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 日은행의 절규…지점 없애고, 인력 줄이고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8.02.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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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업 호황 속 홀로 '조용한 불황'…3대 은행, 3만여명 감원·지점 수백개 폐점 계획

일본 대학생 대상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사진=블룸버그일본 대학생 대상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사진=블룸버그


#"우리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본 도쿄의 미즈호 은행 타나시 지점.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 1명이 친근하게 손님을 맞았다. 안내를 받은 손님은 1명만 근무하는 창구에서 업무를 봤다. 몇몇 손님들은 ATM에서 대부분 업무를 해결했다. 관리직원까지 총 3명이 근무하는 지점이지만 대기가 길어지는 일은 없다. 오프라인 지점을 방문하는 손님이 크게 준 탓이다.

#이달 초 미쓰비시도쿄UFJ 은행의 한 지점에서는 아침부터 전 직원이 모였다. 지난해 10월 회사가 향후 5년간 임직원의 4분의 1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직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자 지점장이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 신입사원 채용을 줄여 인력을 자연 감소하게 할 계획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직원들을 토닥이는 자리였다.



일본 은행들이 '조용한 위기'에 빠졌다. 한때는 고용보장, 고액연봉으로 직장인들의 '엘리트 코스'로 불렸지만,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면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본업'이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즈호, 미쓰비시도쿄UFJ, 스미토모 미쓰이 등 일본 5대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22.4% 줄었다. 토요타자동차 등 다른 일본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 기록 행진을 해온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미즈호, 미쓰비시도쿄UFJ, 스미토모미쓰이 등 3대 은행은 총 3만2000여명의 인원을 줄이고 오프라인 지점 일부를 폐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즈호는 향후 10년간 직원 1만9000명 감원 및 오프라인 지점 100여곳 폐쇄 등을 통해 1500억엔(약 1조5000억원) 가량을 줄이겠다고 했다. 미쓰비시도쿄UFJ도 2023년까지 전 직원의 4분의 1 수준인 9500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내놓았다. 스미토모도 4000여명을 줄일 계획이다.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초대형 은행들이 20년 만에 저성장, 저금리, 저인구 등 '삼중고'를 맞아 "더 이상의 비효율을 방치할 수 없다"며 대대적인 구조개편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제일 큰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의 경우 오프라인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지난 10여년간 40% 줄었다.

그 사이 온라인 전문 은행들이 부상하며 기존 은행권을 위협하고 있다. 라쿠텐 은행은 지난 한 해 동안 대출 규모가 27% 가까이 늘었고, SBI스미신넷뱅크도 14%의 신장률을 보였다. 반면, 대형은행들의 대출 증가율은 5% 안팎에 머물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말 수익률이 가장 낮은 9개 글로벌 은행을 발표했는데 일본 3대 은행이 모두 포함됐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발표한 2016년 일본 은행들의 자산수익률은 평균 0.3%로 호주(0.7%), 영국(0.8%), 미국(1.0%)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먼드 스펜서 무디스 부사장은 "은행이 점점 편의점화 하고 있다"며 "은행의 복잡성이 사라지고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트 코스'라는 인식이 무너진 일본 은행권에서는 탈출 러시도 가속화하고 있다. 당장 금융 관련 업무 인력 비중 2015년 43.5%에서 지난해 25%로 낮아졌다. 인력 이동이나 공석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일본 대형은행들은 앞다퉈 무인지점 및 영상통화를 활용한 은행 업무를 늘리고 있다. 복잡한 서류 작성 과정을 심사할 AI(인공지능) 도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올해 미즈호의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40% 더 감소할 전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취업시장에서 은행은 여전히 선호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올해 졸업생들의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도 미즈호와 미쓰비시도쿄UFJ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아사히신문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은행권이 더 이상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지만, 희망이 없어 행복한 젊은이를 뜻하는 '사토리(득도) 세대'가 승진이나 장기근속 욕구 없이 당장 높은 연봉에 관심을 보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도쿄대 법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고등학생 시절 '도쿄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특별히 원하는 것 없이 은행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어차피 구조조정이나 정년퇴직을 두려워할 때까지 회사를 다닐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선은 고연봉 직업을 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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