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인데…왜 사세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8.02.0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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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행복하다"며 정서적 만족…젊은층 기꺼이 지갑 열어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마그넷(자석)' 소품. 재밌는 문구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끈다./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마그넷(자석)' 소품. 재밌는 문구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끈다./사진=남형도 기자


"와, 이거 너무 예쁘다. 요즘 이런 아기자기한 것이 너무 좋아."

31일 오후 1시20분쯤 서울 홍대 근처 소품샵 '네모네' 안. 여성 3명이 웰시코기(강아지의 한 종류)가 누워 있는 모양의 배지를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배지 오른쪽에는 작은 벚꽃 나뭇가지가 함께 달려 있었다. '비밀의 숲'이란 이름의 이 소품의 가격은 3만9000원.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한개씩 구매한 이들은 옆에 있는 강아지 모양 배지 3종도 한참을 들여다보다 아쉬운 듯 발길을 돌렸다.


'예쁜 쓰레기'라 불렸던 디자인 소품들에 젊은층이 지갑을 열고 있다. 모양이 예쁘고 귀여워 오감을 자극하지만 실용성은 다소 떨어지는 제품들이다. 평범한 것들에 재밌는 문구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숨을 불어넣은 다양한 소품들은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한껏 자극한다. 왜 사냐는 물음에 이들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정서적 만족감'을 이유로 들었다.



이날 서울 번화가인 신촌·홍대·합정 일대 소품샵 10곳을 돌아보니 각각의 개성을 담은 무궁무진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와펜 소품. 자수로 만든 글씨를 이으면 멋진 디자인 소품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와펜 소품. 자수로 만든 글씨를 이으면 멋진 디자인 소품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실용성 '제로'…"그래서 좋아요" = 젊은층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 소품들은 '그냥 예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엽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소품들이다. 스티커·마그넷(자석)·배지·간판·와펜(심벌 마크를 자수로 만든 것)·도장 등이 있었다.

이들 소품은 독특한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평범함을 깼다. 홍대 소품샵에 있던 마그넷은 컵·초밥·햄버거·맥주·소주·계란·우유 등에 눈·코·입 등을 그려 넣어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굵은 선으로 단순화하고 다양한 행동을 귀엽게 표현한 스티커도 눈에 띄었다. 먹음직스런 밤을 그려 넣은 배지도 있었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도장과 혼밥용 수저, 미니종지./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도장과 혼밥용 수저, 미니종지./사진=남형도 기자
문구가 디자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홍대 소품샵에 있는 마그넷에는 '야식은 옳다' '한잔하자' '혼자라고 굶지 말아요' 등의 문구가 담겼고, 도장에는 '같이 먹어요' '바쁘다고 굶지 말아요' '밥먹고 하자' '챙겨먹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홀로 지내는 청년들이 위로를 받을 법한 따뜻한 문구들이었다. '행복하자' '성공하자' '굶자' '열공하자' '금연하자' 등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결심을 다질 법한 간판들도 이목을 끌었다.



이를 구매하는 청년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예뻐서 좋다"는 것. 합정 소품샵에서 만난 대학생 이민영씨(22)는 "예쁘고 귀여워서 집에 가져다 놓으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예쁜 쓰레기'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값어치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김모양(18)도 "필요한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버리지만, 소품들은 모아 놓고 오래오래 옆에 두고 볼 수 있다"며 "쓸모가 없어서 더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송이씨(33)는 "소소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나만의 공간을 꾸민 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도 풀려 행복하다"며 "늘 같은 공간을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주고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고 답했다. 김씨는 최근 벽에 걸 인테리어 액자를 보고 있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한글 브로치와 팔찌./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한글 브로치와 팔찌./사진=남형도 기자
◇디자인으로 '숨'을 불어넣다= 실용성이 좋은 제품에 '디자인'을 입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한글'을 활용한 소품이 눈에 띄었다. 홍대 소품샵에서 발견한 도자기 수저 받침에는 '냠냠냠 쩝쩝쩝' '맛있게도 냠냠' '오늘도 맛있게'라는 글귀가 담겨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한 파란색 글씨가 디자인을 살렸다. 컵으로 된 양초에 '스무살 일요일' '핑크빛 밤 하늘'이란 한글 스티커가 붙자 감성적인 양초가 됐다.

홍대 소품샵을 찾은 일본인 후지오카 지사토씨는 "일본도 (소품 유행이) 비슷한데 일본어로 된 소품이 거의 없다. 한글이 들어간 소품들이 예뻐서 구경하러 왔다"며 "이런 소품들이 수집욕을 자극한다. 빨리 사서 예쁘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는 버리는 잡지, 포스터 등을 활용해 손님들에게 소품을 담아주는 종이봉투로 만든다./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는 버리는 잡지, 포스터 등을 활용해 손님들에게 소품을 담아주는 종이봉투로 만든다./사진=남형도 기자
쓸모 없어진 제품을 재활용하는 좋은 사례도 있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는 손님들이 쓰던 수건 10개를 가지고 오면 할인 쿠폰을 준다. 그리고 받은 수건을 가지고 강아지 캐릭터를 입힌 수건으로 만들어 유기견 센터에 기부한다. 소품을 담는 봉투도 버려진 잡지나 포스터를 회수해 직원들이 직접 만든다. 디자인이 예뻐 인기도 많다. 오브젝트 직원 남모씨는 "가치를 중요시 여겨 판매하는데, 손님들이 그걸 알고 좋아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고 색다르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제품에 눈길이 가게 된다. 가성비가 아니라 가심(心)비를 중시하는 소비"라며 "물건의 종류가 적을 땐 별 생각 없이 사는데, 많아지면서 다른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청년들이 점점 희망을 느끼는 것이 줄어들고 팍팍해져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거나 행복감을 주는 것들을 더 찾는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강아지 그림./사진=남형도 기자홍대 소품샵 '오브젝트' 에 전시돼 있는 강아지 그림./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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