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청 도지사실 앞에 비치된 안 지사의
추천도서 목록.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안 지사의 자서전과 함께 놓여 있다.
추천도서 목록.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안 지사의 자서전과 함께 놓여 있다.
관사 옆에서 만난 한 주민은 "꿈을 꾸는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몇몇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런다"며 "정말 정치공작의 가능성은 없는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성추행 의혹 폭로로 충청남도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세대와 이념을 뛰어넘은 분노와 배신감이다. 충남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안 지사와 가까울수록 배신감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특히 안 지사의 인기가 높았던 2030 세대의 충격이 컸다. 도청에서 만난 30대 김모씨는 "너무나 큰 배신감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안 지사는 보수 텃밭이었던 충남에 깃발을 꽂고 재선까지 성공하지 않았느냐"며 "당이나 이념이 아닌 안희정이라는 개인의 능력과 철학, 가치관을 보고 표를 던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년층도 충격을 받은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홍성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다는 박희수씨(64)는 "대선과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도지사 선거에서만큼은 '우리 희정이'에게 표를 던졌다"며 "내 고장 충남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다.
안 지사와 함께 일했던 충남도청 소속 공무원들도 허탈감을 호소했다. 반년 전 군청에서 도청으로 이동해왔다는 공무원 김모씨는 "군청에서 도청으로 이동해 오면서 업무에 생긴 큰 변화가 안 지사였다"면서 "민주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안 지사의 업무 방식에 많은 공무원들이 감동을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안 지사를 '우리 지사님'으로 부르며 많은 애정을 뒀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지난 5일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피해자 김지은씨 역시 안 지사를 '우보 지사님'이라는 별칭으로 등록한 바 있다. 우보(牛步)는 안 지사가 자신이 도정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할 때 즐겨 이용하던 '우보호시'(牛步虎視)에서 따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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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안 지사 개인에 대한 분노에 머물지만, 언제든 민주당과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태세다. 20대 여성 최모씨는 "탄핵 정국과 대선을 거치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당과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을 지켜본 뒤 지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것 "이라고 말했다.
분노한 도심(道心)과는 별개로 안 지사 측은 이날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사퇴 의사를 표명한 뒤 침묵을 유지했다.
충남도지사 관사 본채 유리창에 난 구멍,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 보도에 분노한 30대 민주당원이 6일 오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파손했다. /사진=이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