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에 앞서 가수 백지영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이번 공연을 관람했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혔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요약하면 김 위원장은 ‘구슬픈 트로트’ 선율과 ‘뽕끼’ 있는 가창에 귀 기울이는 편이다.
윤상 감독은 김 위원장이 심수봉의 곡을 YB밴드가 편곡한 록 버전을 듣고 “이게 어떤 편곡이냐”고 물으며 “북측에서 좋아한다”고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평소 귀에 익숙한 ‘뽕끼’ 넘치는 심수봉의 가창과 빠른 템포 속 구슬픈 선율의 ‘변형’에 호기심이 생긴 셈이다.
김 위원장은 1985년 발표된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에도 애정을 보였다. 이 곡은 최진희에게 맡겨졌는데, 자신의 곡이 아닌 곡을 선택 받은 과정부터 의아함의 연속이었다.
최진희는 “내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준비하는 측에서 ‘뒤늦은 후회’를 부르라고 해서 이해가 안 됐다”며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해서 사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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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28세에 요절한 천재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장덕과 그의 오빠인 장현으로 이뤄진 남매 듀오가 1985년 발표한 곡이다. 이 곡은 곡 자체가 지닌 구슬픈 선율 못지않게 남매의 안타까운 삶도 눈길을 끌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동생이 사망한 지 6개월도 채 안 돼 오빠가 설암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 ‘한국의 카펜터즈’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젊은 뮤지션들의 갑작스러운 비보만큼이나 그들이 남긴 곡엔 절절한 잿빛 기운들이 넘친다.
최진희의 잔잔하면서도 구슬픈 가창이 이 노래를 아끼던 김 위원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두 곡은 모두 ‘마이너 코드’(단조)로 시작하는 구슬픈 트로트 색감이 진하게 배어있다. ‘남자는…’는 ‘Am→Dm→G→C/~’ 코드로 이뤄진 전형적인 트로트 멜로디 전개이고, ‘뒤늦은 후회’ 역시 ‘Am→E7→Am→Dm→E7/~’로 전개되는 세미 트로트다. 밝은 장조보다 슬픈 단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두 곡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통해 자세히 드러난 셈이다.
4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예술인의 합동무대 '우리는 하나'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어떤 밝은 장조 곡도 구슬프게 소화해내는 백지영의 ‘뽕끼’ 넘치는 가창에 김 위원장이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남쪽에서 어느 정도의 가수이냐” “저 노래는 신곡인가” 등을 물어보며 가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백지영은 댄스 가수로 출발했지만, 작곡가들로부터 “너에게 ‘뽕끼’가 흘러 넘친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다. 가창과 춤에 재능이 있는 가수가 온전히 가창에만 몰두할 수 없었기에 발라드로 선회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느린 곡에서 ‘절절하게 목놓아 부르는’ 진가는 현재 그의 전매특허로 기록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그의 노래보다 가창에 주목하며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는 ‘한의 창법’에 관심을 드러냈다.
노래 가사처럼 ‘배와 항구’가 연결된 남북 화해와 협력,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이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걸 ‘잊지 않는’ 메시지가 김 위원장의 음악 취향에서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총알처럼 빠른 스피드로 막힌 통로를 뚫는 작업에 매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