던 잠깐의 흙냄새에 다시 취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조 이사장의 ‘미얀마 사랑’이 올해 5년째다. 이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최근 ‘뜻밖에 미얀마’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은퇴 후 우연히 기업 후배 제안으로 미얀마에 재미 반 휴식 반으로 갔는데, 의외로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방문했더니 고향(경북 문경) 생각이 절로 났고 3, 4번 가니 전생에 제가 여기 있었던 게 아닐까 확신이 들더라고요.”



내친김에 골프 대신 가진 취미였던 카메라를 들고 미얀마 구석구석을 돌며 찍었다. 셔터만 눌러도 ‘그림’이 됐다는 그의 사진은 모두 4000여장. 조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내가 미얀마 사진을 가장 많이 보유했을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양곤에서 수도 네피도까지 한 300km 되는데, 가난하고 시설 안 좋은 미얀마 14개 주 가운데 12 주를 모두 방문했어요. 인구 65%가 전기 혜택도 못 받고 살지만, 가난 뒤에 숨은 얼굴과 마주할 때 느끼는 행복과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4년간 미얀마를 누비며 한권의 책으로 엮은 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br>
4년간 미얀마를 누비며 한권의 책으로 엮은 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
양곤 공항에서 처음 마주한 광고탑 문구 ‘황금의 나라’를 보고 “쥐뿔도 없는 나라가…”했던 우쭐함도 죄책감으로 바뀌며 미얀마를 다시 탐색했다. 극심한 가난에서도 잃지 않는 평화와 미소는 ‘부처님의 그것’이었고 친절은 덤이었다.


그는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얘기하는 건 실례”라며 “사회주의 체제나 군부의 독재 같은 정치적 상황을 제외하면 사람 속에 황금이 가득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2007년 어떤 기회로 북한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종교, 거주이전 등 어떤 자유도 없는 곳이지만, 미얀마는 정치적 반대의 자유만 제외하고 모든 자유가 허락돼요. 아웅산 수치 정권이 군부와 맞서 살얼음을 걷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국민이 아웅산 수치 정권에 표를 몰아 줄 정도로 민주화 열망도 거세지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잘 안 알려진 미얀마에 모두 주목해야 할 시기라고 봐요.”

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조용경 전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진=김고금평 기자
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약 4년간 16차례 미얀마를 다니며 기록한 역사, 문화, 정치 등 ‘미얀마의 거의 모든 것’을 137장의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1950년대 ‘안남미’라는 이름의 쌀을 우리나라에 원조하고 루비가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며 가난한데도 기부지수 1위를 차지한 ‘착하고’ ‘멋진’ 나라라는 깨알 같은 정보도 실렸다.

“미얀마에 갈수록 말년에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그곳에서 새마을 운동처럼 가구마다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사업이나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교육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위 ‘박태준맨’으로 불리며 정치와도 인연이 적지 않았던 그에게 관련 책을 쓸 계획이 없느냐고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제가 모신 분의 이야기를 쓰려면 안 좋은 얘기도 다뤄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고 도리도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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