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압수 파일 출력 때 피의자 참여 보장 안 해도 돼"

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2.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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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전자정보 상세목록 줄 때 전자파일 형태로 복사·이메일로 보내도 된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수사기관이 범죄와 관련 있는 정보를 선별해 이미징 후 이미지 파일을 제출받아 압수했다면 이 파일을 탐색‧복제‧출력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최초의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또 이 판례에서는 압수된 전자정보의 상세목록을 피의자에게 주도록 돼 있는 경우 그 목록은 전자파일 형태로 복사해 주거나 이메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최초로 명시됐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순일)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죄 등으로 유흥주점 운영자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90억원을, 경리부장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90억원을, 관리이사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기 위해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유흥주점 운영자와 경리부장, 관리이사 등 피고인들은 공모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사기와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수사기관은 현장에서 직원이 사용하던 USB에서 조세포탈 장부가 담긴 파일로 추정되는 엑셀파일이나 문서파일들을 선별한 뒤 이미징 작업을 한 후 증거로 제출된 이미지 파일을 압수했다. 검사는 포탈세액을 특정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판매심사파일’ 등이 들어 있는 CD와 그 출력물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사가 제출한 CD 내 ‘판매심사파일’과 그 출력물을 유죄 인정을 위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원심 판결은 “수사기관의 USB에 대한 압수 및 이후 출력과 복사과정에 피의자 등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는 등의 절차상 위법이 없고 USB 내 원본 파일 내용과 증거로 제출된 ‘판매심사파일’과 그 출력물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판매심사파일’ 및 그 출력물과 이 사건 USB 내 원본 파일 내용의 동일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디지털 증거와 그 복사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전자문서를 수록한 파일 등의 경우 편집되는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임이 증명돼야 하고, 증명이 없는 경우에는 쉽게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본 내용을 그대로 복사‧출력한 것이라는 사실은 증언이나 진술, 원본이나 사본 파일 생성 직후의 해시값의 비교, 전자문서 파일에 대한 검증·감정 결과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다”는 판례를 재인용하며 “원본 동일성은 검사가 그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CD 내 들어 있는 개별 파일들은 수사기관이 영장 집행현장에서 압수한 이 사건 이미지 파일이 아니고 이 파일이 어떠한 경위를 거쳐 CD 내 들어 있는 개별 파일들로 변환되고 복제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면서 “CD 내에 저장돼 있는 4508개의 파일별 해시값 등이 개별 파일들 중 20개 파일의 해시값과 동일하지 않다”고 봤다.

이어 대법원 재판부는 “증인의 증언 내용을 살피더라도 원본 동일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CD 내 ‘판매심사 파일’과 그 출력물만을 상호비교했을 뿐 원본 파일과의 비교가 이루어진 바도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에서 참여권 미보장의 위법은 없었다”며 “수사기관이 정보저장매체에 기억된 정보 중 키워드 또는 확장자 검색 등을 통해 범죄사실과 관련 있는 정보를 선별한 다음 이미징을 한 후 이미지 파일을 제출받아 압수했다면 압수‧수색 절차는 종료된 것”이라고 봤다. 수사기관이 수사기관 사무실에서 압수된 이미지 파일을 탐색‧복제‧출력하는 과정에서도 피의자 등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어 대법원 재판부는 “압수된 전자정보의 상세목록을 피의자 등에게 주도록 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이러한 목록이 반드시 서면으로 할 필요는 없고 전자파일 형태로 복사해 주거나 이메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며 절차의 위법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디지털 증거의 원본 동일성에 대해 검사에게 주장·증명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하고 증명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여야 한다고 했다”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그 증명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증거능력을 부정한 첫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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