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생 대상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사진=블룸버그
일본 도쿄의 미즈호 은행 타나시 지점.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 1명이 친근하게 손님을 맞았다. 안내를 받은 손님은 1명만 근무하는 창구에서 업무를 봤다. 몇몇 손님들은 ATM에서 대부분 업무를 해결했다. 관리직원까지 총 3명이 근무하는 지점이지만 대기가 길어지는 일은 없다. 오프라인 지점을 방문하는 손님이 크게 준 탓이다.
#이달 초 미쓰비시도쿄UFJ 은행의 한 지점에서는 아침부터 전 직원이 모였다. 지난해 10월 회사가 향후 5년간 임직원의 4분의 1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직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자 지점장이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 신입사원 채용을 줄여 인력을 자연 감소하게 할 계획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직원들을 토닥이는 자리였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즈호, 미쓰비시도쿄UFJ, 스미토모 미쓰이 등 일본 5대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22.4% 줄었다. 토요타자동차 등 다른 일본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 기록 행진을 해온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
미즈호는 향후 10년간 직원 1만9000명 감원 및 오프라인 지점 100여곳 폐쇄 등을 통해 1500억엔(약 1조5000억원) 가량을 줄이겠다고 했다. 미쓰비시도쿄UFJ도 2023년까지 전 직원의 4분의 1 수준인 9500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내놓았다. 스미토모도 4000여명을 줄일 계획이다.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초대형 은행들이 20년 만에 저성장, 저금리, 저인구 등 '삼중고'를 맞아 "더 이상의 비효율을 방치할 수 없다"며 대대적인 구조개편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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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본에서 제일 큰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의 경우 오프라인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지난 10여년간 40% 줄었다.
그 사이 온라인 전문 은행들이 부상하며 기존 은행권을 위협하고 있다. 라쿠텐 은행은 지난 한 해 동안 대출 규모가 27% 가까이 늘었고, SBI스미신넷뱅크도 14%의 신장률을 보였다. 반면, 대형은행들의 대출 증가율은 5% 안팎에 머물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말 수익률이 가장 낮은 9개 글로벌 은행을 발표했는데 일본 3대 은행이 모두 포함됐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발표한 2016년 일본 은행들의 자산수익률은 평균 0.3%로 호주(0.7%), 영국(0.8%), 미국(1.0%)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먼드 스펜서 무디스 부사장은 "은행이 점점 편의점화 하고 있다"며 "은행의 복잡성이 사라지고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트 코스'라는 인식이 무너진 일본 은행권에서는 탈출 러시도 가속화하고 있다. 당장 금융 관련 업무 인력 비중 2015년 43.5%에서 지난해 25%로 낮아졌다. 인력 이동이나 공석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일본 대형은행들은 앞다퉈 무인지점 및 영상통화를 활용한 은행 업무를 늘리고 있다. 복잡한 서류 작성 과정을 심사할 AI(인공지능) 도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올해 미즈호의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40% 더 감소할 전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취업시장에서 은행은 여전히 선호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올해 졸업생들의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도 미즈호와 미쓰비시도쿄UFJ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아사히신문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은행권이 더 이상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지만, 희망이 없어 행복한 젊은이를 뜻하는 '사토리(득도) 세대'가 승진이나 장기근속 욕구 없이 당장 높은 연봉에 관심을 보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도쿄대 법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고등학생 시절 '도쿄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특별히 원하는 것 없이 은행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어차피 구조조정이나 정년퇴직을 두려워할 때까지 회사를 다닐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선은 고연봉 직업을 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