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민간금융사 채용까지 개입하면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2018.02.05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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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으로도 그렇고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기업 경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사람을 뽑는 일이다. 필기시험과 2~3차례 면접은 물론이고 같이 밥 먹고 토론하고 운동도 함께해보면서 인재를 뽑지만 시간이 흐른 뒤 스스로 발등을 찍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채용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이처럼 어려운 인재채용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공기업이 아닌 민간기업 채용에 대해서 말이다.

강원랜드에서 벌어진 대규모 채용비리 등이 계기가 돼 문재인정부는 채용비리만큼은 뿌리까지 뽑겠다며 적극 나섰다. 공공기관에 이어 이번에는 은행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현장검사를 벌여 드러난 비리를 잇따라 발표했다. 당국은 앞으로 채용비리에 대한 조사를 제2금융권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신입직원 채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이 우리 사회의 꿈이자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주는 좌절과 분노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채용에 대한 간섭과 개입은 정부가 주인인 공기업에 그쳐야 한다. 정부당국이 민간기업 채용에까지 개입할 경우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것이 초래하는 부작용과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위 명문대학이나 해외대학 출신 우대만 해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치권 등에서 “학벌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범죄”라고 주장하지만 외국계 IB(투자은행) 등에서 스펙 중심의 채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욱이 이를 비판하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학벌 등 스펙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금융사들에만 예외일 것을 요구하는 게 과연 온당한가.



은행 기여도가 큰 우수고객 자녀나 임직원 자녀 우대 문제 역시 획일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대목이 있다. 이익 극대화가 목적인 민간은행에서 VIP고객 자녀들에 대한 우대는 최우수고객에게 금리우대를 해주고 수수료를 깎아주는 것과 근본적으로 뭐가 다를까. 임직원 자녀 우대 역시 기존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후생확대의 연장선에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적지 않은 국내 제조업체에서 노조의 요구로 이미 널리 시행된다. VIP고객 및 임직원 자녀 우대 문제는 장려할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잘못이다. 정부당국이 개입할 게 아니라 민간기업의 자율판단에 맡겨야 할 영역이다.

공기업 채용 비리에 대한 조사도 그런 측면이 있었지만 은행권의 경우 특히 이것이 특정은행과 특정인을 겨냥한 ‘찍어내기’ 용도로 악용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금감원 발표 내용도 이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KEB하나·KB국민·대구은행 등이 주요 타깃이었으니 말이다.

금융사 채용비리는 금융법령 위반사항이 아니다. 더욱이 설령 형법상으로 문제가 돼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 해도 최종적으로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아야 징계할 수 있다. 그럼에도 KEB하나·KB국민 등 CEO(최고경영자)들은 감독당국과 일부 국회의원, 홍위병 같은 노조 등에 의해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적폐의 본보기로 찍혀 퇴진압박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비아냥과 자조가 왜 나오는지를 절감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왜 민간금융사 CEO가 물러나야 하는가. 조만간 금융권 채용비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라며 금융협회 같은 곳에서 신입직원 채용을 일괄대행한 다음 개별 금융사에 배정하는 방안이 시행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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