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광화문 택시연가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8.03.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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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근처인 광화문 인근에서 늦은 술자리에 끼어 있는 건 고역이다. 분위기에 취해 술자리가 늘어지다 보면 어김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고 만다. 버스 막차가 끊기기 전에 자리를 끝낼지, 아니면 새벽 1시 넘어까지 자리를 이어갈지 말이다. 집이 그다지 멀지 않다 보니 심야시간에 택시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카카오택시가 대중화한 지금은 더 그렇다. 심야에 ‘예약’ 표시등을 켠 채 주변을 오가는 택시들은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도착지를 넣고 호출하면 감감무소식이다. 깜박이는 예약 표시등을 쳐다보며 예전처럼 “더블”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거리 위주 손님만 골라 태우는 ‘얌체 기사’에게 맞서 일부러 먼 거리를 호출하고 도착지를 바꾸는 ‘얌체 손님’이 돼볼까 싶다가도 ‘상상 속 응징’에 머물러야 했다.



 카카오가 이에 대한 해결책이라며 카카오택시 유료 호출(콜) 서비스 모델을 제시했다. ‘우선 호출’과 ‘즉시 배차’ 등이 그것이다. ‘우선 호출’은 AI(인공지능) 기반의 배차시스템으로 운행패턴과 목적지 거리 등을 따져 배차 성공률이 높은 택시를 부르고 ‘즉시 배차’는 호출 승객 주변의 빈 택시를 자동 배차하는 서비스다. 우선 호출은 2000원(야간·주간 1000원), 즉시 배차의 경우 5000원가량(확정되진 않았다)의 요금이 호출 승객에게 책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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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을 내놓자마자 카카오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웃돈’을 준 승객에게 택시를 우선 배차해 피크타임·지역에서 반복되는 택시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웃돈’은 카카오의 수익과도 직결된다. 유료 호출 기능으로 번 돈 일부를 참여기사들에게 포인트로 지급해 혜택을 나누겠다고 했지만 카카오가 얻는 수수료 수익이 연간 수백억 원에서 최대 1000억원 가까이 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추산이다.

 민간기업이 적정 이윤 창출을 위해 이용자들에게 서비스 이용료를 요구하는 건 전혀 탓할 일이 아니다. 영리기업에 언제까지 무료 서비스만 제공하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새로 내놓은 수익모델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도입절차와 방법도 일방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카카오택시는 택시산업 생태계를 좌우하는 공룡 플랫폼이 된 지 오래다. 카카오의 서비스 정책 하나하나가 택시 업계는 물론 교통 정책·요금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카카오택시나 카카오드라이버가 수십 년 이어온 전통산업 생태계를 허물고 대중 플랫폼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이용자, 택시기사, 대리기사 등 시장 참여자들의 지지와 기대 덕분이다. 기존 기득권자들의 반발과 저항 속에서도 카카오가 서비스를 강행한 명분이기도 하다.

 정작 이번 유료모델 도입 과정에는 이용자나 기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부·서울시 등과의 공식 협의도 없었다. 이용자의 상당수는 택시 호출 피크타임 때 유료 콜 위주로 승객 골라태우기 관행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사실상의 택시비 인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택시기사들마저 등을 돌렸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4개 단체는 “승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동시에 택시산업 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유료서비스 철회를 촉구했다.

 경쟁자가 사라진 거대 O2O(온&오프 연계) 플랫폼사업자의 오만일까. 거액의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수익모델이 시급해서일까. ‘혁신’ 없이 ‘웃돈’에 집착하는 카카오택시에 전통산업 생태계를 더욱 이롭게 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초심을 잃은 카카오의 행보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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