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청산 vs 회생' 갈림길 정부…'정치 논리'에 발목잡히나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세종=유영호 기자, 주명호 기자 2018.02.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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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기업 구조조정]①구조조정 설 연휴이후 분수령…민심 눈치보기, 또 유보할까

편집자주 “그동안의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금융논리 중심이었다. 산업적 측면도 고려하겠다.”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이다. ‘금융논리와 산업논리의 균형’이라고 포장됐지만 그 결과는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나타나고 있다. STX조선과 성동조선 처리 결정이 유보됐고 금호타이어는 표류하고 있다. ‘산업논리를 고려한 구조조정’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선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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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이 설 연휴 직후 분수령을 맞이할 전망이다. 당장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생사를 가늠할 산업 경쟁력 컨설팅 결과가 이달 안에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실패한 금호타이어 재매각 작업도 차츰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현 정부 들어 제대로 된 구조조정 사례가 없는 탓에 이번 결정에 산업계와 금융권의 이목이 쏠린다.



◇성동조선·STX조선 ‘산업 경쟁력’ 컨설팅 결과 “2월 내 발표”=문재인 정부는 구조조정을 진행할 때 채권단의 재무적 실사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 첫 사례가 성동조선과 STX조선이다. 지난해 재무실사에서 두 회사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미 STX조선에는 4조5000억원, 성동조선에는 2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추가로 지원한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조선해양플랜트협회를 통해 삼정KPMG에 산업 경쟁력 컨설팅을 의뢰해 결과를 보고 두 기업의 생사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컨설팅의 목적이 ‘재무적 실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쟁력을 따져보자’는 취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무적 판단과 달리 두 기업을 살리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컨설팅을 발주한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여러 조선사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경쟁사를 견제하는 측면도 있어 무조건 살리는 식의 결론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지만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키’를 쥐고 회생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전 정부의 구조조정이 ‘금융논리’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해서 앞으로 산업부가 홀로 구조조정을 전담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그간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 금융위원회와 채권단 중심의 금융논리 구조조정이 불투명성 등을 지적받은 만큼 반성의 차원에서 지역경제와 일자리 등 다른 요인도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매각’ 추진 금호타이어, 노조·정치권 ‘암초’=금호타이어는 재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 채권단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산은)은 제3자 유상증자 방식의 재매각을 추진하면서 두세 곳의 후보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매수 후보로는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중국 더블스타와 SK그룹 등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은 지난달 금호타이어에 대해 1조3000억원의 차입금 만기를 1년 연장해주고 이자율을 인하해주면서 노사의 자구안 이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조는 여전히 자구안 이행을 거부하고 있으며 더블스타로의 매각이 가시화할 경우 더욱 강력한 반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호타이어 노조는 지난해 더블스타로의 매각 추진 당시 호남권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을 등에 업고 매각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재매각은 비교적 진전된 상태지만 노조의 반대가 계속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 민심, 구조조정엔 악재(?)” =금융권에선 현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할 세 회사의 운명이 설 연휴 직후에 결정된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번 설 명절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10개월을 평가하는 시점인 동시에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대한 지역 민심을 살펴볼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설 민심이 구조조정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 기업이 호남(금호타이어)과 부산·경남(STX조선과 성동조선)에 수많은 일자리를 짊어지고 있는 핵심 기업인 동시에 여야의 격전지인 탓에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한진해운 파산 후 PK(부산·경남) 민심이 당시 여당에 큰 부담이 됐던 것처럼 지역 민심을 고려해 정부가 구조조정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청산은 없고 회생만 있다”…새 정부 구조조정 어디로=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구조조정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이 이해관계자의 손실을 수반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과 임직원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어느 정도의 역풍은 불가한데 일자리를 중시하고 여론을 신경 쓰다 보니 손실 부담을 요구하기를 주저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안이 아니라고 구조조정을 미루면 훗날 화를 키우게 된다”며 “일자리, 최저임금, 남북문제 등 다른 현안 때문에 구조조정은 정부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구조조정에는 실업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부작용으로 생각하면 구조조정을 미룸으로써 오는 부작용은 간과하게 된다”며 “정부가 구조조정 작업의 긴급함과 중요성에 대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조조정이 ‘칼’을 뽑는 일인 탓에 정부 모든 부처가 주저하면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정부 내 조율이 명확하지 않다”며 “구조조정은 손실을 요구해야 하는 일인 탓에 모두가 하기 싫은 일이라 지시가 명확하지 않으면 서로 미룰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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