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여유롭지만 더 행복해요"…5년차 육아아빠 이야기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이상봉 기자 2018.02.17 05:29
글자크기

대기업 그만두고 전업주부된 30대 "주변에도 육아 아빠 매우 많아… 음지에 숨어있을 뿐"



"요즘 아빠가 육아하는 집 엄청 많아요. 음지에 숨어있을 뿐이에요."
"육아, 청소, 빨래, 요리… 직접 해보니 모두 체력을 요하는 일들이라 오히려 남성이 하기 적합해요."

5년 전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이들은 그를 괴짜 취급했다. 번듯한 직장을 두고 왜 집안일을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년 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최근 그에게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야 하냐' '청소는 어디부터 해야 하냐' 등의 질문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노승후씨가 두 딸에게 간식으로 팬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노승후씨가 두 딸에게 간식으로 팬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


의선(9), 의현(7) 두 딸의 아빠 노승후씨(39)는 5년차 전업주부다. STX조선, 셀트리온 등 굵직한 대기업 직원이던 그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 점차 소원해져가는 부부관계를 비롯, 부모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들을 보면서였다.

"다른 맞벌이 가정과 똑같았어요. 퇴근 후엔 아내 혼자 아이를 돌보고 저녁도 만드는.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전 꽤나 용감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당시 저는 아내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는 사이 아내의 서운함은 점차 커졌습니다. 이대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부모 손길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노승후씨가 직접 만든 반찬들. /사진 제공=노승후노승후씨가 직접 만든 반찬들. /사진 제공=노승후
그는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육아로 경력이 단절돼야 한다면 남자 쪽이 경력단절되는 편이 낫다고 봤다. 그는 "어느 한쪽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구조는 잘못됐다"면서도 "어쨌든 둘 중 하나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남자 쪽의 재취업이 훨씬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씨의 아내가 사회활동에 큰 열의를 갖고 있던 것도 이유였다. 노씨는 "아내는 일에 대한 욕심이 큰 사람"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아내가 육아휴직 기간 집에서 애를 보면서 바깥 일이 더 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 성별 관계없이 고등교육을 시키는 요즘 시대에 여자란 이유만으로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 하라는 건 불공평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5년차 전업주부 노승후씨. /사진=이상봉 기자5년차 전업주부 노승후씨. /사진=이상봉 기자
당시 그의 결정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왜 그런 결정을 하냐"고 물었다.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했기에 당시 그의 생활도 평범하지는 못했다. 평일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가면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꼭 질문을 했다. "나이드신 분들께서 여쭤보시는 거죠. 애들 이쁘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어디 갔니' 이렇게. 떡하니 그 옆에 제가 있는데도요. '아빠가 휴가구나, 오늘 함께 놀아줘서 좋겠다'는 말씀들도 많이 하셨고요."

타인의 시선은 이겨낼 수 있었다. 그쯤은 그가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노씨는 진짜 상처를 받은 일은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가 4~5살 됐을 때,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더니 싫은 내색을 보이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본인도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면서요. 그땐 진짜 상처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점차 노씨의 가족도 '아빠 육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엄마보다 잔소리가 적다며 아이들도 점차 아빠와 함께 있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노승후씨(왼쪽)와 둘째 딸 의현양. 의현양이 아빠와 놀며 밝게 웃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노승후씨(왼쪽)와 둘째 딸 의현양. 의현양이 아빠와 놀며 밝게 웃고 있다. /사진=이상봉 기자
노씨도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차츰 그동안 깨닫지 못한 사실도 깨달았다. 그동안 그를 이상하게만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요즘엔 자꾸 저한테 전업주부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요. 자기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노씨는 점차 노씨와 같은 결정을 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평일 낮에 소아과나 마트를 가면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들이 많이 보여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저밖에 없었거든요. 제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서도 두 명이나 육아아빠로 전업주부가 됐어요."

그는 정부가 아빠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문화에 대해 좋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하는 아빠가 2011년 1400명에서 지난해 1만2000명까지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아빠들도 육아랑 살림 잘 하거든요. 육아, 청소, 빨래, 요리 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라 아빠들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해요."
둘째 딸 노의현양이 아빠가 만들어준 팬케이크를 예쁘게 장식했다. /사진=이재은 기자둘째 딸 노의현양이 아빠가 만들어준 팬케이크를 예쁘게 장식했다. /사진=이재은 기자
그는 자신과 같은 결정을 하려는 아빠들을 향해 말했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자격증을 따는 등 인생 제 2막을 준비하고 싶은 아빠들의 경우 육아 아빠가 돼봐도 괜찮을 겁니다. 아이가 클 때까지 전업주부로 생활하며 준비할 수 있어요. 5년 전보다 재정적으로는 덜 여유롭지만 더 행복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