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비핵화 열쇠는 김정은 아닌 트럼프…편견 버리고 대화해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4.0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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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선을 넘어 생각한다’…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北비핵화 열쇠는 김정은 아닌 트럼프…편견 버리고 대화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우리 예술단을 초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남측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등 열린 자세를 보이는가 하면,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단행하며 개혁 의지를 공고히 했다.

지금껏 북한을 뒷골목의 조폭 집단으로 묘사하거나 세계 평화를 망치는 사이코패스처럼 여기는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 혁신이다. 북한이 갑자기 달라진 걸까, 아니면 정보 부족에 따른 우리의 무지에 원인이 있었던 걸까.



만주 출신의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북한이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북한을 잘 몰라서라고 말한다. 폐쇄적 국가의 부족한 정보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현실 정치와 기성 언론의 왜곡 속에서 만들어진 편견과 전후사정, 맥락에 대한 무지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장성택 처형이다. 북한을 50번 이상 방문하고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중재한 저자에 따르면 장성택 처형은 조선노동당 최고위급 간부들의 협의에 따른 결정이지 김정은 위원장의 독단으로 내린 지시가 아니다. 저자는 “결정 과정에서 눈물을 흘린 이도 여럿 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북한에 억류된 오토 웜비어의 사망도 일차적 원인은 북한에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하에 북한과 적극적으로 교섭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비롯된 것임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편견을 버리면 북한은 대화 가능한 상대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뢰를 전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순서가 뒤바뀐 처사”라며 “신뢰는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에 대한 편견은 잘못된 대북정책으로도 이어졌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대북 관계자들은 “늦어도 3년 안에 북한은 무너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수만 명이 아사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도 북한 시스템은 굳건했다.


체제는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정통성이 약화했을 때 무너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 체제 붕괴를 ‘자멸’ 또는 ‘압박’ 형태로만 봤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은 비핵화에 협력할 수 있을까. 비핵화에 대한 처방이 나오기 위해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핵 개발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봤고, 따라서 비핵화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닌 트럼프라는 것이다.

저자는 “김정은은 김일성 주석의 국가 정통성, 김정일의 물리적 안정 기반을 넘어 덩샤오핑처럼 경제 발전에 힘을 쏟고 싶어한다”며 “경제 발전 아젠다를 위해 미국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의지가 있고 핵 개발 야망도 포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 해결은 북한을 악마화함으로써 얻을 이익과 북한과 거래함으로써 얻을 이익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장사꾼’ 기질이 강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대북관계에 대한 국내 정치의 원칙과 전략도 중요한 요소로 지적됐다. 저자는 남북관계 진전의 좋은 기회를 제 발로 찬 최악의 사례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을 꼽았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북핵 해결 등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를 맞바꾸는 ‘포괄적 접근’을 준비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를 선언하면서 북핵 문제가 악화했다.

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핵 문제의 원인을 중국의 방조 때문이라며 ‘북핵 중국 책임론’을 은연중 전제하면서 책임을 회피한 것도 전략의 실패로 간주했다.

저자는 통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질성 회복이 아닌, 이질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주문한다. 이질성을 용납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낙인을 찍고 사상을 검증하는 일이 늘어나 갈등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통일헌법을 작성하되, 미국의 연방제 등의 경험을 참조하며 남북 개별 정부와 통일정부가 병존하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작의 생각이다.

저자는 “북한이 안전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국제 사찰을 받고 핵 개발에 대한 야망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전보장은 결국 휴전 상황을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북미 수교와 불가침조약 체결 등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박한식, 강국진 지음. 부키 펴냄. 320쪽/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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