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음주·폭행·폭언…한국기업들의 '오너 3세 리스크'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한민선 기자, 김사무엘 기자, 임동욱 기자, 이정혁 기자, 강기준 기자, 백인성 (변호사)기자, 이동우 기자 2018.04.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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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3세 리스크](종합)

편집자주 한국 자본주의 70년. 전세계 최빈국에서 글로벌 톱10 국가로 발전했지만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가정신은 미성숙 단계에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3세 경영자 리스크를 들여다봤다.

韓 자본주의 아킬레스건 된 '오너 3세 리스크'
[기업 3세 리스크]①단순 개인문제 아냐, 한국 사회·경제 전체 해악될 수도..."올바른 경영자적 자세·의식 필요"



[MT리포트] 음주·폭행·폭언…한국기업들의 '오너 3세 리스크'


"기업 3세 경영자들의 일탈을 보면,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요."

'한진가(家) 오너 3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 논란을 두고 대다수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날 대한항공은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 전무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본사 대기 발령 조치했다.



이미 기업 3세 경영자들은 영화 속 '악역'으로 종종 묘사돼왔다. 대표적인 게 영화 '베테랑'이다. 극 중 재벌가 도련님인 조태오는 '맷값 폭행'과 폭언이 일상이다. 극단적인 장면이지만, 문제는 '실화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이다.

실제 잊을만하면 기업 3세 경영자 관련 사건이 터져 '사회면'을 장식한다. 마치 불안한 시한폭탄 같단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정도면 이들의 일탈을 '일부의 단순 사고'로 치부하긴 어렵다. 우리 사회·경제에 끊임없이 울리는 일종의 '경고음'이다.


특히 넓게 보면 기업 3세 경영자 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암초가 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창업 3세 경영자들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현실에서 이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입을 수밖에 없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 3세들의 일탈은 단순한 개인과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와 사회 전반을 좀먹는 해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창업주들이 해방 이후 개척정신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그 2세들이 여러 형제들과 경쟁자이자 동지 관계로 사업을 이으며 해외로 사세를 키워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는데 역할을 했다.

이에 반해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해외 유학을 하며 온실 속에서 자란 3세들의 경영 능력은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도전 정신으로 '맨땅에 헤딩'하기보다는 해외브랜드 수입 등 '쉽고 폼나는 사업'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등 창업주 시절과 '시대 정신'이 달라지다 보니 일탈 사례가 쌓일수록 반(反)기업 정서가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1970~90년대 정년 보장이 되던 때엔 창업 오너에게 일부 문제가 있어도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뭉치며 희석되곤 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고용 불안 시대엔 굳이 회사와 창업자 가문에게 충성심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게 젊은 직원들의 기본 인식이다. 과거 국가 주도 경제 체제에서 수혜를 얻은 기업이 사회 환원을 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시선도 있다.

더욱이 '수저계급론'처럼 양극화된 사회 분위기에서 '금수저들의 갑질'이 흙수저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현 경제체제에 대한 분노를 부추긴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기엔 미디어의 변화도 한몫했다. 이젠 기성 매체뿐 아니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업 3세 경영자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순식간에 확산된다.

스마트기기로 녹음·동영상까지 등장할 정도다. 이번 갑질 사건도 직장인 익명게시판에서 내부자 글이 올라오며 공론화됐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벌 3세들이 사회 혜택을 많이 입었고, 영향력이 큰 만큼 외부 견제와 비판을 할 필요가 있고, 그들도 올바른 자세·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기업도 승계 프로그램 등 구조적인 내부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론 '같은 핏줄'이라고 무조건 경영권을 물려주는 유교식 자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명문 장수기업처럼 대주주 후손들이 소유권은 물려받되 경영권을 맡지 않거나, 장기간 경영 시험대를 거쳐 확실히 검증받은 이만 전면에 나서라는 것이 최근 사회의 요구다.

