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전략 갖춘 '협상 파트너' 김정은, 文과 담판 앞둬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18.04.09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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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남북정상회담 사용설명서]1-⑤[김정은 사용설명서下]文, 취임 초부터 협상 가능한 인물 간주…신뢰 쌓는 중

/그래픽=이승현 기자/그래픽=이승현 기자


"김정은이 햄버거를 좋아할 것이라고 보시는가."(미국 CBS 노라 오도널 앵커)

"아마도."(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첫 방미를 앞두고 미국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웃으며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햄버거를 먹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했던 것을 언급하며 나눈 대화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햄버거'는 협상의 매개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고 북핵 해결책을 모색해왔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협상 불가능한 북한의 독재자로만 김 위원장을 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실제 문 대통령은 해당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진짜 바라는 것은 체제 유지에 대한 확신"이라며 "겉으로는 핵프로그램을 내세우지만 깊은 곳에서는 대화를 원할 것이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협상 파트너'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올들어 남북대화가 시작되며 이같은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덕이다. 그동안 북측 매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김 위원장을 분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차이난다. 비대한 몸매,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로 박제됐던 김 위원장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 가능해졌다.

청와대와 정부가 직접적으로 김 위원장을 접촉한 것만 두 번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대북특사단이 김 위원장과 만찬을 함게 했고, 방북 예술단 역시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이 최근 파격적으로 방중을 하며 국제무대에 사실상 데뷔를 한 것 역시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두 차례의 김 위원장과 접촉에 모두 동행했다. 윤 실장은 매일 오전 9시 문 대통령과 '티타임'을 나누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베일에 싸였던 김 위원장과 직접 접촉하며 얻은 사소한 정보, 이를테면 식사 습관이나 대화 방식 등 까지, 모두 향후 협상에 귀중하게 쓰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유머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는 데 능하다고 본다. 대북특사단에게 자신이 해외에서 '로켓맨'으로 불리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투의 언급을 했고, 방북 예술단에게는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북한식 유머'를 썼다. 대북특사단을 노동당 본부 현관문에서부터 기다리는 등 '배려'를 앞세우고, 접견 1시간 만에 비핵화 언급 등 6가지 항목에 합의하며 '통 큰'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동시에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협상을 준비하는 모습 역시 포착되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베이징행 기차를 탄 것은 북핵 '몸값 높이기'를 위한 고도의 수로 파악된다. 북한 체제보장 및 평화체제 구성을 언급한 '베를린 구상'과 같은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 역시 상세히 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특사단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연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전에 해당 이슈에 대해 "이해한다"며 선수를 치는 모습도 보였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전략적인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진행할 협상의 종착점은 '신뢰 관계' 구축이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고,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협상은 약간의 신뢰라도 있어야 가능한 법이지만,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현재 100%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은 아니다.

남북 지도자 간 굳건한 신뢰가 확립됐다는 것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합의됐음을 의미한다. 길게 보면 북미 간 핵협상의 최종 타결까지도 필요한 부분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친서도 교환하고 특사도 교환하면서 두 정상 간에 신뢰가 많이 쌓였다고 믿고 있다"며 "향후 협상에서 파트너 간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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