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못 넘은 벽 검은색, '가지'로 넘다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8.01.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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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센서 검은색에 먹통… 페인트업계 '새 사업기회' 주목
검은 표면 통해 들어온 빛, 흰 속살로 반사하는 가지서 영감 얻어

/사진=픽사베이/사진=픽사베이


올해는 미국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세계 최초 양산 자동차 '모델T'로 자동차 혁명을 일으킨 지 110년째 되는 해다. 이젠 다채로운 색상의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지만 당시 모델T는 검은색뿐이었다.

세계는 모델T가 세상에 나온 지 한 세기 만에 또 다른 자동차 혁명을 앞두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그 주인공이다.



문제는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되는 자율주행차이지만 110년 전의 모델T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에 꼭 필요한 센서를 먹통으로 만든다. 자율주행차는 센서가 쏜 레이저빔이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 등을 측정해 주변 상황을 감지한다. 검은색 자율주행차가 레이저빔을 흡수해버리면 안전운행에 치명적이다.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22일자 최신호에서 최첨단 자율주행차와 무관해 보이는 구식 페인트업체들이 해결사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원래 페인트업계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반기지 않았다. 자율주행차가 차량공유를 가속화 해 자동차업계의 페인트 수요가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검은색이라는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반전의 기회로 떠올랐다. 자율주행차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검은색 문제를 해결하면 자동차 페인트 수요가 줄어도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페인트업계의 기술 개발을 자극했다.

예상 밖의 기술로 돌파구가 열렸다. 배경에는 컬러푸드의 대명사 '가지'가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도료업체인 미국 PPG인더스트리는 레이더의 근적외선을 반사할 수 있는 검은색 코팅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자동차 표면의 검은색이 빛을 흡수해도 밑칠이 이를 다시 반사해 센서가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활용했다. 가지에서 착안해 2015년부터 비행기 도료에 쓰기 시작한 기술이다.

가지는 표면이 검은 빛(짙은 보라색)이지만 속은 희다. 가지가 열대·온대지방 작물이지만 햇빛 아래에서도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표면에서 흡수된 빛이 속에서 반사되기 때문이다. PPG인더스트리는 이를 응용한 코팅시스템을 항공기에 적용해 표면과 객실 온도를 각각 섭씨 -4도, -14도까지 낮출 수 있었다.



PPG인더스트리 최근 1년 주가 추이(단위: 달러)/자료=블룸버그PPG인더스트리 최근 1년 주가 추이(단위: 달러)/자료=블룸버그
PPG인더스트리는 자동차업계와 소통하며 자율주행차 도색과 관련한 다른 문제도 해결했다. 차량 표면 광택이 레이더 시스템을 방해한다는 지적에 레이더빔을 흡수할 수 있는 코팅제를 개발했고 차량 표면이 더러워지거나 얼면 레이더 기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물이나 진흙 등이 묻는 걸 방지할 수 있는 코팅 시스템을 만들었다.

PPG인더스트리는 마이크 맥게리 CEO(최고경영자)가 직접 챙기는 특별위원회를 꾸려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등 자율주행차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과 관련한 신사업을 개척해왔다.

데이비드 벰 PPG 인더스트리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자동차에 한 가지 방식의 코팅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에 네 가지, 다섯 가지 또는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코팅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줄여 수리에 필요한 페인트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도 기우였다. 벰은 자율주행차에 일반 자동차의 2배에 이르는 도료와 코팅제가 쓰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기 자율주행차는 배터리를 비롯한 주요 부품에 특수 코팅을 해야 해 일반 자동차보다 10배 이상 많은 도료와 코팅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자율주행차 도색 문제와 관련한 일련의 해법은 새로운 과제도 안겨줬다. 특수 페인트나 코팅제가 쓰이는 만큼 차량을 유지하거나 수리하는 게 더 어려워진 것이다. 페인트업계에는 또 다른 사업기회가 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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