장시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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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난동'부터 '갑질 매뉴얼'까지
[기업 3세 리스크]②조현민 사건으로 본 창업가 2·3세 갑질 사례…누가 어떤 사고쳤나

[MT리포트] 음주·폭행·폭언…한국기업들의 '오너 3세 리스크'
조현민 대한항공 (21,700원 ▼100 -0.46%) 여객마케팅 전무의 갑질 논란으로 다른 창업 2·3세 기업가들의 과거 사건·사고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장 최근 논란을 빚은 일은 김승연 한화 (28,200원 ▲100 +0.36%)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씨의 3번째 '음주 폭행 사건'이다. 김씨는 지난해 9월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폭행과 폭언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피해 변호사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해당 사건 외에도 김 씨는 지난해 1월 강남구 한 주점에서 남자 종업원의 뺨을 때리고 경찰 연행 과정에서 소란을 피웠다. 2010년에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호텔 바에서 집기를 부수는 등 소란을 부려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07년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동원씨(현 한화생명 상무)가 폭행사건에 연루돼 사회적인 논란이 인 바 있다.

대기업 뿐만 아니다. 모 중소업체 2세 임모씨는 2016년 베트남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과 승무원 3명을 폭행하는 등 2시간 동안 소란을 피운 바 있다.

이에 임씨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및 업무방해, 상해, 재물손괴,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음주 폭행·폭언 사건뿐 아니라 갑질도 문제가 됐다.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비앤지(BNG)스틸 사장은 A4용지 140여장 분량 '갑질 매뉴얼'을 만들어 논란이 됐다.

정 사장은 2014년부터 3년 간 운전기사 61명을 주 56시간 이상 일하게 하고 1명을 폭행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이에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은 정 사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운전기사 갑질'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이 부회장의 아버지는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며 할아버지는 고(故)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다.

2016년 3월 전직 운전기사의 언론 폭로로 이 부회장이 2014~2015년 운전기사 2명을 상대로 수차례 폭행·폭언을 지속했단 사실이 알려졌다. 사이드미러를 접은 채 운전하도록 지시하고,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설을 하거나 뒤통수를 때렸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이 부회장은 2016년 3월 25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월 이 부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대림산업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한민선 기자, 김사무엘 기자

창업 3세 경영자 '갑질' 증가 이유 알고보니
[기업 3세 리스크]③의식수준 향상 및 미디어 발달..은밀히 숨겼던 '부적절한 행동'..이젠 '꼼짝마'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민중당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앞에서 '조현민 폭력 갑질 항의서한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김 후보는 조씨 일가를 경영일선에서 완전 배제하고 조현민이 법정에 출두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한진그룹에 전달했다./사진제공=뉴스1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민중당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앞에서 '조현민 폭력 갑질 항의서한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김 후보는 조씨 일가를 경영일선에서 완전 배제하고 조현민이 법정에 출두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한진그룹에 전달했다./사진제공=뉴스1
기업 창업 3세 경영자들의 '갑질'이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오너가'와 관련된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들은 대부분 조용히 묻혔다.

국내 최대 그룹 창업 회장의 후계자였다가 밀려났던 장남이 부친에 대한 원망에 골프장을 찾아가 골프채로 유리창을 깨고, 골프장 지배인을 구타한 사건 등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재벌가의 '부적절한 행동'은 상당수 베일에 가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 한 대기업 계열사 대표를 역임했던 한 재계 인사는 "옛날에도 오너가의 '갑질'은 많았다"며 "다만 주변에서 이를 굳이 문제 삼으려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부 창업 기업가문의 그릇된 행동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으로 △의식 수준 향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의 발달 등을 꼽는다.

이인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SNS, 블라인드앱(직장인 익명 앱) 등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만들어진 것도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회사나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등에 올릴 경우 이를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조직 입장에서 애초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라고 말했다.

또 언제든지 사진 촬영 및 녹음, 녹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폰 등 첨단 IT기기의 보급은 '증거'를 확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논란에 기름을 붙은 것이 조 전무의 목소리로 알려진 '욕설 음성 파일'이 공개되면서다.

사회가 이들의 일탈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어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교수는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따로 보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기업도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춰 문제가 생긴 창업 기업가의 임원을 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청문하는 절차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3~4세 경영자를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윤리경영은 고사하고 준법경영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기업 이미지 실추 등 투자자들의 손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도 따져볼 문제"라고 말했다.

