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대 1' 中 창업시장 뚫은 이 스타트업의 비결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2018.05.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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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네트워크 보안업체 '노르마',
중국 유명 벤처캐피탈 고비파트너스로 투자 유치…
中 진입 장벽 높지만, 성공시 거대 중국시장 '성큼'

정현철 노르마 대표가 지난 2일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KIC중국 사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정현철 노르마 대표가 지난 2일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KIC중국 사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한국 보안 솔루션 업체가 해외에 진출해 수익을 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무선 네트워크 보안솔루션 업체 노르마의 정현철 대표는 1년 반 전에 투자 유치를 위해 만난 일본 소프트뱅크 관계자의 말을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 아무리 성공한 보안 솔루션 업체라고 해도 해외에서 경쟁력이 없는데, 업력이 얼마되지 않는 업체에 투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정 대표는 이후 "한국 보안 솔루션 업체로서 해외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1년여가 지난 현재 정 대표는 목표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 못지 않는 세계적인 창업 국가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 현지 유명 벤처캐피털(VC)인 고비파트너스(GOBI PARTNERS)로부터 50만 달러(5억3830만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중국 창업 시장에서의 자금 유치는 그 자체로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 되고, 13억 인구의 거대 시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의미가 있다.



한국서 검증받은 실력+중국 창업대회, 중국 시장 뚫다= 중국에선 지난 2016년 기준으로 한해 555만 개 기업이 만들어지고 연간 1313억 위안(21조6645억원) 규모의 스타트업 투자가 이뤄진다. 규모도 규모지만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세계적인 창업기업이 등장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창업 기지가 됐다. 경쟁도 치열하다. 500만 개를 넘는 기업이 창업을 하지만 이 중 펀딩에 성공하는 곳은 3683개에 불과하다. 투자 유치 경쟁률이 1500대 1에 달하는 셈이다. 중국의 외환 규제로 인해 해외 스타트업들의 진입 장벽은 더 높다.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 가운데 중국 현지 시장에 자금을 유치한 기업은 노르마를 포함해 3~4곳에 불과하다.

중국 현지 자본 유치 후 한국와 중국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정 대표를 지난 2일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중국KIC(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에서 만났다. 중국KIC는 국내 창업 기업의 중국 진출을 돕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조직이다. 노르마는 현재 이곳에서 지원을 받고 있고 곧 상하이에 사무실을 낼 예정이다.



정 대표는 사업화 실적과 국내 펀딩 등 한국 시장에서의 선(先) 검증, 창업대회 출전 등을 통한 중국 시장 도전 등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진 것이 중국 현지 펀딩에 성공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중국 창업시장은 일처리 속도가 빠르지만 평가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면서 "창업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바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르마는 지난해 8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추천으로 '제4차 K-데모데이 차이나@알리바바 클라우드 예선전(이하 K-데모데이)'에 참여한 것이 중국 진출의 계기가 됐다. K-데모데이는 중국 최대 클라우드 기업 알리바바 클라우드와 과기정통부, 중국KIC가 중국 진출을 원하는 국내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창업경진대회다. 알리바바의 본사가 위치한 항저우에서 열린 10월 결선에서 당당히 우승한 노르마는 중국KIC로부터 테크크런치 스타트업 경진대회 출전을 권유받았다.

K-데모데이가 한국 스타트업들 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테크크런치는 현지 유명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 창업기업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창업 경진 대회다. 노르마는 이 대회에서 당당히 준우승하면서 한국 스타트업계의 주목을 한눈에 받게 됐다.


테크크런치 준우승의 위력은 곧 나타났다. 올해 3월 기술보증기금, SBI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투자 기관들로부터 30억원을 유치한 데 이어 테크크런치를 후원하는 중국 고비파트너스와도 투자 계약을 받았다. 정 대표는 "고비파트너스는 당초 테크크런치 준우승자에게 50만 달러의 전환사채 투자를 하기로 돼 있었지만 노르마의 장래성과 국내 유명 투자사들로부터의 펀딩 등을 감안해 자본금 참여로 전환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세계적인 창업 대회 테크크런치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정현철 노르마 대표(사진 가운데)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노르마 지난해 11월 중국의 세계적인 창업 대회 테크크런치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정현철 노르마 대표(사진 가운데)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노르마
◇중국 진출 효과 "한국선 수억원 시장이 중국선 수백억원" = 노르마의 사업 아이템도 중국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인정 받는 데 도움이 됐다. 노르마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등 근거리 무선통신에서의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기존의 근거리 무선 보안 솔루션이 고가의 장비를 설치해 특정 지역 내에서 안전 사용을 담보하는 반면 노르마는 무선 접속 환경을 제공하는 무선접속장치(AP · Access Point)를 점검해 위험 노출 여부를 가려준다. 기존 장비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그동안 국방부, 한국수력원자력, 경찰청 등 보안이 중요한 사무실에 보안 장비를 납품했으나 최근에는 휴대폰 자동차 공기정청기 등 IoT기기 들에 탑재하는 형태의 상품을 주력으로 한다. 예를 들어 내 휴대폰을 갖고 어떤 식당의 와이파이에 접속하려할 때 이 식당의 AP가 위험에 얼머나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르마는 지난해 18억원어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이미 계약된 매출 규모만 65억원어치에 달한다. 정 대표는 "사물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핸드폰 자동차 등 많은 기기들이 와이파이를 쓰고 있다"면서 "삼성의 모든 휴대폰에 장착하기로 계약을 했고, 자동차업체인 현대차, 르노, 테슬라와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중국 시장 진출의 장점으로 거대 시장과 투자 규모를 꼽았다. 그는 "중국은 경제 규모가 크고 와이파이가 한국보다 훨씬 더 활성화돼 있어 시장도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 투자자가 많은 중국 기업들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최대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인 치후360와 계약해서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중국의 IoT 디바이스 업체인 파이컴에도 납품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투자 규모와 관련해서도 "중국 VC들이 공격적"이라며 "고비파트너스도 200만 달러 투자를 원했지만 이미 이번 라운드 펀딩 규모가 확정돼 있어 50만 달러만 들어왔다"고 밝혔다.

◇"기술력 확실한 니치마켓 스마트업 유리"= 정 대표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기술과 함께 한국에서 먼저 충분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턱대고 뛰어들 시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 대표는 "중국의 창업 시장 규모가 크다고 하지만 정부의 허가 없이 외국 기업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달러 펀드는 규모는 훨씬 작다"면서 "기술 콘셉트가 분명하고 사업화 실적과 펀딩 등 국내에서 먼저 검증을 받는 것이 중국 시장 진출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는 니치마켓(틈새시장)이더라도 확실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중국시장과 궁합이 맞을 수 있다고 추천했다. 정 대표는 "노르마도 와이파이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에서는 기업 가치가 돋보이지 못했지만 중국이라는 큰 시장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면서 "한국에서 5억, 10억 원 시장이 중국에서는 수백 억 원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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