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한국인에게도 습관처럼 지켜온 식사 방식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하고 밥은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담아 먹는지,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고 밥·국·반찬을 한꺼번에 먹는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식사 후에 커피를 꼭 마시는 습관은 또 어떤가.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하는 관습은 방과 마루가 연결된 ‘꺾음집’ 형태와 온돌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려 시대 살림집의 꺾음집 구조와 조선 시대 계회도에 그려진 식사 모습, ‘성호사설’에 드러난 온돌이 확산 등이 그 근거들이다.
다리가 긴 소반은 어떻게, 왜 등장했을까. 온돌의 확산과 부유층이 구리로 만든 식기를 사용한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온돌 바닥의 열기가 다리가 짧은 소조형 식탁에 전달돼 음식에 영향을 미치고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식기는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기에 다리가 긴 소반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소반의 등장으로 자세가 바뀌면서 수저의 손잡이도 짧아졌다.
‘원샷’과 술잔 돌리기는 조선 시대 왕실부터 유행한 고유의 풍습이었다. 영조 즉위 27년째인 1751년, 당시 우부승지(右副承旨)였던 황경원이 영조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했다. 황경원은 건강을 이유로 동료에게 잔을 채우지 말라고 부탁하자, 이를 엿들은 영조가 술잔을 가득 채워 1ℓ의 술을 그에게 마시게 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잔을 한 번에 비우는 관습은 식민지 시기 일본인이 쓴 책에도 나온다. 오카다 미쓰기는 조선인의 관습을 소개하는 글에서 “일본인은 아주 소량의 술을 혀끝에 얹어 조금씩 마시는 데 비해, 조선인은 맥주, 사이다를 마시는 것처럼 한 번에 다 마셔 해치운다”고 적었다.
‘세종실록’의 ‘오례·향음주의’에선 집사자가 따라준 술을 주인이 받아서 손님에게 주고(獻), 손님이 다시 주인에게 술을 드린다(酌)고 했다. ‘헌’과 ‘작’은 술잔 돌리기와 같은 표현인 셈이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술잔 돌리기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한다’는 믿음과 더불어 집단주의 의식이 깊이 깔린 관습으로 자리잡았다.
식기의 변화도 식사 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한반도 도자기 산업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양은그릇이 퍼지다, 1960년대 이후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이 유행했다. 60년대 이후 한식 음식점에선 스텐 밥공기가 필수품처럼 확산했는데, 그 배경에는 규격화한 밥공기를 통해 쌀 소비를 줄이려는 정부 시책이 있었다.
밥과 국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공유하는 지금의 식사 방식은 100년 전 소반에 차려진 밥상을 따로 받던 양반 남성에겐 매우 어색한 일이다. 지난 1세기 동안 대한민국이 겪은 식민지배와 전쟁,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물결은 식사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저자는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인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함께 식사한다는 뜻의 ‘커멘셜리티’(commensality)가 투영된 의식으로,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인류의 특징”이라면서 “인류는 식사를 생명 유지 수단을 뛰어넘어 유대감을 강화하는 일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428쪽/2만2000원.