맹 교수는 "현행 상법에 있는 주주대표소송은 물론,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 기업 3~4세 경영자들이 최소한 준법경영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동욱 기자, 이정혁 기자

창업 기업가 3세의 무한갑질, 어린시절부터…
[기업 3세 리스크]④전문가 "성장과정 잘못된 특권의식…경쟁력에 심각한 위협"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 빨간 신호등 너머로 대한항공의 로고가 보인다. / 사진=뉴시스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 빨간 신호등 너머로 대한항공의 로고가 보인다. / 사진=뉴시스
'땅콩 회항' 4년 만에 한진가(家)에서 또 불거진 '물벼락 갑질' 논란은 대한민국 재벌 3세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기업과 그 조직원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이들의 행태는 성장 과정에서 잘못된 특권의식이 길러진 데서 비롯한다는 분석이다. 당장 시민들에게 공분을 사고 피로감을 안기는 건 물론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발목마저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35)는 최근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회의 중 소리를 지르고 물컵을 던졌다는 논란이 확산하자 일단 사과는 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 보니 경솔한 언행과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법적인 책임을 다할 것이며 어떠한 사회적인 비난도 달게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무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탈에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항공이 사명에서 '대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동의 의견이 사흘 만에 5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정신분석·심리 전문가들은 조 전무를 비롯한 재벌 3세의 이 같은 행동이 전형적인 특권 의식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등 주변에서 특권의식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화를 키웠다는 얘기다.

조 전무의 미니홈피로 추정되는 계정에 "나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류", "어릴 때부터 수입차를 타고 다녀 만족스러웠다", "항상 타는 비행기 일등석(First Class)은 당연한 자리였다" 등 특권의식이 엿보이는 글이 다수 발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러 심리학 연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권력 중심적으로 보기 때문에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 집안으로서 권위적이고 강압적 환경에서 자란 경우일수록 갑질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보통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져 있어서, 반동 형성에 의해 갑질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어릴 적 가족 중 누군가에게 심하게 당하며 생긴 피해의식 때문에 그랬다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조 전무에 대해서도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 애착)과 분노조절 장애가 보이는 데, 기업 내부나 가족 등 주변에서 지적을 해주는 사람이 없던 것 같다”며 “자신의 언니도 그것 때문에 결국 많이 논란이 됐는데 그런데도 왜 반성하지 못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조 전무의 사과문도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 정 교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사과문 자체가 문제"라며 "국민들이 비판하고 수사를 받게 될 상황에 몰리니 어쩔 수 없어 사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소위 '재벌 3세 리스크 관리'가 기업과 국가 경쟁력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너의 행위에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때 기업의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기업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물의를 빚은 오너의 경영 복귀조차 쉽지 않다"며 "물의를 빚어도 기업 지배에 영향을 안 받는 구조적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3세가 비슷한 성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대표적 오너가 3세 기업인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강조한다. 오너로서 기업 위에 군림하지 않고 전체 사회에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동우 기자

‘직장 괴롭힘’ 개념도 없는데 도울 법이…
[기업 3세 리스크]⑤근로기준법 개정안·직장괴롭힘 방지 특별법 4건 환노위 통과조차 못해

[MT리포트] 음주·폭행·폭언…한국기업들의 '오너 3세 리스크'
국회에서 직장 괴롭힘을 막기 위한 법률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여전히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 현행 형법 등으로 규율되지 않는 직장 괴롭힘의 경우 손해배상 외엔 다툴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직장 괴롭힘이란 성희롱, 왕따, 과중한 업무 부여 등 직장 내에서 노동자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 전반을 말한다(국가인권위원회).

16일 머니투데이 ‘더엘’(the L)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직장 괴롭힘 관련 법안들을 조사한 결과 총 4건의 법률이 발견됐다. 20대 국회에서 이인영·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종오 전 민중당 의원이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 1건씩 발의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이 의원의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은 ‘직위, 업무상의 우월한 지위 또는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해 다른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로 직장 괴롭힘의 개념을 정의했다. △의도와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반복적으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행위(왕따) △정당한 이유 없이 6개월 이상 업무에서 배제하는 행위 △불필요하거나 모순적인 업무지시를 반복하는 행위 △반복적으로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인격을 침해하거나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등 유형별로 금지 의무를 지정한 법안이다.

한 의원의 법안은 직장 괴롭힘을 ‘직장 내외에서 직장 내의 지위나 인간관계 등의 직장 내 우월성을 이용해 업무의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일체의 행위’로 보고 예방교육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했다. 윤 전 의원의 법안은 △격리시키거나 소외시키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경력과 동떨어진 업무를 부여하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한 업무 또는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행위 △퇴사를 유도하는 방편으로서 대기발령, 전환배치, 교육훈련을 하는 행위 등을 직장 괴롭힘에 포함시켰다.

