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법보다 말이 앞서 오해만 산 금융당국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18.03.12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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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금융지배구조]<7>제도 개선 아닌 행정지도·구두로 개선 주문…일부 금융회사만 수용

금융당국이 ‘법’이 아닌 ‘말’로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하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져 오해만 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은행금융지주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강하게 요구한데 대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지배구조법)이 2016년 8월부터 시행되면서 금융회사들이 법에 맞게 지배구조를 갖췄지만 실제 운영은 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금융지배구조법이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먼저 전반적인 실태 점검을 하고 이에 따라 개선 방안을 마련한 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확정하는 절차를 단계적으로 거쳐지 않고 무슨 이유에선지 다짜고짜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부터 높였다는 점이다.



[MT리포트]법보다 말이 앞서 오해만 산 금융당국


시기도 미묘하게 KB금융지주가 회장 연임을 결정한 직후, 하나금융지주가 차기 회장 선임을 두달여 앞둔 때였다. 더욱 미묘한 것은 금감원이 하필 KB금융과 하나금융만 꼭 집어 지배구조를 점검해보니 회장의 '셀프연임' 우려가 있었다며 '경영유의사항'이라는 조치를 내렸다는 점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특정 금융회사를 겨냥해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전체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지배구조를 순차적으로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 금융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지배구조법 시행 1년이 지난 상황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점검한 결과 일부 문제점이 발견돼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는 순서를 밟았다면 아무 잡음이 없었을 일을 순리를 거슬러 말부터 쏟아내고 수습하는 모양새가 되니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금감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지배구조를 바꿨지만 다른 금융지주는 남의 일로 여기며 금감원 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배구조 개선 주문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 특정회사, 특히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입장을 취한 탓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이 목적이었다면 금융권 안팎의 의견을 모아 법 개정에 집중했을 텐데 특정인을 겨냥하다 보니 어떤 회사는 지배구조를 바꾸고 어떤 회사는 바꾸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5일 뒤늦게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한다. 여기에 금감원이 KB금융과 하나금융의 잘못이라며 요란하게 문제제기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사추위)에서 회장을 배제하는 문제가 포함될지 주목된다.

2011년 금융지배구조법 제정 당시 사추위에 사내이사를 제외하는 규정은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견제할 뚜렷한 장치가 없어 사외이사 전횡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빠졌기 때문이다. 사추위에서 회장을 배제하는 규정을 한국투자금융지주 등 다른 금융지주와 은행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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