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 운행됐던 '포니'는 1982년 2월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를 거쳐 출시된 '포니2(Ⅱ)' 모델이다. 3도어 해치백과 5도어 스테이션 왜건은 판매가 부진해 없어졌고, 5도어 해치백과 2도어 적재량 0.4톤의 픽업 트럭만 생산됐다.
현대차는 '포니2'를 통해 캐나다에 수출을 시작했다. 캐나다 수출용은 1984년 5월부터 국내에서 'CX'라는 트림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1985년에 전륜구동 방식의 후속 차종인 '엑셀'이 출시됐지만 병행 판매됐다. 하지만 자가용은 1988년 4월에, 영업용은 1990년 1월에 단종됐다.
'봉고 코치'는 1981년 8월에 출시됐으며 첫 해에 1013대를 생산해 1011대를 파는데 그쳤지만 봉고 확판운동이 전개되면서 1982년에 1만1003대, 1983년에 1만3083대 등으로 판매 실적이 증가했다. 실제로 1987년까지 5만3353대가 판매·수출됐다. '봉고 코치'에 맞서기 위해 현대차가 1986년 '그레이스'라는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판매 가격은 출시 당시 '포니2'가 347만원, '봉고 코치'는 648만이었다. 차급으로 보면 현대차 '엑센트'나 '스타렉스(12인승)'와 견줄 수 있다. '엑센트'와 '스타렉스'의 가격은 트림별로 각각 '1142만~1600만원(가솔린 기준)', '2365만~2750만원' 수준이다. 1980년대와 비교하면 그간 4배 가량 비싸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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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된 1987년 판매 실적을 보면 '포니2'가 347대, '봉고 코치'가 708대로 두 모델 모두 하향세였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잘 팔릴 때를 보면 '포니2'가 연간 3만대, '봉고 코치'가 2만대 규모였다"며 "(그래서 그랬는지) 두 모델 모두 1987년을 마지막으로 단종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