이정미 의원은 지위나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해 직장 안팎에서 특정 근로자를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행위 등을 통해 다른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했다. 법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의무와 △예방교육 △가해자 징계, 근무장소 변경 또는 유급휴직 △피해자에 불리한 조치 금지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속기록에서는 해당 법안들을 언급한 대목조차 나오지 않는다.

기존 민법을 통한 구제는 직장 괴롭힘의 예방과 금지를 기업에 의무화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직장 괴롭힘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는 만큼 법원은 직장 괴롭힘을 민법상의 불법행위로 보고 가해자와 사업주에게 단순 손해배상을 하도록 할 뿐이다. 이를 규정한 법률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법원은 직장 괴롭힘에 대해 구체적인 피해 구제책을 명령할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은 해고·징계 등 기업의 불이익처분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직장 괴롭힘 문제를 함께 놓고 손해배상을 다투는 것 말고는 거의 다투지 못하고 있다.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직장 괴롭힘을 놓고 다툰다 해도 인정받는 경우는 희소하다”며 “증거가 모두 회사에게 있고, 법령 자체가 없어 회사의 의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발의된 법안들에도 다른 국가들처럼 직장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예방교육 미실시에 대한 과태료 처분 정도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다음주 초 직장 괴롭힘 방지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지만 예방 위주의 법안이다.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백인성 (변호사)기자

中은 정부차원 ‘재벌2세 예절교육’, 美는 개인일탈로 간주

[기업 3세 리스크] ⑥ 해외의 ‘3세 갑질’…패리스 힐튼에서 푸얼다이까지

패리스 힐튼의 동생 콘래드 힐튼. /AFPBBNews=뉴스1패리스 힐튼의 동생 콘래드 힐튼. /AFPBBNews=뉴스1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과 유사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와 해결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자본주의가 성숙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주로 개인의 일탈로 간주돼 여론보다 법률적 잣대에 근거해 처벌한다. 반면 ‘졸부’가 많은 중국에서는 정부차원에서 ‘예절교육’까지 나서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는 힐튼호텔 창업주의 증손녀 패리스 힐튼 남매. 동생 콘래드 힐튼은 2015년 7월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렸는데 당시 ‘미국판 땅콩회항'사건으로 불렸다.

그는 승무원들이 제지하자 "5분 안에 너희를 해고할 수 있다"며 "내가 여기 사장을 잘 알고 아버지가 돈으로 수습을 해줄 수 있다"고 막말을 했다.

미국에서 승무원 업무방해죄는 징역 20년 중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콘래드는 검찰과 단순 폭행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징역 2개월을 살고 풀려났다. 누나인 패리스 힐튼 역시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노출 등 기행 등으로 자주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런 사례가 개인의 문제로 인식이 되는데 오너 일가라고 기업을 물려받거나 낙하산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부를 축적한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식도 보편화돼 있다.

패리스 힐튼의 할아버지이자 현재 힐튼호텔을 이끌고 있는 배런 힐튼도 사후 재산 23억달러 중 97%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재벌 2세를 뜻하는 '푸얼다이'들이 사회적 물의를 계속해서 일으키자 정부까지 나섰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지 40년 정도인 중국은 재벌2세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 /사진=블룸버그완다그룹 왕젠린 회장. /사진=블룸버그
예를 들어 중국 최고부자인 왕제린 완다그룹 회장의 아들 왕쓰총은 ‘푸얼다이 갑질’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왕젠린 회장은 아들에게 완다그룹 주식 1000만주를 증여하고 5억 위안(약 855억원)을 투자해 게임회사를 차려주는 등 승계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왕쓰총은 사치스런 생활을 과시하고 막말 등을 일삼았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의 영어발음을 지적하며 "영어를 못하면 해외에 나가지 말라"고 비꼬기도 했다.

중국 관영언론들까지 비판을 하자 왕젠린 회장은 "(아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샐러리맨 생활을 시킬 것"이라며 "5~8년 후 인정을 받을 때에만 후계자로 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푸얼다이들의 도를 넘은 행동이 계속되자 2015년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공산당에 "재벌 2세들을 지도하라"며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이 어디서 나오는지, 부유해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재벌 2세 수십 명씩 모아 정기적으로 사회적 책임과 애국심에 대한 강연을 실시하고 있다. 일종의 '예절 교육반'을 운영하는 것이다.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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