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 '딥 스로트'의 저격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부국장 겸 산업1부장 2018.02.06 04:16
글자크기
[동상이목(同想異目)] '딥 스로트'의 저격


사기와 배신은 믿는 사람에게 당한다. 못 믿으면 애시당초 저울질하고 의심하면서 관계나 거래를 한다. 단골과는 믿고 물건을 사고팔지만 그렇지 않으면 꼼꼼히 따져본다. “설마 네가…”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천양지차다. 누구나 다 아는 이치인데도 사기와 배신은 여전히 판을 친다. “너만은 믿었는데…”란 한탄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는 이가 한둘 아니다.

물론 처음 인연을 맺을 때부터 사기와 배신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해타산이 딱 맞아떨어지면 어느새 굳건한 눈빛으로 악수하며 미소 짓는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뒤통수를 치거나 냉정히 뒤돌아선다.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경우도 다반사다. 믿었던 도끼와 믿는 도끼, 믿을 도끼를 구분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결국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뀐다는 복잡한 함수 같은 사람 맘 속의 마지막 판단 기준은 ‘내 이익’이다. 그런데 사람의 이익이라는 게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어제는 분명 이익이었는데 오늘은 상황이 달라져 ‘손절’을 강요한다. 평가손익과 확정손익의 차이라고나 할까.

대한민국은 사시사철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정치권은 벌써 지방선거 전략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정당 간 이합집산, 공천을 지키려는 사람과 노리는 사람 간 희비가 엇갈리면서 배신과 모략이 판을 친다. 어차피 서로를 믿는 관계가 아니었으니 배신이란 표현이 안 어울릴 수도 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영원한 집사’ ‘문고리’ 등으로 불린 측근들의 증언 내지 실토를 보면서 이 역시 ‘배신’이라 칭해야 할지 헷갈린다. ‘권력에 대한 충성’을 통해 ‘내가 얻는 이익’이 ‘신뢰’란 거룩한 포장지를 뒤집어쓴 건 아닌지.



하지만 주군 입장에선 집사와 문고리의 배신 아닌 배신이 가져다주는 충격이 너무나 크다. ‘내부고발’, 그중에서도 권력 핵심부에서의 누수는 당사자는 물론 공격을 하는 쪽에도 파괴력이 엄청나다. 폭로하는 순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기업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정치의 계절은 폭로의 계절이다. 권력 교체기엔 기업들도 새로운 권력에 맞춰 조직을 재정비한다. 그 핵심은 ‘인사’다. 정치권으로 치면 공천이나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딥 스로트’(deep throat·익명의 내부제보자)의 출현이다, 사실 여부를 따지거나 해명할 새도 없이 조직은 치명상을 입는다. 그가 정치권력의 집사나 문고리 같은 존재라면 더더욱 큰일이다.

롯데그룹은 지낸해말 퇴임한 임원들부터 고문 예우를 종전보다 1년 늘렸다. 대표이사는 3년, 임원들은 2년까지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의 이런 조치는 오히려 늦은 축에 속한다. 이미 상당수 대기업은 2년 이상의 고문 또는 자문역 기간을 준다. 오랜 기간 회사에 기여한 데 대한 ‘예우’와 퇴직 이후 ‘준비’를 배려한 결정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면 말 그대로 ‘중역’이었던 이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과거 금고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딥 스로트’의 존재로 홍역을 치른 여러 대기업의 사례가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런 이유라면 정확히는 ‘로열티를 통해 얻어 갔던 이익’을 최대한 천천히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웃픈’ 현실이다. 물론 ‘믿었던 도끼’가 계속 ‘믿을 도끼’로 남는다는 확신이 있는 곳이라면 불행한 사태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