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손에 봉지가"… '비닐 공화국' 한국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8.04.09 05:27
글자크기

한국인 연간 비닐 420개 사용… 핀란드는 4개… "비닐 사용 제한하고 종이봉투 사용 권장"

6일 한 편의점에서 점원이 맥주 두 캔을 비닐 봉투에 담아 기자에게 건네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6일 한 편의점에서 점원이 맥주 두 캔을 비닐 봉투에 담아 기자에게 건네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재활용업체들이 분리수거 재활용품 중 3분의 1에 달하는 폐비닐을 정상 수거하기로 하면서 '분리수거 대란'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비닐을 비롯 일회용품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이와 유사한 논란이 재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한국인의 1회용 비닐 사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인은 2015년 기준 연간 인당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했다. 반면 2010년 기준 유럽연합(EU) 주요국의 연간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은 △핀란드 4개 △독일 70개 △스페인 120개 등이다.



6일 찾은 한 대형 마트에서 한 점원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비닐봉투를 매만지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6일 찾은 한 대형 마트에서 한 점원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비닐봉투를 매만지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대형마트, 비닐봉투 없애는 데 앞장선다지만… 현실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는 2010년 10월 환경부와 협력해 1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1회용 비닐봉지 대신 재사용 종량제 봉지가 판매되고 있으며, 규격은 20리터로 일반 종량제 봉투 가격인 480원이다.

하지만 해당 정책은 실효성이 적어 보였다. 6일 오전 머니투데이가 서울시내 주요 대형마트를 다니며 취재한 결과 여전히 과일, 채소, 정육, 해산물 등을 담는 용도로 1회용 무료 봉투가 무수히 쓰이고 있었다.



이날 오전 찾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에서는 대다수 시민들이 무상 제공 비닐봉지를 사용해 장을 보고 있었다. 각 카트당 최소 3~4개씩의 비닐봉지가 쓰였다. 정육이나 초밥 등 상품은 이미 스티로폼과 랩으로 포장돼 있음에도 다시 비닐에 담았다. 과일 10개를 구매하면서 각각 2~3개씩 따로 담아 비닐 3~4개씩 낭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근과 사과를 구매해 각각 다른 봉지에 담은 주부 신모씨(55)는 "비닐이 공짜고 두꺼워서 질도 좋다보니 '여유분을 집에 가져가면 다음에 쓰겠지'하고 더 챙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거나 할 때 이 비닐을 쓰면 편리하다. 가급적 사용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편한데 어쩌겠냐"라고 덧붙였다.
6일 찾은 대형마트에서 판매 되고 있는 '손질 채소들'(위), 진열된 '깐 양파'와 '손질 대파'가 눈에 띈다. (아래)/사진=이재은 기자6일 찾은 대형마트에서 판매 되고 있는 '손질 채소들'(위), 진열된 '깐 양파'와 '손질 대파'가 눈에 띈다. (아래)/사진=이재은 기자
마트에서는 '손질해 비닐에 담은 채소' 상품도 다수 눈에 띄었다. 예컨대 '깐양파' '깐감자' '손질 단호박' '잘게 썰린 대파' '채당근' 등이다. 이렇게 손질된 야채들이 다시 비닐로 포장되는 것이 문제. 한국에서는 큰 죄의식 없이 소비되지만 지난 1월 영국의 대형마트 체인 '리들'은 '깐 양파'를 비닐포장에 담아 판매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쓰레기를 양산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6일 기자가 빵 2개를 구매하자 점원이 비닐봉투에 담아 건넸다. /사진=이재은 기자6일 기자가 빵 2개를 구매하자 점원이 비닐봉투에 담아 건넸다. /사진=이재은 기자
◇비닐 만연은 일상…편의점·빵집·재래시장에서도
다른 장소에서도 비닐은 마구 사용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중구의 한 편의점에서 기자가 맥주 캔 2병을 구매한 뒤 "봉투는요?"하고 묻자 점원은 '봉투값 20원'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비닐에 물건을 담아줬다.

해당 매장은 대규모 매장으로, 33㎡(10평)가 넘는 매장에서 B5 사이즈보다 큰 비닐봉지를 무료로 준다면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자칫 '봉파라치'(비닐봉투 불법 무상제공 신고포상금을 노린 전문신고꾼)에게 신고당할 수도 있지만 무상으로 제공하는 이유는 고객들이 무료 비닐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한 편의점에서 봉투값을 요구한 아르바이트생을 손님이 폭행하기도 했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을 연달아 방문해 빵 2가지를 구매해봤다. 점원들은 해당 빵을 1회용 비닐로 포장한 뒤 다시금 봉투에 담아서 기자에게 제공했다. 이 곳에서도 봉투값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6일 남대문시장에서 손님들이 구매 후 받은 비닐 봉투를 들고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6일 남대문시장에서 손님들이 구매 후 받은 비닐 봉투를 들고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재래시장은 더 심각했다. 대부분 점포 면적이 작아 비닐봉투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찾은 남대문시장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비닐 봉투를 2~3개씩 손에 들고 있었다. 물품 구매시 점포에서 무상 제공한 것이다. 상인들은 손님이 큰 가방을 가지고 있거나 이미 다른 비닐봉투를 가지고 있어도 새 비닐봉투에 물건을 담아 건넸다.
6일 찾은 남대문시장에서 점포들은 대부분 무상 비닐봉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진=이재은 기자6일 찾은 남대문시장에서 점포들은 대부분 무상 비닐봉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진=이재은 기자
비닐봉투를 쥐고 있던 이점례(60)씨는 "가급적 안 쓰려고 하는데, 옷 2개를 구매하니 알아서 봉투에 담아줬다"고 말했다. 양말 노점상인 B씨는 "양말을 1개만 구매해도 비닐에 담아서 준다"면서 "비닐은 당연히 제공되는 서비스나 인심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지 투데이/사진=이미지 투데이
◇"비닐 사용 적극 규제"…종이봉투·에코백이 대안
전문가들은 비닐의 재활용이 어려운 만큼 적극적으로 비닐 사용을 규제하는 한편 소비자들도 비닐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시는 앞으로 무상제공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면적 33㎡ 이상의 상점이 비닐봉투를 무상 제공할 경우 5~3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는 재활용이 용이한 종이봉투, 재사용 종이박스 등을 제공해 사용량을 줄이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처장은 "비닐은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하는데,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이 나온다. 결국 사용을 줄이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재활용된 갱지 종이봉투를 사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에코백 등을 한개씩 꼭 가지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비닐봉투의 사용을 줄여야한다는 사회적 합의 마련이 가장 중요하고, 정부가 적극 규제하는 한편 비닐봉투 생산 업체들을 함께 고려해줄 때 비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대형마트에서 무상 비닐봉투 사용을 유상으로 전환하자 많은 이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왔듯, 소규모 매장에서도 이 같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봉투 뿐만 아니라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포장비닐 문제도 비닐 문제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문제이므로 함께 생각해봐야한다"고 덧붙였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