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한 당구장 출입구 인근. 이 당구장 업주는 "당구장 내부가 좁아 흡연부스를 설치할 공간이 부족해 재떨이를 놓아뒀다"고 말했다. /사진=최동수 기자
골프장 방 5곳에는 각각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크기의 흡연부스가 따로 설치돼있었다. 부스 위로는 환풍구가 천장까지 연결돼있었지만 매캐한 타르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음달 3일부터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등 실내체육시설에서 담배를 피운 흡연자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금연구역 안내 표시를 하지 않은 사업주도 과태료를 최대 500만원까지 부과 받을 수 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서울시내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14곳의 흡연 실태를 점검했다. 당구장 3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금연구역 안내가 잘 돼 있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B 당구장은 '2017년 12월3일 대한민국 당구장에 담배연기가 사라집니다'라는 금연구역 지정 안내 포스터를 곳곳에 걸어뒀다. 이곳 직원 김모씨(26)는 "금연을 요구하면 간혹 짜증을 내는 손님도 있다"면서도 "오히려 흡연자들이 '상쾌하게 당구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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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마포구 C 당구클럽은 아예 당구장에 흡연부스를 2개 설치했다. 이 클럽 사장 김모(55)씨는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데 각각 300만원씩, 총 600만원이 들었다"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당구를 치던 손님이 많다 보니 매출도 일정 부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는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흡연 부스를 설치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지상 2층의 서울 영등포구 D 당구장은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대신에 출입구 쪽에 재떨이를 마련했다. 출입문 밖 계단은 성인 남성 1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통로였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건물 내 흡연실은 △담배 연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밀폐 공간으로 설치해야 하며 △연기를 실외로 배출할 수 있도록 환풍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재떨이 설치는 흡연실의 조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이 당구장을 운영하는 이모씨(50)는 "당구대가 5~6개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 흡연실을 설치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출입구에 재떨이를 놔뒀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비흡연자와 흡연자 손님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웬만하면 안에서는 못 피우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A 스크린골프장. 좁은 스크린골프장 내 별도의 흡연부스가 설치돼있다. 하지만 일부 이용객들은 흡연부스 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 냄새가 빠져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사진=최민지 기자
업주들 역시 손님들이 금연 요청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 서초구의 스크린골프장 업주 김모씨(39)는 "일주일에 2~3번 여러 명의 골프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골프장을 찾는 단골한테까지 금연을 강요할 순 없다"면서도 "눈치껏 피우라고 귀띔을 주지만 혹여나 난감한 상황이 닥칠까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단속을 하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금연 문화 정착에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PC방이 금연구역으로 정착되는 데 3년 정도가 걸렸던만큼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금연 역시 문화로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PC방 단속건수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2013년 이후 2014년 1만4137건에서 지난해 4154건으로 대폭 줄었다.
2016년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당구장과 스크린 골프장은 지난해 12월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개정안은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다음달 3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연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업주들도 금연구역 안내 표지판·스티커를 건물 출입구, 계단, 화장실 등 주요 위치에 의무 부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