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달, 오늘은 누구? 참담한 대한민국 민낯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최동수 기자, 방윤영 기자 2018.03.0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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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은 망신이라도 주지, 내옆의 가해자는 어떻게 하나"… '반(反) 미투' 움직임도

 검사의 성추행 및 조직적 은폐 의혹 관련 당사자인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 검찰 성추행사건 조사단의 조사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검사의 성추행 및 조직적 은폐 의혹 관련 당사자인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 검찰 성추행사건 조사단의 조사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오늘은 누구냐." 자고 나면 연일 미투(me too·성폭력 피해를 '나도 당했다'는 뜻) 폭로가 터져 나온다.

검찰에서 시작된 피해자들의 외침은 문화예술계, 종교계, 정치권, 의료계, 대학가 등 사회 각 분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낱낱이 드러나는 권위자들의 민낯에 시민들은 분노한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였나라는 충격과 탄식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유명인들이야 망신이라도 주면서 책임을 묻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가해자들' 앞에서 여전히 피해자들은 무력하다는 호소가 적잖다. 남성들을 중심으로 억울한 가해자로 몰리는 사례를 우려하는 등 '반(反) 미투' 움직임마저 나타난다.



◇"직원 30명 회사에서 미투?"… 여전히 입 닫는 약자들

서지현 검사가 지난달 29일 검찰내부망(이프로스)에 본인의 과거 성추행 피해 사례를 공개한 지 꼭 한 달. 미투는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그러나 자신의 삶 속에서 미투 운동을 실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4년차 여성 직장인 A씨(29)는 "우리 회사 대표가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을 껴안는 등 스킨십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는 "직원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기업이라 누가 말했는지 금방 소문이 날 수 있고 공개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유명대학 3학년 B씨(22)는 여자 선배들로부터 "C 교수를 조심하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C 교수가 술 자리에서 옆에 앉은 여제자의 허리를 감는 등 추행하는 장면을 본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B씨는 "교수와 제자의 갑을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 해당 교수를 피하는 선에서 그칠 뿐 누구도 문제제기를 못한다"며 "문제를 거론해봤자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조차 없다"고 말했다.

◇"나도 가해자?"… '뜨끔'하는 남성들, 무고 우려도

미투 폭로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남성들은 '나도 가해자 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대기업 직장인 D씨(34)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회식자리나 회사생활에서 여성 직원을 대할 때 더욱 조심하게 된다"며 "웬만하면 택시를 같이 타지 않고 여자 동기가 포함된 단체 채팅 방에서는 말을 아낀다"고 말했다.

지방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E씨(43)는 "지점에서 여직원들하고 얘기할 때 손을 잡거나 어깨를 다독이곤 했는데 이런 행동들이 직원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요즘은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성폭력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며 경계하는 조심도 나온다.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기점으로 이달 28일까지 한 달 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 52개 올라왔다. "거짓 폭로를 막기 위해 허위신고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무고 사건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남성들의 사연은 미투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의 단골 근거다. 2016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모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진범은 다른 교수로 밝혀졌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성 문제는 사회 권력구조에 기반, 평등 문화 조성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최근 연쇄 폭로 현상을 잠재된 성차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봤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적 차별은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여성혐오적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며 "성폭력이 약자를 대상으로 저질러진다는 점을 감안해 해결방안 역시 권력 구조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김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약했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법·제도 개정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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