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금융논리에 한진해운 파산"…'산업논리' 급한 전환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18.02.13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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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기업 구조조정]②흔들리는 원칙…정치논리로 변질될 가능성 큰 산업논리…연명치료 부담은 누가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키로 결정한 정부는 산업은행 부행장을 거제로 급파해 노조로부터 파업금지, 임금동결 등의 동의서를 받아냈다. 수년째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금호타이어. 매각마저 무산됐지만 금호타이어 노조는 채권은행과 사측의 구조조정 동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1월에는 파업까지 벌였다.

#한진그룹은 2016년 8월 한진해운에 대한 대주주로서 실효성 있는 자구안을 내놓으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응하지 못했다. 채권단은 한진해운 추가 지원을 거부했고 한진해운은 결국 파산했다. 누적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GM. 한국 GM의 대주주인 GM 본사는 '한국 철수설'을 흘리며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자금지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부가 2015년~2017년까지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을 거치며 지켜온 원칙은 '이해관계자의 손실분담'이었다. 자구노력과 손실분담은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이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비판에 대한 유일한 방패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금호타이어, 한국GM의 사례에서처럼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근간에는 '금융 중심 구조조정'의 비판에 따른 '산업 측면의 고려'라는 새로운 구조조정의 방식이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논리로만 구조조정' 비판은 정당한가= 지난해 12월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산경장)에선 '산업적 측면과 금융논리의 균형있는 반영'이란 문구가 등장했다. 지난 정부가 금융논리로만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한진해운 파산 등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정부가 공식 수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지금까지도 금융논리로만 기업구조조정을 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권은행들은 이미 충당금을 적립한 부실회사를 굳이 신규자금을 줘 가며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관치라는 비판까지 받아가며 채권단을 설득하고 자금 지원을 유도해 온 것이 결국 금융논리로만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채권단이 실시하는 구조조정 기업의 재무실사 역시 해당 산업의 상황을 반영해 매출전망을 하고 거시경제 전망을 고려해 이자비용을 추정한다.
게다가 금융논리로만 구조조정을 했다는 지난 정부가 산업 부서를 포함하는 산경장 회의를 신설하고 회의도 현 정부보다 더 많이 개최했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 구조조정을 해 왔음에도 새 정부 들어 산업논리를 강조하는 것은 '기업을 죽이지 말자'는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산업논리 구조조정의 함정= 물론 재무적으론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는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전세계적 또는 국내 산업적 측면에서 볼때 꼭 필요한 기업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고려도 필요하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정한다. 가령 조선업의 경우 대형, 중소형, 소형 조선사들의 생태계가 있고 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을 감안해 개별 조선사들의 생사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산업논리로 포장된 정치논리다. 정부가 '산업적 고려'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시키로 한 컨설팅이 사실상 '정치적 결정'을 '산업적 판단'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적으론 죽은 기업을 산업적 고려로 살린다면 반대로 재무적으론 살 수 있는 기업이지만 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때 도퇴돼야 할 기업이라고 죽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산업논리=구조조정 기업 살리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가령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선거 이후에 발표해도 될 구조조정 정책을 굳이 선거 전에 발표해 유권자를 자극하려는 정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구조조정을 미룬다면 다음 정부에 폭탄을 넘기는 것"이라며 "실제로 지난 정부 조선, 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은 과거 정부에서 넘어온 숙제였다"고 말했다.

◇과정 중시하다 신속성은 훼손..금융당국이 중심 잡아야= 산업부가 "앞으로 구조조정을 주도하겠다"고 밝혔지만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래서 지금 산업부가 무슨 그림을 보여준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발언은 산업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을 주도해 온 이유는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구조조정의 실패는 채권단의 손실로 돌아오고 금융시장의 안정과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이 그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부는 이런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

그런만큼 금융당국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그동안에는 금융당국이 재무적 측면, 산업적 측면, 국가 경제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면 이제는 산업, 지역 등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것"이라며 "결국 의사결정의 과정을 중시하는 구조조정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보안 유지를 통해 시장 충격을 막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동안의 구조조정의 장점을 희생하는 대신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구조조정의 전환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하지만 금융당국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재무적으로 결론이 난 부실기업이 산업, 지역 정서 등의 논리로 연명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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