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한국 사회에서 박수 받는 데 15년 걸렸죠"

머니투데이 권혜민 기자 2018.03.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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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서 미투로...권력의 붕괴]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인터뷰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사진=권혜민 기자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사진=권혜민 기자


"예전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피해자들을 되레 비난하고 의심하는 말들이 넘쳤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피해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지금, 매일매일이 놀랍습니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을 바라보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57·사진)의 소감은 특별하다. 1991년 동료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성폭력상담소'라는 이름을 내 건 단체를 만든 그는 27년 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나 왔다. 그는 "요즘처럼 한국 사회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치유를 기원해 주는 일은 처음"이라며 새로워 했다.



이 소장은 형형색색의 포스터들을 꺼냈다. 2003년부터 개최해 온 '생존자 말하기 대회'의 포스터다. 이 대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많은 이들 앞에서 고백하고, 듣는 이들은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나도 당했다"라는 미투 운동은 이미 15년 전부터 시작돼 온 셈이다.

아이디어를 꺼낸 건 이 소장이었다. 그는 1995년 호주 유학 당시 시드니 하이드파크 한 복판에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친족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성폭력 피해에 '수치스럽다'며 숨기기 급급했던 한국에선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왜 저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라는 이름으로 첫 대회를 열었고, 지금까지 이어 왔다.



이 소장은 "'말하기 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하나의 물결로 이어지던 차에 서지현 검사가 기름을 부어준 격"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해 왔다"며 "단지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30년 가까이 피해자들과 외로운 싸움을 같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 소장은 자긍심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 사회의 맥박이고, 세상을 바꿔간다는 생각에 신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있고, 가해자 처벌을 원한다'고 소리치는 분들을 보며 경외심을 느낀다"며 "이분들이 힘을 내고, 우리 사회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벅찬 감동을 준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인식 개선이다. 그는 "법 제도는 어느정도 갖춰졌지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인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폭력은 괴물이나 저지르는 일"이라며 나와 떨어뜨려 생각해서는 결국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나를 돌아봐야 한다"며 "성추행이 일어날 때 내가 피해자가 아니어도 주변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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