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법,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머니투데이 안찬식 변호사(법무법인 충정) 2018.03.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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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충정 기술정보통신팀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혁신 기술과 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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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2017년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관심과 논의는 해가 바뀐 금년에도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작년부터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전면금지를 포함하여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고 작년 말과 금년 초에는 소위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등 가상화폐 거래소들에 대한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여야의 여러 국회의원들이 가상화폐 거래에 대하여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며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국민의 대표자들이 ‘가상화폐 바로알기’를 시작하고 전면금지가 아닌 합리적인 규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다만, 가상화폐 업계와 이용자(투자자)의 이해관계 그리고 규제와 진흥이 균형 있게 반영된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상화폐 법안을 만드는데 있어 무엇보다 기본적인 것은 가상화폐에 대한 적절한 용어 선택과 법적 정의가 될 것이다. 일단 가상화폐, 가상통화, 가상증표, 암호화폐, 암호통화, 디지털화폐 등 다양한 용어들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상통화’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으며, 최근 일부 부처에서는 ‘가상증표’가 더 적절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블록체인기술 또는 암호화 기술에 바탕을 둔 가상화폐의 기술적 특정을 고려하여 ‘암호화폐’ 또는 ‘암호통화’라는 용어가 가장 적절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더욱 중요한 것은 법안에서 법률적 정의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는 물론 이후 가상화폐 공개 또는 발행(Initial Coin Offering, 이하 “ICO”)을 통해서 발행되는 새로운 가상화폐까지 모두 규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상화폐의 법적 정의의 명확성이라는 측면과 향후 등장할 수 있는 모든 가상화폐를 규율할 수 있는 탄력성 측면, 어찌보면 서로 상충되는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가상화폐 법안은 발행시장, 유통시장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규제가 필요하다. ICO로 대표되는 발행시장과 거래소로 대표되는 유통시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의 법안들은 거래소에 대한 규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ICO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거나 매우 형식적인 규율에 그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ICO는 그 형식, 장소, 절차, 시기, 방법이 매우 다양하고 ICO를 통해 발행되는 코인이나 토큰의 성격과 종류가 천차만별이어서 이에 대한 규제를 법안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ICO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요건만을 법안에 담아내고 이러한 요건만을 지킨다면 해당 ICO를 허용하고, 개별 ICO에 대한 판단은 시장에 맡겨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는 최소 자본금 요건, 인적, 물적 요건, 시세조정, 내부정보사용, 이해상반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방지 등 이용자(투자자) 보호에 필요한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반면 이러한 요건이 스타트업 회사들이 거래소 시장에 진입하는데 있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여 가상화폐 거래소 시장이 소수의 대형 거래소나 대기업에 의하여 사실상 장악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책적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

이용자(투자자) 보호의 측면에 있어서는 최근 국내외 여러 거래소들의 해킹 사건에서 보듯이 보안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경우 한번 해킹 사건이 있으면 엄청난 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피해금액도 거액인 점을 감안하여 아예 금융기관 수준으로 보안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고,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거나 공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에 관한 법령 외에 블록체인기술의 활성화 법안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기술을 분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상화폐가 블록체인기술의 전부는 아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한 법안에 모두 담아내는 것은 입법기술 측면에서 쉽지 않을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화폐에 대한 법안과는 별도로 블록체인기술에 대한 독립적인 법안을 기본법 형태로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혁신적인 블록체인기술이 개발, 시험될 수 있도록 스위스의 크립토밸리(Crypto Valley)처럼 특구를 지정하여 관련 업체를 입주할 수 있도록 하고 특구 내에서는 일정 기간 법적 제한을 풀어 주거나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세제지원 등을 통해 신기술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러한 실험을 통해 성공한 블록체인기술은 제도화하고 법안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른바 규제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제도를 시행하여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까지 가상화폐를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정식 법령을 가진 나라는 일본 외에는 없다. 일본은 자금결제법의 개정을 통해 가상화폐를 규제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세계 최초로 ICO를 규율하는 법령을 내놓을 예정이라는 흥미로운 소식이 있다. 한국이 가상화폐에 관한 모범적인 법안을 만들어 혁신적인 블록체인기술을 보유한 전세계 스타트업 회사들이 한국에서 ICO를 하고 가상화폐 거래소를 개설, 운영하고 싶어하는 국가, 전세계 가상화폐의 중심지로서 가상화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가상통화 법,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법무법인 충정의 안찬식 변호사(연수원 31기)는 Tech&Comms(기술정보통신), 외국인투자(FDI), M&A, 노동법, 개인정보보호 분야를 전문영역으로 하고 있다. 안찬식 변호사가 팀장으로 있는 Tech&Comms 팀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3D프린팅,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혼합현실(MR), 핀테크, 블록체인, 가상화폐, 가상화폐공개(ICO), 가상화폐 거래소, 드론, 전기차, 자율자동차, 신재생에너지, 게임, 공유경제 등 다양한 혁신 기술과 관련된 법적 이슈에 대하여 전문적인 법적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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