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백남룡 작가. /사진제공=아시아
이데올로기적 호칭이 된 동무나 서로의 연고만을 강조하는 친구는 ‘벗’이라는 의미 앞에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다. 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가는 길은 지척도 천 리 같고, 만나고 싶은 벗에겐 천 리도 지척 같기 때문이다.
1992년 북한바로알기운동이 한창일 때, 한차례 출간된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88년 발표된 ‘벗’은 상투적 소설에 식상해 있던 북한 독자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2011년 프랑스어로 번역돼 소개됐을 때 일간 르몽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혁명적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주민의 일상적 삶을 다루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작품은 남북한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코리아 소설’로 기록됐다.
2일 북한 베스트셀러 작가 백남룡의 '벗'이 25년만에 재출간됐다. 이날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방현석(왼쪽)·정도상 두 소설가는 "세련된 미학적 균형미로 북한의 관료주의 폐단과 부부 양성평등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고 이 작품을 설명했다. /사진제공=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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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의 ‘품격’에 맞는 문화적 성숙도를 요구받고, 아내는 성실한 남편의 내면을 본다. 이 과정에서 이혼을 종용하는 ‘가짜 벗’과 만류하는 ‘진짜 벗’의 대결도 그려진다.
방현석(아시아문학선 기획위원) 소설가는 “북한에 이혼의 자유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들에게도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하며 이혼하는지에 대한 일상의 기록들을 만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공동체 내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작가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했다.
두 작가는 이 작품이 ‘관료주의에 대한 반성문’과 ‘가정 내 양성평등’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파격과 충격을 안겨준다고 해석했다. 정 작가는 “공산주의의 핵심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중심은 관료인데, 백 작가가 사후 검열을 피할 정도로 세련된 미학적 균형감으로 관료주의 문제를 꼬집은 것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벗’의 출간은 북한 작품의 저작권을 위임받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의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과정을 통해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 재단에 맡긴 공탁금이 북한 작가들에게 인세로 전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